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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취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896
한자 尹就甲
이칭/별칭 반계(磻溪)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선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25년연표보기 - 윤취갑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62년 - 윤취갑 증광시 진사 3등 36위 합격
활동 시기/일시 1684년 - 윤취갑 경릉 참봉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89년 - 윤취갑 내섬시 직장에 제수
성격 효자
성별
본관 남원(南原)

[정의]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남원(南原), 호는 반계(磻溪)이다. 취부(醉夫) 윤결(尹潔)의 종증손자이다.

[활동 사항]

윤취갑(尹就甲)[1625~?]은 목천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부모의 음식과 의복을 갖추는 데 정성을 다하지 못함을 한탄하여 아우 윤현갑과 함께 고기를 잡아 봉양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들자 대변을 맛봐 병세를 살폈으며, 삼년상을 치를 때는 상복을 벗지 않고 시묘살이를 하였다. 묘소 앞의 잣나무를 붙들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슬프게 통곡하였는데, 눈물이 떨어진 잣나무에 반점이 생기더니 불과 몇 년 만에 스스로 말라죽었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이 그 잣나무를 ‘효자목(孝子木)’이라 부르며 서로 베지 않기로 약속하며 살폈다고 한다.

윤취갑은 1662년 38세에 되던 해에 증광시 진사 3등 36위 합격하였다. 1684년(숙종 10) 효행으로 천거되어 경릉 참봉(敬陵參奉)에 제수되었고, 1689년에 내섬시(內贍寺) 직장(直長)이 되었다.

윤취갑은 일찍이 우암 송시열에게 사사하였으며, 목천의 반계에 서실을 세워 학문을 닦았다, 우암 송시열이 지나가는 길에 서실기(書室記)를 지어 주었는데, 송시열의 문집인 『송자대전(宋子大全)』에 내용이 전한다,

[상훈과 추모]

효행으로 천거되어 관직이 직장에 이르렀으며, 동생 윤현갑은 참판(參判)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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