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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1015
한자 白文寶
이칭/별칭 화보(和父),동재(動齋),담암(淡庵),충간(忠簡)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문철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303년연표보기 - 백문보 출생
활동 시기/일시 1320년 - 백문보 문과에 급제
몰년 시기/일시 1374년연표보기 - 백문보 사망
성격 문신|문인
성별
본관 직산(稷山)
대표 관직|경력 정당문학

[정의]

고려 시대 천안 출신의 문신·문인.

[개설]

백문보(白文寶)[1303~1374]는 충숙왕(忠肅王) 때 문과에 급제해 벼슬이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르렀고, 직산군(稷山君)에 봉해졌다.

[가계]

본관은 직산(稷山), 자는 화보(和父), 호는 동재(動齋) 또는 담암(淡庵),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아버지는 승평 부사를 지낸 백견(白堅)이고, 어머니는 영해 박씨(寧海朴氏)이다. 부인은 황서(黃瑞)의 딸 평해 황씨(平海黃氏)이다. 슬하에 백선(白瑄)·백진(白晋)·백수(白需)·백환(白渙)·백항(白恒)의 다섯 아들을 두었다.

[활동 사항]

1320년(충숙왕 7) 과거에 급제해 춘추검열(春秋檢閱)을 거쳐 우상시(右常侍)에 이르렀다. 공민왕(恭愍王) 초에 전리판서(典理判書)로 있으면서 과거에 10과를 둘 것을 주청하였다. 뒤에 밀직제학(密直提學)이 되었고, 1363년(공민왕 12) 청주에 머물러 있던 공민왕곽추(郭樞)에게 홍건적의 난 때 훼손되고 남은 사초(史草)와 실록을 해인사(海印寺)에 옮기도록 명하자, 개경에 있던 백문보김희조(金希祖)와 더불어 난리가 겨우 수습된 마당에 국사(國史)를 옮기면 민심이 동요될 것이라며 곽추를 만류하고 뒤의 명령을 기다리게 하였다.

백문보는 또한 신라 시대의 숭불(崇佛)이 나라에 미친 폐단을 시정할 것을 상소하였고, 공민왕의 환도(還都) 후 환안도감(還安都監)이 설치되어 김경직(金敬直)과 함께 그 일을 주관하게 되자 해인사의 『삼례도(三禮圖)』와 『두우통전(杜佑通典)』을 가져오게 하여 『두우통전』을 본뜨고 박충(朴忠)의 말을 추려서 의제(儀制)를 만들었다.

1373년 우왕(禑王)이 대군이 되자 전녹생(田祿生)·정추(鄭樞)와 함께 사부가 되었고,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르러 직산군(稷山君)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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