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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932
한자 柳重權
이칭/별칭 원희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내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3년 11월 2일연표보기 - 유중권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1일 - 유중권 갈전면 아우내장터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
몰년 시기/일시 1919년 4월 1일연표보기 - 유중권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63년 - 유중권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1년 - 유중권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거주|이주지 유중권 거주지 -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 428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유중권(柳重權)[1863~1919]은 1919년 4월 1일 갈전면(葛田面) 아우내 장터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여 일본 헌병의 흉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교육에도 관심이 커서 사재를 털어 흥호학교(興湖學校)를 세웠고, 교회를 세워 민중을 교화하였다.

[가계]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원희이다. 부인은 이소제(李少悌)이고, 유우석(柳愚錫)유관순(柳寬順)의 아버지이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3일 이화 학당에 다니며 서울 만세 시위에 참여했던 딸 유관순이 고향으로 내려와 서울의 독립 만세 운동 소식을 전하고 고향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일으킬 것을 설득하자, 동생 유중무(柳重武)·조인원(趙仁元) 등과 4월 1일 아우내 장날을 기해 만세 운동을 일으키기로 거사를 계획하였다. 딸 유관순은 인근 지역의 유림 대표와 유력 가문의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만세 운동에 나설 것을 설득하는 한편,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만세 운동에 사용할 태극기를 만들었다.

1919년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 약 3천 명의 장꾼이 모여들었다. 오후 1시 조인원이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유관순은 장대에 큰 태극기를 매단 채 독립 만세를 선창하였다. 유중권 부부와 조인원·김상헌·김상훈·김교선·김상철·조병호 등이 시위 대열을 앞장서서 이끌었다.

3천여 명이 운집한 아우내 장터는 삽시간에 대한 독립 만세 소리로 진동하였으며, 여세를 몰아 시위 군중은 일본 헌병 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시위 대열이 접근하자 기세에 놀란 일본 헌병들이 총을 난사하였고, 천안에서 출동한 수비대까지 합세하여 총검을 휘둘렀다. 이 과정에서 일본 헌병의 총탄에 맞아 유중권과 부인 이소제를 비롯한 19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유중권의 공훈을 기려 1963년 대통령 표창을, 1991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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