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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안리 도촌 산신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1993
한자 納安里道村山神祭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납안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성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산제당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납안리 도촌 마을 지도보기
성격 민간신앙|동제
의례 시기/일시 시월상달
신당/신체 산제당|느티나무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납안리에서 매년 시월상달에 공동체의 안녕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납안리 도촌 산신제는 매년 가을걷이를 마친 음력 시월상달에 길일을 택하여 지낸다. 이를 위하여 마을에서는 시월 초하룻날 전체 주민이 참여하는 대동 회의를 열고 제반 절차를 상의한다. 이 자리에서는 먼저 제삿날을 결정하고 나서는 주민 중에서도 길일인 생기복덕일(生氣福德日)을 따져 부정이 없고 정갈한 이로 제관과 축관, 그리고 음식을 전담할 공양주(供養主)를 선정한다.

산신제가 임박하면 이 세 사람은 매일 찬물로 목욕재계하면서 몸을 깨끗하게 할 뿐 아니라 부정한 것이 눈에 띄지 않도록 대문 밖 출입을 삼간다. 또한 이 기간에는 부인과의 잠자리를 피해야 하며 술·담배와 육식을 금한다. 아울러 부정한 사람과 잡귀잡신의 출입을 금하는 표식으로 마을 입구와 산제당에 금줄을 치고 제관의 집에는 황토를 편다.

산신제의 비용은 대동 기금에서 충당한다. 제물은 통돼지, 삼색과실, 떡, 메, 포, 술 등인데, 술은 며칠 전에 고양주가 직접 담가서 산제당에 모셔 둔다. 이를 조라술이라 한다. 한편, 고양주가 시장으로 나아가 제물을 살 때에는 값을 흥정하거나 깎지 않고 상인이 달라는 대로 다 주어야 한다.

[연원 및 변천]

납안리 도촌은 예전에는 면내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다고 한다.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병인박해(丙寅迫害)[1866] 때 경상도 내포 방면의 천주교 신자들이 도촌 마을로 많이 피신하여 살았는데 페롱(Férron)을 비롯한 리델(Ridel), 칼레(Calais) 등의 프랑스 신부들이 마을 근처로 피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이 마을에 거주하던 천주교도 다섯 명도 체포되어 공주 관아에서 사형이 집행되기도 하였다.

천주교도들이 숨어 살기에 안성맞춤일 만큼 지세가 험한 산간에 자리 잡은 마을이었는데, 이러한 지리적 조건은 산신제와 같은 동제가 전승되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납안리 도촌 산신제는 마을이 형성되면서 유래되었다고 말로 전해질 뿐이고 그 연원이나 유래는 확실치 않다.

[신당/신체의 형태]

산제당은 마을 뒤편에 있다. 벽돌로 지은 당집형 제당으로서 단칸 슬레이트 지붕이고 넓이는 10㎡[3평] 남짓한 크기이다. 당 안에는 산신도나 신위는 봉안하지 않고 단지 제기(祭器)만 보관하고 있을 뿐이다. 산제당 앞에는 신목으로서 치성을 받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고목 한 그루가 서 있다.

[절차]

납안리 도촌 산신제는 저녁 열 시에서 열한 시 사이에 지낸다. 당일 날이 어두워지기 이전에 통돼지를 잡고 제수를 준비하여 산제당에 오른다. 제사 드리는 제장에 도착하면 먼저 화톳불을 놓아 불을 밝히고, 고양주는 미리 담가 놓은 조라술을 걸러 제물을 차린다. 산신제는 전형적인 유교식 절차에 따라 강신(降神)-분향(焚香)-초헌(初獻)-독축(讀祝)-아헌(亞獻)-종헌(終獻)-소지(燒紙)의 순으로 진행된다. 마지막 절차인 소지는 부정을 없애고 소원을 빌려고 흰 종이를 사르는 것인데, 가장 먼저 마을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만동 소지(萬洞燒紙)를 올린 다음 세대별로 한 장씩 모두 올려 준다. 소지를 마치면 제관 일동은 삼배를 하고 산신제를 마친다.

[부대 행사]

산신제를 마치면 제관 일행은 그 자리에서 음복하고 마을로 내려와 주민들과 더불어 조촐하게 술잔치를 베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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