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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흥타령 농악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2093
한자 天安興打令農樂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놀이/놀이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성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재현 시기/일시 1980년대 - 천안 흥타령 농악, 이돌천의 주도로 정립됨
놀이 장소 천안 흥타령 농악 - 충청남도 천안시
주관 단체 천안시립 흥타령 풍물단 - 충남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용원리 710 천안 예술의 전당 문화 센터 4층 지도보기
성격 민속놀이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예로부터 전승되는 풍물놀이를 판굿 형태로 재구성한 농악.

[개설]

천안 흥타령 농악은 충청남도 천안시 출신의 풍물꾼으로 전국을 떠돌며 많은 활동을 펼친 이돌천(李乭川)[1919~1994]의 주도로 1980년대에 정립되었다. 농악단은 약 30여 명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주요 가락 및 연희 내용은 돌림벅구, 허튼상치기, 오방감기, 당산벌림, 사통백이, 무동놀림, 쌍줄백이, 좌우치기, 가새벌림, 종대옆치기, 쩍찌기굿, 개인놀이, 무동서기, 동니받기, 채상 마당씻기 등이 있다.

[연원]

천안 흥타령 농악은 천안시립 흥타령 농악대 상쇠를 맡았던 이돌천이 주도하여 재구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돌천은 천안시의 토박이로서 12세 때부터 풍물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유달리 신명이 많았던 이돌천은 모를 심다가도 풍물 소리가 들려오면 다 팽개치고 쫓아가서 끼어들기 일쑤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충청남도 예산군의 신례원에 거주하던 나비상[나비상 놀음]의 일인자 박치삼과 김종필에게 꽹과리와 벅구를 사사받았으며, 그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유랑 생활을 하기도 했다. 18세 때 걸립패인 박운선 행중에 들어가서 남은영과 함께 걸립을 다녔고, 남사당 패의 상쇠인 이원보 패(牌)에 가담하기도 했다.

광복 후에는 유랑 집단이 모여서 남사당 패를 조직하였는데, 서울 남사당 김재원, 대전 중앙 농악대 송순갑 등이 함께 행중에 있었다. 서울 남사당의 양도일 등이 예능 보유자로 지정을 받고, 20여 년이 지난 1985년 이돌천이 경기 농악의 예능 보유자로 지정을 받았다.

그러나 이돌천은 고향인 천안시에서 농악대를 구성하는 것이 늘 소원이었다. 그래서 1980년 무렵부터 농악단 결성을 위해 노력하다가 마침내 1987년 천안시립 흥타령 농악대를 구성하였다.

1989년에는 제1회 KBS사장기배 충청남도 농악 경연 대회에 참가하여 최우수상을 수상하였으며, 이후 천안 지역의 학생들에게 농악을 전수하여 전주 대사습놀이 전국 대회 등 많은 대회에서 입상을 하였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천안 흥타령 농악의 편성은 농기 1명, 영기 2명, 상쇠 1명, 부쇠 1명, 징 2명, 북 4명, 장구 4명, 벅구 8명, 무동 8명, 광대 3~5명, 새납 1명 등으로 구성된다.

풍물패의 복색은 다음과 같다. 농기와 영기수를 비롯한 단원들은 머리에 고깔을 쓰고, 등걸 잠방이를 걸치고, 삼색 띠를 어깨에 두른다. 벅구는 나비상을 하고, 무동역의 중새미는 고깔에 가사 장삼을 입고, 여춤애는 치마저고리에 삼색 띠를 두른다. 그리고 광대의 양반은 정자관에 도포를 입고, 머슴은 패랭이와 등걸 잠방이 차림에 괴나리봇짐을 든다. 새납은 두루마기를 입는다.

