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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관리 공사동 노신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2027
한자 南館里貢士洞路神祭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남관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성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노제 제단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남관리 공사동 마을 지도보기 입구
성격 민간 의례|동제
의례 시기/일시 음력 7월 초하루
신당/신체 마을 입구 제단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풍세면 남관 2리 공사동에서 매년 음력 칠월 초하룻날 농사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남관리 공사동은 60여 호가 농사를 업으로 살아온 마을이다. 창원 유씨(昌原兪氏) 집안에서 연속으로 효자를 배출하여 정려(旌閭)가 하사된 이 마을은 선비가 많이 난다 하여 공사동(貢士洞) 또는 공사골이라 불리었다. 마을에서는 예로부터 해마다 칠월 칠석[현재는 음력 칠월 초하루]에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는 노신제를 지내 왔다. 노신제는 노신(路神), 토지신(土地神)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아 지내는 동제이며 노제라고도 한다.

제를 지낼 때는 일주일 전쯤 부정이 없는 사람 중에 길일인 생기복덕일(生氣福德日)을 가려 제주(祭主)와 축관(祝官)을 선정한다. 제주와 축관은 제를 앞두고 날마다 목욕재계하며 몸과 마음이 정갈히 하여 치성을 드리는데, 특히 초상집이나 부정한 곳은 일절 출입하지 않는다.

제수 비용은 예전에는 여럿이 패를 짜서 재주를 부리거나 하여 마을에 필요한 경비를 구하는 걸립(乞粒)을 집집이 돌아 주민들이 성의껏 기부한 돈으로 충당했으나 지금은 필요한 비용을 한 집당 얼마씩 나누어 낸다.

남관리 공사동 노신제에는 매우 엄격한 금기가 수반된다. 비단 제주나 축관뿐 아니라 마을에서도 일주일 전부터는 가축의 도살을 금하고 부정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한다. 또한 만일 노신제를 앞두고 초상이나 출산이 있으면 다시 날을 잡아 제를 지낸다. 설령 제물을 준비한 뒤에 부정이 발생하면 그 제물은 모두 없앤다고 한다.

[연원 및 변천]

공사동에서 노신제가 유래된 역사는 알 수 없으나 전염병을 막고자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옛날에 마을에 돌림병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그러던 어느 하루는 길을 지나던 노승이 노신제를 지내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일러 주어 제를 지냈더니 과연 기승을 부리던 전염병이 씻은 듯이 물러갔다. 그 이후로 마을에서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해마다 노신제를 지낸다는 것이다.

본래 노신제는 칠석날 제를 지냈으나 근래에 들어와서는 부정한 일이 생기는 것을 피하고자 칠월 초하룻날로 날짜를 앞당겨 제를 지내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마을 입구에 흙으로 작은 단을 쌓고 그 위에서 노신제를 지낸다. 별도의 신체나 신위는 없다.

[절차]

노신제가 열리는 날 아침 제주와 축관은 제사 장소 옆에 있는 개울에서 목욕을 한다. 이날 주민들은 마을의 좁은 골목길과 외부로 통하는 길목, 농로 등을 말끔히 청소하고 길을 닦는다. 아울러 노신제를 지내는 제단에 모래를 펴서 제사 장소를 정비한다.

노신제는 새벽에 두 사람만 참석한 가운데 조용히 치러진다. 제물은 쇠머리, 삼색과실, 포 등을 차려 놓고, 술은 한 달 전에 미리 담가 놓은 것을 사용한다. 제물이 차려지면 유교식 절차에 따라 제주가 술을 올리고 재배하며, 축관은 마을의 무사태평과 주민들의 건강, 소·말·양·돼지·개·닭 등 육축(六畜)의 번성을 기원하는 축문을 읽는다. 독축을 마치면 축문을 태워 소지(燒紙)[소원을 빌려고 흰 종이를 사르는 일]를 대신한다.

[부대 행사]

노신제를 마친 이튿날은 전체 주민이 모여서 음복을 한다. 이를 위하여 제물과는 별도로 푸짐하게 술과 음심을 준비하여 점심을 먹고 하루를 즐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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