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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천안문화대전 > 천안향토문화백과 > 삶의 내력(역사) > 전통 시대 > 조선 시대

  • 조선 시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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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시기의 천안 지역의 역사. 1914년에 천안군(天安郡)·목천군(木川郡)·직산군(稷山郡)이 통합되어 천안군이 되었고, 1963년에 천안시와 천원군으로 분리되었다가, 1991년에 천원군이 천안군이 되고, 1995년에 다시 통합되어 현재의 천안시가 되었다. 따라서 1914년 이전의 천안시 지역은 천안(天安)·목천(木川)·직산(稷山) 지...

  • 목천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남도 천안시 동쪽 지역의 조선 시대 행정 지명. 목천은 백제의 대목악군(大木岳郡), 신라의 대록군(大麓郡)이었던 것이 고려 성종 때에 목주(木州)로 개칭되면서 청주에 속했다가, 1172년(명종 2)에 이르러서야 감무가 파견되면서 독립된 현이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1413년(태종 13)에 목천(木川)으로 고치면서 종전의 감무 대신 현감이 파견되기 시작했고, 1895년(고종 3...

  • 영산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남도 천안시 중남부 지역의 조선 전기 행정 지명. 고려 충선왕 때 천안을 영주(寧州)로 고쳤다가 공민왕 때에 다시 천안부로 환원하였다. 조선 건국 후에는 1413년(태종 13) 영산군(寧山郡)으로 고쳤다가 3년 후 천안으로 환원함으로써 단 3년간 쓰였던 지명이다. 영산군은 조선 시대 천안군 고을의 영역으로 지금의 천안시 중남부 지역 일대가 이에 해당된다. 영산군이란 지명은 조...

  • 성환 역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남도 천안시 성환읍에 위치한 전통 시대의 역. 성환역은 서울에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로 내려가는 중간 기착지로 교통의 요지였다. 『고려사(高麗史)』에 역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고, 조선 시대에는 충청도에 있는 6개의 도찰방역 중 하나로 여러 개의 속역을 관리하였다. 역참제도는 육로교통의 필수 요건이었다. 요로의 교통이 편리한 곳에 역이 존재하게 된 것으로 보아 그 연원이...

  • 월경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천안 지역에 있었던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특수 행정 구역. 월경지는 소속 읍과 따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군현(郡縣)의 특수 구역이었다. 월경지라는 독특한 행정 구역이 존재했던 것은 큰 고을의 물자 조달 문제와 관련이 있다. 월경지는 소속된 고을과 경계를 접하지 않고 다른 지역에 동떨어져 있지만 조세는 소속 고을에서 거두었다. 이것은 과거의 연고지, 생선·소금과 같은 물자...

  • 도기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시대 천안 지역에 위치했던 도기 굽는 곳. 관수용품이나 민간에서 쓰이는 도기와 자기를 굽는 가마 시설은 고려 시대부터 전국 곳곳에 위치하였다. 조선 건국 후 국가는 공물로서 도자기의 제작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전국의 도기소(陶器所)와 자기소(磁器所)의 정보를 수집하였는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기록이 바로 그러한 제도의 산물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천안군, 목...

  • 장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시대부터 활성화된 시장으로, 천안시 지역에서 열리는 5일장. 장시는 조선 시대 이후 형성되었던 시장을 뜻한다. 조선 초기에는 상업을 억제하는 정책 때문에 정기적인 장시가 형성되기 어려웠지만, 향시(鄕市) 형태의 시장은 존재했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15세기경 농업 기술이 향상되자 잉여 농산물을 팔기 위해 한양 주변에 장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점차 지방에까지 확산되어 순조 대에...

  • 목천 16의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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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이인좌의 난 때 반란군에 대항하여 의병을 일으켰던 목천 사족 16명.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반란군이 청주를 장악하고 서울로 향하기 위해 목천현에 머물 때 군사를 일으켜 반란군을 격파한 뒤 조정으로부터 양무원종공신(揚武原從功臣)에 책봉된 16명을 가리켜 ‘목천 16의사’라고 한다. 1728년(영조 4) 소론과 남인 일부는 영조와 노론 세력을 제거하려는 목적에서 반...

  • 이괄의 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인조반정 직후 논공행상에 대한 불만으로 이괄이 내란을 일으키자 인조의 피난 행렬이 천안을 지난 사건. 1623년(인조 1) 서인 세력은 인조반정에 성공하였다. 그 결과 주도적 역할을 하였던 33인을 등위로 나누어 책록하였다. 그중 2등에 녹훈된 이괄(李适)[1587~1624]은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도모하였다. 이에 1624년 인조는 공주로 피난을 떠나게 되어...

  • 이몽학의 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임진왜란 중인 1596년에 충청도 홍산에서 이몽학 등이 역모를 일으키자 충청·전라 지역민들이 크게 호응하였으나 진압된 사건. 이몽학(李夢鶴)[?~1596]은 왕실의 서얼 출신으로 임진왜란 중 민심이 이반된 틈을 이용해 모속관(募粟官)[식량을 모으는 임무를 맡은 관리] 한현과 함께 거사를 계획하고 충청도 홍산(鴻山) 무량사에서 반란군을 규합하였다. 1596년 7월 6일 반...

  • 이인좌의 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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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영조 즉위 직후 정권에서 배제된 소론과 남인 일부가 연합하고 이인좌가 중심이 되어 반란을 일으킨 사건. 경종이 재위 4년 만에 죽고 영조가 즉위하자 정권에서 배제된 소론과 남인 일부 세력은 영조와 노론을 제거하기 위한 반란을 일으켰다. 이인좌(李麟佐)[?~1728]가 대원수가 되어 반란을 지휘하였고, 반란군은 충청도 청주를 점령하면서 북진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반...

  • 임진왜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충청남도 천안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벌어진 전쟁. 1591년 일본 전국을 평정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조선 침공을 계획하고 1592년 수륙 양군을 편성하여 부산포를 통해 조선을 침략하였다. 부산과 김해를 통해 총 20만 명에 이르는 대군이 조선 땅에 이르렀다. 조선은 주요 군관을 임명하여 대비토록 하였으나 충주 전...

  • 직산 전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정유재란 중 천안 지역의 직산 소사벌에서 벌어진 명군과 일본군과의 전투. 정유재란이 시작되자 명은 조선의 급보를 받고 양호(陽鎬)를 경리 조선 군무(經理朝鮮軍務), 마귀(麻貴)를 제독(提督)으로 삼아 조선에 원병을 파견하였다. 이때 북상하던 일본군은 전주를 점령하고 계속 공주(公州)·전의(全義)·진천(鎭川)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일본 흑전장정 부대가 직산(稷山)에 이르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