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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025
한자 歷史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내수

[정의]

천안군·목천현·직산현의 건치 연혁과 천안의 역사.

[개설]

천안은 충청남도의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충청북도의 청원군, 진천군과 접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아산시와 남쪽으로는 공주시, 세종특별자치시에 접하고, 북쪽으로는 경기도 평택시, 안성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현재 천안은 국토의 중핵 도시로서 수도권의 배후이자 충청남도 서부 지역의 관문이며, 국도·철도, 고속도로·도로가 삼남 분기하는 교통 요충지이다.

천안의 역사는 천안군(天安郡), 목천현(木川縣), 직산현(稷山縣)의 세 군으로 발전해 오다가 1914년에 이르러 통합되어 천안군이 되었다. 다시 1963년 1월 1일에 천안시와 천원군(天原郡)으로 갈라졌다. 이후 1991년 천원군천안군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1995년 5월 10일 시군이 분리된 지 33년 만에 천안시로 통합되었다.

[고대]

천안은 광덕면 대평리에서 동검, 병천면 봉황리에서 소형 간 돌도끼, 두정동에서 간돌검, 홈자귀[有溝石斧] 등의 유물이 출토되어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천안의 역사가 기록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삼한 시대로 마한 목지국의 터전이 지금의 직산 지역으로 비정되기도 한다. 이곳은 신라 시대에는 대록군(大鹿郡)과 그 영현이었던 순치현(馴雉縣)이 있던 지역이다.

대록군은 본래 백제의 대목악군(大木岳郡)을 경덕왕이 개명하여 목주(木州)라 한 곳이다. 또한 백제의 온조왕이 옛 마한 지역을 통일하고 백제를 건국할 때 환성(歡城)이라 한 곳으로 위례성(慰禮城)이라고도 불렀다. 지금의 천안 입장면 호당리북면 운룡리에 있는 위례산성이 바로 그 유적이라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으나, 일부 학자들은 부인하고 있다.

뒤에 고구려가 세력을 장악했을 때에는 사산현(蛇山縣)이라고 하였다. 순치현은 백제의 감매현(甘買縣)을 경덕왕이 개명한 것으로 풍세현(豊歲縣)이라 부른다.

[고려]

고려 시대 천안 지역은 천안부와 그 영현인 풍세현과 직산현, 그리고 청주의 목주가 있었다. 천안군의 건치 연혁을 보면, 천안군은 930년(태조 13) 삼국의 전략적 요충지인 동서 두솔(兜率)을 합해 천안부(天安府)로 하고 도독(都督)을 두었다. 대목악(大木嶽)·사산(蛇山)·탕정(湯井)의 세 고을을 갈라서 천안도독부를 두었다.

995년(성종 14)에 환주(歡州)라 개칭하고 도단련사(都團練使)를 설치하였다가, 1005년(목종 8)에 단련사를 폐하였다. 이후 1018년(현종 9)에 천안이라 다시 칭하고 지부사(知府使)를 두었다. 이 상태로 오랫동안 계속되다가 1253년(고종 40)에 몽고가 쳐들어오자 수도는 강화도로 천도하고, 모든 고을은 해도(海島)를 소개하도록 명령이 내렸다. 이때 천안군도 몽고군을 피하여 선장도(仙藏島)에 들어갔다가 다시 전란이 끝나자 옛 지역으로 돌아왔다. 1310년(충선왕 2)에 군명을 영주(寧州)라 개칭하고, 1362년(공민왕 11)에 다시 천안부로 복칭되었는데, 별호는 임환(任歡)이었다.

직산현의 건치 연혁을 보면, 직산현은 본래 마한의 목지국(目支國)의 옛터로 마한 70여개 나라의 중심지였다. 그 후 백제에 들어와서 위례성(慰禮城)이라 불렀고 백제 온조왕이 졸본부여(卒本夫餘)로부터 남하하여 나라를 열고 이곳에서 개국하였다 한다. 후일에 고구려가 취하여 사산현을 설치하고, 신라에 들어와서는 백성군(白城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명칭은 역시 사산현으로 불렀다.

고려 시대가 되자 군명을 직산으로 고쳤으며, 1018년(현종 9)에 다시 천안부에 소속하게 하였다가 뒤에 감무를 두었다. 풍세현은 신라의 순치현을 고려 초에 풍세현이라 했으며, 1018년에 천안부에 내속했는데, 별호를 자천(秭川)이라 하였다.

목천현 건치 연혁을 보면, 목천은 고대에 마한의 영지로 있다가 백제 온조왕위례성에 도읍하고 동북 백리의 땅을 마한 왕에게 양도 받으니 바로 목천이 그 남전(南甸)에 해당한다고 전하고 있다. 후일 백제는 이곳에 대목악군(大木嶽郡)을 설치하였다.

통일 신라의 영토가 되자 757년(경덕왕 16)에 대록군(大麓郡)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그리고 풍세면에 해당되는 순치현(馴雉縣)과 전의에 해당하는 금지현(金池縣)을 대록군의 속현으로 삼았다.

