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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888
한자 李莢
이칭/별칭 자용(子用),남악(南嶽)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조항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83년연표보기 - 이협 출생
몰년 시기/일시 1665년연표보기 - 이협 사망
사당|배향지 양현사 - 충청남도 천안시 풍세면 삼태리 219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성주
대표 관직|경력 영릉 참봉

[정의]

조선 시대 천안 지역에 우거한 문신.

[가계]

본관은 성주이며 자는 자용(子用), 호는 남악(南嶽)이다. 부인은 전득중(全得中)의 딸인 천안 전씨(天安全氏)이다.

[활동 사항]

이협(李筴)[1583~1665]은 진사로 등과하여 영릉 참봉을 지냈다. 광해군 때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낙향하였다. 조정에서 여러 차례 부름을 받았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절의를 지켰다. 안곡(安谷) 이중명(李重明)이 만사(輓詞)에서 “소나무 잣나무처럼 눈 속에서도 푸르다[大冬松柏雪中靑].”라고 하며 이협의 절개를 칭송하기도 했다.

[상훈과 추모]

직산에 거주하였고 천안 전씨 전득중의 사위이므로 조정에서는 1807년 백헌(栢軒) 전신(全信)과 함께 검계 서원(儉溪書院)에 영정을 모시고 제사지내도록 하였다. 검계 서원은 1871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인해 사라졌으나 1897년 천안 전씨 후손들에 의해 ‘양현사(兩賢祠)’로 다시 태어났다. 철거된 검계 서원의 기와는 재실 보수에 쓰였고 목재는 천안 남산에 있는 용주정 건립에 쓰였다고 하나 확실치 않다. 현재 풍세면 삼태리 천안 전씨 시조 단소 및 재실[충남 문화재 자료 297호]에 검계 서원이 복원돼 있고, 매년 음력 3월 10일 제향을 올린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7.04.03 본관 수정 성산 -> 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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