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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4010
한자 越境地
이칭/별칭 비입지,외면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이정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명

[정의]

천안 지역에 있었던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특수 행정 구역.

[개설]

월경지는 소속 읍과 따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군현(郡縣)의 특수 구역이었다. 월경지라는 독특한 행정 구역이 존재했던 것은 큰 고을의 물자 조달 문제와 관련이 있다. 월경지는 소속된 고을과 경계를 접하지 않고 다른 지역에 동떨어져 있지만 조세는 소속 고을에서 거두었다. 이것은 과거의 연고지, 생선·소금과 같은 물자의 조달 문제, 조운(漕運)·조창(漕倉)과의 관계 등으로 인해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고 큰 고을인 경주·안동·진주·전주·나주·충주·청주·천안·홍주 등에 특히 집중되어 있었다. 천안 지역의 월경지천안군 4곳, 직산현 4곳 등 모두 8곳의 월경지가 고려 후기에 정해져서 조선 후기까지 존속했었다.

[형성 및 변천]

천안시는 조선 총독령 11호로 천안군, 목천현, 직산현이 합쳐 한 고을이 된 고장이다. 직산은 성환과 직산, 입장, 성거 등 4개 면으로 형성된 작은 소읍이었으나 경양현(慶陽縣)[또는 면], 안중면(安仲面), 외야곶면(外也串面), 언리면(堰里面) 등 4곳을 월경지로 두었고, 천안군은 고려 시대 때 부(府)로 커다란 군으로서의 대접을 받았으나 조선 시대에 들어와 천안읍과 풍세 광덕을 관할하는 소군(小郡)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예산 지역의 신종면(新宗面), 아산 지역의 덕흥면(德興面), 돈의면(頓義面), 모산면(毛山面) 등 4곳을 월경지로 두면서 어염과 도자기 등을 생산하는 특혜를 누리게 되었다. 이 월경지는 1906년 마지막 월경지를 정리할 때까지 전국 73개 소 중에서 천안 지역이 8개 소나 차지하고 있었다.

천안군월경지인 돈의면과 모산 부곡, 직산의 안중면과 대야곶면, 언리면은 시원(始原)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신라와 고려 초까지는 향(鄕), 소(所), 부곡(部曲)으로 존속하다가 1018년(고려 현종 9년)에 월경지가 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천안군월경지 신종면의 경우 고려 초 예산이 천안의 속현이었다가 1029년에 독립될 때 부곡이었던 신종만은 계속 영유하였으며, 덕흥면의 경우 몽고난 때 피난지로 이용키 위한 방편으로 계속 보유한 듯 하다. 또한 직산의 월경지 경양현은 1396년(조선 태조 5년)에 귀속되었음이 각종 전적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 시대에 발원한 향, 소, 부곡이 군현제 실시 때 월경지로 바뀌어 천 년 간 지속되었다. 월경지의 불합리를 조선 시대부터 논의되어 갑오개혁 때까지 거론되었지만 결국 1906년(광무10년)에 완정 정리, 인접 군현에 귀속시켰다. 이때 신종면은 예산군 신종면으로, 경양면은 평택군 경양면으로 바뀌었다. 그후 1913년 공포된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면의 명칭도 대거 개칭되거나 사라졌다. 따라서 지금은 월경지의 흔적도 거의 사라졌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천안군월경지 신종면은 현재 예산군 신암면 신종리와 신택리 두 마을이다. 신종면은 원래 신종(新宗), 상신(上新), 하신(下新), 택동(宅洞)의 네 마을이었는데, 1906년 예산군의 신종면이 되었다. 덕흥면은 『영성지』에 선장도(仙掌島)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곳은 섬이 아니라 돗개나루 해안부락이다. 현재 아산군 선장면 둔포리에서 당진군 우강면 대경리로 이어지는 나루이다. 돈의면은 고려 시대 향(鄕)이었으며, 현재 아산시 인주면과 문방리, 해암리 일대이다. 모산면은 고려 시대 부곡으로 현재 둔포면 운교리, 송용리, 신양리, 관대리, 신항리, 봉재리 일원이다.

직산현월경지 경양현은 현재 지명에서 찾기가 쉽지 않지만 기록상으로 평택시 서면 탁두리, 신대리, 본정리, 노양리 일대로 비정한고 있다. 안중면은 평택시 현덕면 황산리 일대이고, 언리면은 현 평택시 오성면 대반리, 당거리 일대이다. 외야곶면은 현 평택시 포승면 신영리 일대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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