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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861
한자 洪大容
이칭/별칭 덕보(德保),홍지(弘之),담헌(湛軒)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경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31년 3월 1일연표보기 - 홍대용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65년 - 홍대용 홍억의 수행 군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옴
활동 시기/일시 1777년 - 홍대용 사헌부 감찰 역임
몰년 시기/일시 1783년 10월 22일연표보기 - 홍대용 사망
출생지 홍대용 출생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장산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홍대용 묘소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장산리
성격 학자|문신
성별
본관 남양(南陽)
대표 관직|경력 태인 현감|영천 군수

[정의]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학자.

[개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덕보(德保), 호는 홍지(弘之)이다. 담헌(湛軒)이라는 당호(堂號)로 널리 알려졌다.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지구의 자전을 주장한 실학자 겸 과학 사상가이다.

[가계]

홍대용(洪大容)[1731~1783]은 1731년(영조 7) 충청남도 천안군 수신면 장산리 수촌의 노론 명문가에서 출생하였다. 할아버지는 대사간을 지낸 홍용조(洪龍祚)이고, 아버지는 홍역이다. 어머니는 군수를 지낸 김방(金枋)의 딸 청풍 김씨(淸風金氏)이며, 부인은 이홍중(李弘重)의 딸 한산 이씨(韓山李氏)이다.

[활동 사항]

어린 시절 항상 잔병이 많은 허약한 체질이었던 홍대용은 12살 때인 1742년 김원행(金元行)의 석실 서원에서 학문의 길로 들어섰다. 김원행은 당대 기호학파의 이름난 학자로 평생 관직에 나가지 않고 교육에 전념했고, 그 밑에서 홍대용을 비롯한 수많은 학자들이 나왔다. 특히 홍대용이 힘써 공부한 분야는 천문학·수학·역산학·음악·병법 등이었는데, 이들 분야는 모두 당시의 과거 시험과는 관련이 없는 학문이었다.

젊을 때는 과거에 몇 차례 응시한 적도 있었지만 벼슬에 크게 뜻을 두지 않다가 44세에 처음 조상 덕으로 얻은 벼슬이 종9품의 선공감 감역이었고, 45세 때는 세자익위사로 세손[정조]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당시 정조에게 강의한 내용이 문집에 남아 있다. 1777년 사헌부 감찰을 거쳐 태인 현감과 영천 군수를 지냈다.

[학문과 저술]

지전설을 주장한 1760년쯤에는 지구가 움직인다는 생각은 우리나라에서만 새로운 것이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내세운 사람이 없을 때였다. 홍대용은 동양에서 처음으로 땅이 움직인다는 지전설을 주장하고 나섰다. 당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서양 과학에 큰 관심을 갖고 이를 배우기에 힘썼고, 새로운 학문을 외면하는 고루한 학풍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던졌다. 홍대용은 서양 과학이 실험 관측기구와 수학 때문에 발달한 것을 파악하고 스스로 그 방면에 힘쓰기도 했다. 특히 홍대용이 주장한 지전설(地轉說)과 우주무한론(宇宙無限論)은 화이(華夷)의 구분을 부정하여 민족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인간도 대자연의 일부로서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주목된다.

『담헌서(湛軒書)』에 수록된 글들은 약간의 시·서를 제외하면 거의가 북경에서 돌아온 뒤 10여 년 사이에 쓴 것이다. 홍대용이 북경을 방문한 것은 1765년 연행사의 서장관으로 임명된 작은아버지 홍억(檍)의 수행 군관이라는 명목으로 이루어졌다. 60여 일 동안 북경에 머물면서 두 가지 중요한 경험을 했는데, 하나는 우연히 사귀게 된 항저우[杭州] 출신의 중국 학자들과 개인적인 교분을 갖게 된 일이며, 다른 하나는 북경에 머물고 있던 서양 선교사들을 찾아가 서양 문물을 구경하고 필담을 나눈 것이다. 이때 북경에서 깊이 사귄 엄성(嚴誠)·반정균(潘庭筠)·육비(陸飛) 등과는 귀국 후에도 편지를 통한 교유가 계속되었고, 그 기록은 「항전척독(杭傳尺牘)」이라는 글로 문집에 남아 있다. 홍대용의 사상적 성숙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북경 방문은 「연기(燕記)」에 상세히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뒷날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기록 가운데 「유포문답(劉鮑問答)」은 서양 문물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과학 사상을 담은 『의산문답(醫山問答)』 역시 북경 여행을 계기로 작성되었다.

한편 서양 과학의 근본이 정밀한 수학과 정교한 관측에 근거하고 있음을 간파하고 『주해수용(籌解需用)』이라는 수학서를 남기기도 했다.

[묘소]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에서 속창리로 통하는 도로변에 묘소가 있으며, 충청남도 기념물 제101호로 지정되었다. 묘표석(墓標石)의 전면에는 ‘담헌 홍공 대용지묘 숙인 한산 이씨(湛軒洪公大容之墓 淑人韓山李氏)’라 적혀 있고, 왼쪽 뒷면에는 김흥근(金興根)이 찬한 비문이 새겨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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