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930
한자 柳愚錫
이칭/별칭 유준석(柳俊錫),유관옥(柳寬玉)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내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9년 5월 7일연표보기 - 유우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1일 - 유우석 공주 독립 만세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8월 29일 - 유우석 공주 지방 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음
활동 시기/일시 1927년 - 유우석 원산 청년회 조직
몰년 시기/일시 1968년 5월 28일연표보기 - 유우석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유우석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유우석 출생지 -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 428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순국선열 유족회장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유우석(柳愚錫)[1899~1968]은 1919년 4월 1일의 공주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가계]

본관은 고흥(高興). 병천 아우내 장터의 만세 시위를 준비하고 주도한 유중권(柳重權)의 장남이자 유관순(柳寬順)의 오빠이다.

[활동 사항]

천안 용두리 지령리 마을은 1900년대 초 주민들이 감리교로 개종하여 마을 자녀들이 일찍부터 신교육을 받았다. 지령리 마을에서 자란 유우석김구응이 교사로 있던 수신면 장산리의 감리교회가 운영하는 장명학교에서 조만형과 함께 공부했다.

1919년 4월 1일 천안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유우석은 공주 영명학교 학생으로 공주에 있었기 때문에 병천 만세 운동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같은 날 영명학교가 중심이 된 공주 읍내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3월 12일과 15일에 걸쳐 공주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된 데 자극을 받은 영명학교 교사 김관회(金寬會)·이규상(李圭商)·현언동(玄彦東), 졸업생 김사현(金士賢), 재학생 오익표(吳翼杓)·안성호(安聖鎬), 목사 현석칠(玄錫七)·안창호 등이 3월 24일 밤 9시경 영명학교에서 모임을 가지고, 4월 1일의 공주읍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때 유우석도 학생 대표로서 이 계획에 참여하였다.

영명학교 교사 김관회가 학생들을 동원하기로 했고, 서울에서 가져온 「독립 선언서」를 등사판으로 밀어 1천 장을 준비하기로 하였다. 3월 30일 김관회로부터 학생 동원과 「독립 선언서」의 등사를 부탁받은 영명학교 조수 김수철(金洙喆)의 집에서 유우석노명우(盧明愚)·강윤(姜允)·윤봉균(尹鳳均) 등과 독립 만세 운동 계획에 대하여 논의한 뒤, 이튿날 오후 3시경 이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독립 선언서」 1천여 장을 등사하고 대형 태극기 4개를 만들었다.

4월 1일 오후 2시, 유우석은 다른 학생 대표들과 함께 태극기와 「독립 선언서」를 장터 모인 시위 군중에게 나누어 주고 선두에 서서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날의 독립 만세 운동은 일제의 강력하고 신속한 저지로 좌절되어 비교적 소규모로 전개된 채 끝났고, 유우석은 주동자로 체포되었다. 한편, 같은 날 아우내 장터의 대대적인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동하였던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李少梯)가 현장에서 순국하고, 동생인 유관순도 체포되었다.

유우석은 8월 29일 공주 지방 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3년 강원도 양양군(襄陽郡)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동하였던 조화벽(趙和璧)과 결혼하였으며, 1927년에는 원산 청년회(元山靑年會)를 조직해 활동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함흥 지방 법원에서 징역 4년형을 구형받는 등 계속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유준석(柳俊錫), 유관옥(柳寬玉)이라는 가명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광복 후 유우석은 대한 노동 총연맹을 결성하여 위원장을 역임하였고, 전국 혁명자 총연맹 중앙 집행 위원, 통일 독립운동자 중앙 협의회 간사, 유도회 청년회 총본부장, 순국선열 유족회장 등을 역임하다 1968년 5월 2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유우석의 공훈을 기려 1982년 건국 포장을, 1990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박** 柳俊錫은 1916년 공주영명학교 입학하고, 기미년 공주읍장날(유관순 가족들 병천과 동일시각) 항일만세 주도하여 징역6월집행유예2년형을 받았습니다. 당시 공주교도소를 면회하였던 조화벽 영명학교 교사가 유준석과 결혼하고 그 동생들과 같이 강원도 양양 친정으로 피신하여 살기도 하였습니다. 가족이 모두 애국지사 입니다. 2015.04.02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