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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980
한자 安昌鎬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내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4년 1월 5일연표보기 - 안창호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24일 - 안창호 충남 공주 영명학교에서 독립 만세 운동 회합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안창호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일경에 체포
활동 시기/일시 1932년 5월 22일 - 안창호 임시 정부 후원회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34년 4월 10일 - 안창호 하와이 애국단 가입
몰년 시기/일시 1969년 12월 31일연표보기 - 안창호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3년 - 안창호 건국 포장 추서
성격 독립운동가|종교인
성별
대표 경력 하와이 한인 교회 목사|하와이 애국단원

[정의]

일제 강점기 천안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안창호(安昌鎬)[1884~1969]는 서울 사람이나 독립운동 당시 주소지가 천안읍내 예수교회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천안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임을 알 수 있다. 이로 인하여 옥고를 치르고 하와이로 건너가 목사로 재직하면서 임시 정부 독립운동자금 모집 운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안창호는 1919년 3·1 운동 당시 천안군 천안면 읍내리에 있는 교회의 목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서울에 이어 충남 지역에서도 3·1 운동이 일어나자 안창호는 3월 24일 공주 영명학교에서 현석칠·오익표·이규상·안성호 등과 회합을 갖고, 4월 1일 공주 장날에 맞추어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할 것을 협의하였다. 이같이 안창호는 만세 운동을 선도하다가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1919년 8월 29일 석방되었다.

그 후 안창호는 하와이로 건너가 목사로 재직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32년 5월 22일 감리교회에서 현순(玄楯)으로부터 윤봉길의 홍구 공원 의거의 전말을 전해 듣고 임시 정부 후원회에 참여하였다. 그리고는 후원회를 위해 매년 12달러씩 출연할 것을 약속하는 등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독립운동자금 모금 운동에 앞장섰다.

1932년 2월 14일에 임성우 등의 원동 지역 특무 공작을 후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와이 애국단이 조직되자, 안창호는 1934년 4월 10일 하와이 애국단에 가입하여 임시 정부와 원동 지역 특무 활동을 후원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69년 12월 31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안창호의 공훈을 기려 1993년에 건국 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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