[놀이 방법]

연희를 시작하기에 앞서 농악대는 상쇠가 이끄는 대로 길군악 칠채가락을 치면서 행진한다. 농기, 영기, 새납, 상쇠, 부쇠, 징, 장구, 북, 벅구, 무동 등의 순으로 행진한다. 놀이마당에 도착하면 농기, 영기, 새납은 앞으로 나오고, 쇠, 징, 장구, 북, 벅구, 무동이 각각 4열 종대를 만들어 인사를 한다.

농악이 시작되면 다음과 같은 순서로 기예(技藝)를 선보인다.

먼저 상쇠의 뒤를 따라 원을 그리며 돌다가 법구가 안으로 들어가 양상을 돌리며 ‘돌림벅구’를 한다.

상쇠가 양상치기로 벅구놀림을 하다가 제자리로 가면, 벅구는 ‘갈지자[之]’로 좌우로 왔다 갔다 하다가 원래의 벅구 위치로 돌아가서 ‘허튼상치기’를 하다가 멍석말이를 한다.

칠채가락을 치면서 상쇠의 뒤를 따라 멍석말이로 ‘오방감기’와 ‘풀기’를 한 후 일채가락으로 넘어간다.

상쇠가 장단을 몰아쳐 ‘찍엄상’을 하면 당산 대형인 ‘ㄷ’자로 만든 다음 ‘당산벌림’을 한다.

당산 대형에서 벅구가 반으로 나뉘어져 ‘ㅁ’자를 만들면 서로 마주하여 교차한 후에 한 줄이 각기 작은 원을 형성하여 ‘사통백이’를 한다.

상쇠가 무동을 인도하여 행진과 ‘무동놀림’을 한다.

상쇠가 무동을 인솔하여 원위치에 데려다 놓은 뒤 벅구가 두 줄을 만들어 상쇠의 장단에 맞춰 교대로 일어섰다 앉았다 하며 바꿈 벅구를 한다. 이를 ‘쌍줄백이’라고 한다.

상쇠의 인솔로 큰 원을 형성한 다음 안으로, 밖으로, 좌로, 우로 세 발씩 옮기는 ‘좌우치기’를 한다.

농악대 전원은 서로 십자를 만들며 돌아가는 ‘가새벌림’을 한다.

상쇠의 인솔로 큰 원을 만들어 돌던 일행은 상쇠가 장단을 몰아치면 전원이 큰 원에서 물러 나와 4열 종대를 형성, 일채가락을 몰아치면서 맺는다. 그리고 이채가락을 치면서 좌, 우로 이동하고 뒤와 앞으로 한 장단에 한 발씩 세 번을 이동한다. 이를 ‘종대옆치기’라고 한다.

삼채가락을 치면서 상쇠의 뒤를 쫓아 큰 원을 만들고, 쩍쩌기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며 연풍대를 만든다. 이를 ‘마당일채 쩍쩌기굿’이라고 한다.

상쇠가 부포를 세웠다가 끊으며 찍엄상을 하면 당산 대형과 같은 ‘ㄷ’자로 대열을 정리하고, 상쇠의 인도로 각각 ‘개인놀이’를 한다.

벅구가 어깨에 무동을 세우는 ‘무동서기’를 하고, ‘동니받기’를 한다.

열두 발 상모가 나와서 마당놀이의 대미를 장식하는데, 이를 ‘채상 마당씻기’라고 한다.

멍석말이를 한 후에 풀고 큰 원을 만든다. 그리고 밖을 향해 서서 인사를 한 뒤 3열 횡대를 만들어 인사하고 퇴장하는 ‘인사굿’을 한다.

[현황]

현재 천안 흥타령 농악천안시립 흥타령 풍물단이 주축이 되어 전승하고 있다. 30여 명의 천안시립 흥타령 풍물단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크고 작은 행사나 지역 축제에 참여하여 농악의 진수를 선보이고 있다. 또한 과거 이돌천에게 기예를 익힌 많은 풍물꾼들은 각 학교 및 일반인을 상대로 풍물 강습회를 개최하는 등 천안 지역 풍물의 전통을 계승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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