고려 초기에는 목주(木州)라고 개칭하고 청주(淸州)의 속현으로 삼더니 성종 때부터 신정(新定)이란 별칭으로 부르게 되었다. 1172년(명종 2)에 감무(監務)를 배치하여 작은 고을이 되었다.

[조선]

천안군은 조선에 이르러 1413년(태종 13)에 행정 구역을 개편할 때 군수도(郡守都)로 책정되어 영산군(寧山郡)이라 개칭하더니 1416년(태종 16)에 다시 천안으로 복칭되었다. 조선 초 천안의 호구는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506호에 2,385명이었다.

목천현은 고려 시대까지 목주로 불리다가 1413년에 목천현으로 개칭하였고, 1416년에는 현감(縣監)을 두어 다스리게 하였으며, 청주진(淸州鎭)의 속현이 되었다. 조선 초 목천의 호구 수는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404호에 2,286명이었다. 그 후 효종 6년에 아비 죽인 죄인 잉덕의 출생지라는 이유로 폐군하여 전의현에 소속되었다.

직산현은 고려 시대의 직산인데, 1393년(태조 2)에 환관(宦官) 김연(金淵)이 명나라에 들어가 황제를 모시고 있다가 사신이 되어 돌아오자 직산을 지군사(知郡事)로 승격시켰다가, 1401년(태종 원년)에 강등하여 감무를 설치하였다. 1413년에는 전국의 행정 구역을 개편할 때 직산에도 현감을 두었다. 조선 초 직산의 호구는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553호에 2,111명이었다.

1505년(연산군 11)에 경기도에 이속되었다가, 1507년(중종 2)에 다시 충청도로 환원되었다. 임진왜란 후에 평택 현감 유경원(柳敬元)이 관곡을 모두 탕진하여 고을의 형편을 이루지 못하니 평택현을 폐하여 직산현에 병합하였다. 이후 6년만인 1618년(광해군 10)에 다시 복구되었다.

1685년(숙종 11)에는 진천현(鎭川縣)에 불륜아가 나서 폐군이 되고 목천현 소속으로 되어 5년간 목천 현감의 지배를 받다가 숙종 16년에 다시 복구되었다. 그 후 변동 없이 내려오다가 한일 강제병합 후 1914년 천안군으로 병합되었다.

[근대]

천안군은 1895년(고종 32)에 공주부 천안군이 되었다가 이듬인 1896년에 충청남도 천안군으로 되었다.

1910년 8월 29일 한일 강제 병합으로 일제의 통치 아래 들어갔다. 그러나 처음에는 조선 통감부 통제 아래 행정 기구는 그대로 존속되다가 10월 1일 조선 총독부가 설치되어 중앙 행정 조직이 공포되었다. 그러나 지방 행정 조직은 종전대로 유지하고 도의 관찰사(觀察使)는 도장관이라 하여 모두 친일파로 교체되었으며, 군수·현령도 일부가 친일파로 교체되었으나 대부분 유임된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가 1914년에 이르러 전국 360개 고을을 축소 조정하여 210군으로 편제하였는데, 그때 목천, 직산, 천안을 통합하여 천안군으로 개편하였다. 세 군현이 통합된 천안군은 1920년 영성면(寧城面)을 천안면(天安面)으로, 성산면(城山面)을 직산면으로 개칭하였다. 그리고 1931년 천안면이 천안읍으로 승격하여 1963년 천안시 승격의 모체를 이루었다.

[현대]

천안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고, 군정 3년을 거쳐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도 계속 천안군으로 존속되었다. 천안읍이 인구 5만이 넘고 도시의 형태를 갖춤으로 1963년 1월 1일 행정구역을 변경할 때 천안읍과 환성면이 합쳐 천안시로 승격되었다. 남은 부분에 천원군이 설치되어 천안이 천안시와 천안군으로 분리되었다. 이후 천안시는 지방 도시로 발전을 거듭하여 1973년 성환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3년에 인구 15만이 넘는 중도시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1985년 성거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2읍 10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천안시가 분리될 때 천원군이란 명칭은 시·군 명칭이 동일하면 혼동이 야기됨으로 각각 다른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던 행정 편의적 입장에서 만들어진 명칭이다. 그러나 군민의 정서에 천원군이란 명칭에 거부감을 갖게 되어 1991년 다시 천안군으로 복칭하였다.

이로써 천안군과 천안시는 일체감을 형성하여 1995년 5월 10일에 시군이 분리된 후 33년 만에 다시 통합되기에 이르렀다. 천안시는 천안시군 통합으로 서울특별시 보다 넓은 행정 구역을 보유하게 되었다. 또한, 지방 자치제의 실현과 함께 전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앞으로 많은 발전이 기대된다. 현재의 천안시는 시가지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경부선이 지나고 있으며, 남서로는 장항선이 이어져 있고, 서울·진천·아산·공주·평택·대전 방향으로 사통팔달의 육로가 펼쳐져 있는 충남의 대표 도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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