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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869
한자 李範仁
이칭/별칭 성원(聖元),성원(性元),지산(芝山)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김경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8년연표보기 - 이범인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88년 - 이범인 별시 문과 병과 9위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905년 - 이범인 비서원승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906년 - 이범인 장원 부경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907년 - 이범인 봉상사 제조에 제수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전주
대표 관직|경력 궁내부 특진과|봉상사 제조

[정의]

조선 후기 천안 목천에 묘소를 조성한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원(聖元)[성원(性元)], 호는 지산(芝山)이다. 광평 대군의 17대손이며 비서감승(秘書監丞)을 지낸 이계하(李啓夏)의 아들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형조 판서를 역임한 이목연(李穆淵), 할아버지는 판의금부사를 지낸 이인명(李寅命)이다. 대대로 서울과 광주에서 살아온 문중이나 목천이 십승지지(十勝之地)로 꼽히는 살기 좋은 고장이며 학문을 숭상하는 고장이라고 여겨 증조부 때부터 목천과 인연을 맺었다 한다.

[활동 사항]

이범인(李範仁)[1858~?]은 1873년(고종 10) 식년시에서 진사 3등 177위로 합격하였고, 1888년(고종 25)에 별시 문과에서 병과 9위로 급제하였다.

1890년(고종 27)에 승정원의 주서로 추천되었고, 1891년(고종 28)에는 신좌균(申佐均)·이용구(李容九)·최창부(崔昌溥) 등과 함께 『홍문록(弘文錄)』에 올랐다. 1895년 1월 여주 목사로 부임하여 12월에 체직되었다.

1905년 비서원승(秘書院丞)이 되었다가 그해 8월에 공로를 인정받아 종2품 궁내부 특진관에 임명되었다. 1906년 12월에 장례원 부경(掌禮院副卿)에 임명되고 칙임관 3등에 임명되었다. 1907년 1월 다시 궁내부 특진관에 재임용되었고, 그해 2월 봉상사 제조(奉常司提調) 등을 역임하였다.

대한 제국이 멸망하기 이틀 전인 1910년 8월 27일에 품계가 정2품으로 올랐다.

[학문과 저술]

일기 형식의 『지산 종관록(芝山從官錄)』이 있다.

[묘소]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면 응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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