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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1049
한자 徐漢章
이칭/별칭 우천(于天)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종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40년연표보기 - 서한장 출생
몰년 시기/일시 1677년연표보기 - 서한장 사망
성격 효자
성별
본관 남양

[정의]

조선 후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남양, 자는 우천(于天)이다. 효자 정려를 세운 서충필(徐忠弼)서충좌(徐忠佐)가 종조할아버지이다. 장령공(掌令公) 서정연(徐挺然)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서한장(徐漢章)[1640~1677]은 천안 원일면[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매당리]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워 겨우 7세 되었을 때 절구시를 지었다. 16세에 아버지가 병들었을 때 온종일 근심으로 울먹였고, 옷을 벗지 않았다. 아버지가 기절하니 왼손 넷째 손가락을 잘라 약에 타서 드렸지만 이미 구원할 수 없었다. 3년 상에 피를 토하듯 슬피 울어서 거의 목숨을 잃을 지경에 이르렀다.

홀어머니를 봉양하면서 오로지 어머니 뜻을 순순히 따랐으며 항상 힘을 다해 친히 음식을 공양하였고 하루도 무리를 지어 구차하게 즐긴 적이 없었다. 매 절기마다 의복을 반드시 어머니에게 올린 뒤에 입었다. 매일 일찍 일어나서 가묘(家廟)에 절하였으며 저녁에도 똑같이 하였다. 출입할 때 아무리 가까운 곳으로 가도 반드시 아뢰었으며 여러 동생과 누이에게도 역시 도리를 다하였다.

어머니가 작은 아들 서한량(徐漢亮)이 가난하므로 약간의 토지를 주려고 생각하였는데 서한장은 더 주기를 청하였다. 어머니가 오히려 “너는 선조를 제사지내고 자녀도 많으니 더 줄 수 없다.”라고 하였다. 서한장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청하여 어머니가 허락하였다.

서한장은 어머니가 병들자 아버지 때처럼 또 오른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주입하고 잘린 손가락을 빻아 약에 타서 올렸다. 상을 당하여 오랫동안 차가운 땅에 있었고 슬픔으로 초췌하여 병이 들어서 탈상한 지 5개월 만인 1677년(숙종 3)에 세상을 떠났다. 18년 뒤인 1695년(숙종 21)에 순무사 송광연(宋光淵)이 장계를 지어 올려 정려를 내렸다.

[상훈과 추모]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매당리 도로변에 종조할아버지의 정문에 합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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