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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1117
한자 李圭祜
이칭/별칭 의원(義元),이광춘(李光春)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종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52년연표보기 - 이규호 출생
추모 시기/일시 1862년 - 이규호 정려 하사
성격 효자
성별
본관 경주(慶州)

[정의]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의원(義元)이다. 월천부원군(月川府院君) 이정암(李廷馣)의 10대손이며, 부인은 경주 김씨(慶州金氏)이다. 이광춘(李光春)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활동 사항]

이규호(李圭祜)[1752~?]는 효심이 지극하여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들자 밤을 새워 손수 약시중을 들며 정성을 다해 간병하였으나 어머니의 병은 차도가 없이 더욱 위중해졌다. 좋다는 약은 모두 구하여 드렸으나 약효를 보지 못하고 위독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어머니의 입에 흘려 넣어 희생하게 하였다.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 있을 때 이규호는 어떤 사건에 연좌되어 전라도 임실(任實)의 옥에 갇힌 적이 있었다. 감옥에 있으면서도 어머니의 약을 구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였고 약이 구해지면 사람을 사서 천리 길을 멀다 않고 보내니 감동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얼마 후 감옥에서 어머니의 부고(訃告)를 받은 이규호는 특별 은전(恩典)을 받아 출옥해서 집으로 달려갔으나 이미 출상을 하여 그토록 그리던 어머니의 모습을 영영 뵐 길이 없었다. 이규호는 어머니 영전에서 목 놓아 울면서 어머니를 부르다가 너무도 격한 나머지 피를 많이 토하고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한편 부인인 경주 김씨는 이규호가 죽자 땅을 치고 통곡하며 장례(葬禮)를 모두 치르고 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어 남편의 뒤를 따랐다.

[상훈과 추모]

1862년(철종 13) 이규호이규호의 부인 경주 김씨에게 효열 정려(孝烈旌閭)가 동시에 내려졌다. 이 정려는 천안시 성남면 석곡리 대양 마을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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