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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964
한자 趙仁元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5년 5월 2일연표보기 - 조인원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1일 - 조인원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32년 1월 25일연표보기 - 조인원 사망
출생지 조인원 출생지 - 충남 천원군 동면 용두리 327번지
활동지 천안 아우내 장터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3·1 운동

[정의]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조인원(趙仁元)[1865~1932]은 아우내 장터의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은 2개의 계열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조인원은 동면계에서 주도적인 활동을 한 인물이었다.

조인원유관순과 더불어, 4월 1일 아우내 장터의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 운동을 거사하기로 합의하였다. 아우내 장터는 멀리는 충청북도의 청주·진천, 가까이는 천안군 내 각 면에서 장꾼이 모이는 곳이었다. 천안 길목은 조병호(趙炳鎬), 수신면(修身面) 쪽은 조만형(趙萬衡), 진천 쪽은 박봉래(朴鳳來)에게 연락을 맡기고 밤에는 조인원이 속회장을 맡고, 유중무가 교사직을 맡고 있는 예배당에서 통지를 받고 태극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3월 31일 밤 자정에는 아우내 장터를 중심으로 천안 길목[목천넘어 고개]과 수신면 산마루, 진천 고갯마루에 거사를 알리는 횃불을 놓고 이튿날 아침 아우내 장터에 몰려갔다.

오후 1시경 태극기와 ‘대한 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우고 조인원이 군중 앞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김구응을 비롯한 군중들은 이에 호응하여 소리 높여 만세를 불러 시장 안은 삽시간에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 그 동안 군중에게는 태극기가 나뉘어졌고 군중은 열을 지어 큰 깃발을 선두로 시장을 누비고 다녔다. 이때 헌병들은 총기를 난사하고 총검을 휘둘러 도합 사상자가 수십 명 발생했다. 오후 4시경 약 40명이 주재소에 몰려가 헌병에게 큰소리를 쳤고, 주전자를 집어 던지고, 유치장 벽에 발길질을 하는 등의 적극적인 항의를 하였다. 이러한 군중들은 헌병들의 총부리에 달라붙고 탄약갑을 잡아당기면서 격투를 벌였다. 이때 일제의 무차별적인 발포가 있었고, 이로 인해 김구응 모자 등이 사망하였다. 이날 사망자는 19명, 부상자는 30명 이상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조인원은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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