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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795
한자 李埴
이칭/별칭 기지(器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경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63년연표보기 - 이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01년 - 이식 진사시 합격
몰년 시기/일시 1502년연표보기 - 이식 사망
추모 시기/일시 1544년 - 이식 이조 판서 겸 동지의금부사 추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568년 - 이식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가증
사당|배향지 청계 서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성격 문인|학자
성별
본관 진성

[정의]

조선 전기 천안에 우거한 문인·학자.

[개설]

이식(李埴)[1463~1502]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진사에 입격한 후 천안에 우거하며 학문과 후세 교육에 힘을 쏟았다. 이식의 학문에 대한 열정이 아들 이해(李瀣)이황(李滉)에게 이어져 큰 성과를 이루었다.

[가계]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기지(器之)이다. 고조할아버지 이자수(李子脩)는 고려 말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이 통헌대부 판전의시사에 이르렀는데, 정세운(鄭世雲)을 따라 홍건적 토벌에 큰 공을 세워 송안군에 봉해졌고 왜구를 피하여 안동에서 살았다. 증조할아버지 이운후(李云侯)는 중훈대부(中訓大夫) 군기시 부정(軍器寺副正)을 지내고 사복시 정(司僕寺正)에 추증되었다. 할아버지 이정(李禎)은 세종(世宗)최윤덕(崔潤德)을 따라 모련위(毛憐衛) 정벌에 공을 세워 2급의 관작을 하사받고 선산 부사로 제수되었다. 아버지 이계양(李繼陽)은 1453년(단종 1) 진사에 합격한 뒤 예안현(禮安縣) 온계리(溫溪里)로 이거하여 아들을 가르치고 글 읽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여러 번 추증되어 자헌대부 이조 판서 겸 지의금부사에 이르렀다. 어머니 영양 김씨(英陽金氏)는 부사직를 지낸 김유용(金有庸)의 딸인데, 정부인에 추증되었다. 부인은 문소 김씨(聞詔金氏)이며, 동생은 정국 4등 공신에 책봉된 이우(李堣)이다.

[활동 사항]

1501년(연산군 7) 진사시에 합격하였지만 이듬 해 39세의 일기로 요절했다. 이식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자녀에 대한 적극적인 훈육은 아들 이해이황이 크게 학문을 이루는 기틀을 제공하였다.

[학문과 저술]

어릴 때부터 뛰어난 재질로 동생 이우(李堣)와 함께 학문에 열중하였다. 문소 김씨에게 장가들었는데, 장인인 예조 정랑 김한철(金漢哲)이 죽기 전 상당히 많은 책을 남겼는데, 장모 남씨는 사위가 학문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그 책을 모두 물려주었다. 이에 이식은 고경(古經)과 백가(百家)의 연구에 열중하였다. “나는 밥 먹을 때에도 글과 함께, 잠 잘 때에도 글과 함께, 앉아서도 글, 길을 걸을 때에도 글이었다. 글이라면 한 시 반 각도 마음에서 떠나본 적이 없었는데, 너희들은 이같이 유유히 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이래서야 어찌 능히 다음날 성취되기를 바라겠느냐.”라며 아들들을 가르쳤다. 이식이 요절한 뒤에는 동생 이우가 조카들을 가르쳤다. 이러한 가르침에 힘입어 이해이황 등 아들들이 학문을 크게 성취하였다.

[묘소]

안동시 도안면 온혜리 선영에 있다.

[상훈과 추모]

1544년(인조 1) 5남 이해(李瀣)의 덕으로 이조 참판 겸 동지의금부사에 추증되었다. 1568년(선조 1)에는 7남 이황의 덕으로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에 가증(加贈)되었다. 청계 서원(淸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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