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1961
한자 樓亭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집필자 이왕기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풍광이 수려한 곳이나 휴식 공간에 지은 누각과 정자.

[개설]

누정은 다른 말로 누각과 정자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보통은 경관이 좋은 곳, 사람들이 모이기 쉬운 곳, 농경지 가까운 곳 등에 작은 건물을 지어 경관을 즐기거나 휴식을 취하려고, 또는 풍류를 즐기려고 누정을 건립한다. 그래서 누정은 강변이나 바닷가, 계곡, 언덕이나 산 위, 연못가, 마을 어귀나 주변, 농경지 주변, 집 안 등 다양한 곳에 건립되었다. 경관이 좋은 곳에서는 휴식과 풍류를 즐기지만, 농경지 가까이에 있는 것은 모정(茅亭)이라 부르며 주로 농사일을 하다가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 사용된다.

[변천]

천안에는 역사적으로 많은 누정이 있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여러 문헌을 보면 천안에는 선화루(宣化樓)·회고정(懷古亭)·남원루(南院樓)·명절정(明節亭)·수선정(水仙亭), 직산의 제원루(濟源樓), 목천의 동작루(東作樓)·노은정(老隱亭)·복귀정(伏龜亭)·구암정(龜巖亭)·조양정(朝陽亭)·경한정(景寒亭)·명학정(鳴鶴亭), 풍세의 취음정(醉吟亭), 병천의 한강정(寒岡亭)·구암정(龜巖亭) 등 많은 누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거의 없어지고 몇 개만 남아 있다.

이 중에서 누정 몇 개의 내력을 보면 선화루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누정이며 천안 객관의 동쪽에 있던 누정으로서, 후에 동락당(同樂堂)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명절정은 조선 후기 천안군수 조경빈이 활을 쏘는 사정(射亭)으로 짓고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당호를 지었다. 한강정은 유학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거처에 있었던 누정으로 16~17세기에 건립되었다. 수선정도 16~17세기 조선에 건립되었던 누정으로, 군수 민영(閔韺)이 세우고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이 기문을 썼다.

근래에 들어와서 지은 누정도 있다. 용주정(龍珠亭)은 1963년 천안 객사(客舍)가 낡아서 헐어낼 때 그 자재의 일부를 천안 사직동 남산에 옮겨 세운 것이다. 없어진 누정 중에는 회고정·선화루·명절정과 같이 기문이나 시문이 남아 있는 것도 있다. 현재 천안 지역에 남아 있는 누정으로는 영남루(永南樓)·노은정·복귀정·용주정 등이 있다.

[형태]

천안 지역 누정의 규모는 사방을 한 칸으로 작게 만들기도 하지만 큰 것은 사방 세 칸 또는 네 칸인 경우도 있다. 누정에는 대부분 문을 달지 않고 사방을 터 두었다. 지역에 따라서는 누정 내부에 방을 두는 사례도 있다. 내부에 방을 만들면 온돌방 또는 마루방으로 만든다. 이런 누정에는 방과 마루가 함께 있어 겨울에도 사용할 수가 있다.

누정의 평면 형태는 정사각형·직사각형·육각형·팔각형·정자형(丁字形)·열십자형·부채꼴형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천안에 남아 있는 누정의 평면 형태는 모두 정사각형이거나 직사각형이다.

바닥 구조는 일반적으로 나무를 이용한 우물마루 구조로 만들지만 긴 판재를 이용하여 장마루로 만들기도 한다. 난간은 간단한 형태의 평난간으로 만들기도 하고, 장식이 많고 화려하게 보이는 계자 난간으로 만들기도 한다.

천안의 대표적인 누정으로 영남루를 들 수 있다. 영남루는 옛 천안 삼거리동남구 삼룡동 충절로에 있으며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에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높은주춧돌을 놓고 바닥을 들어 올린 다음에 계단을 두고 위로 오르게 하였다. 주변 기둥 사이에는 난간을 설치하였고 천장은 서까래가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마감하였다. 규모가 크고 단천으로 화려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천안 지역에는 누정이 많이 있었으나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3~4동에 불과하다. 현존하는 역사적인 누정은 잘 보존·관리하여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도심지 또는 공원 등에 누정을 건립하는 사례가 많은데, 앞으로 건립하는 누정은 천안의 지역성이나 역사성을 잘 담아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