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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호(趙炳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962
한자 趙炳鎬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3년 3월 23일연표보기 - 조병호(趙炳鎬)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1일 - 조병호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73년 3월 2일연표보기 - 조병호(趙炳鎬)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조병호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조병호 출생지 - 충남 천안군 동면 용두리 327번지
활동지 천안 아우내 장터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3·1 운동

[정의]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조병호(趙炳鎬)[1903~1973]는 1903년 3월 23일 충청남도 천안군 동면 용두리 327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는데, 아우내 장터의 독립 만세 운동은 원래 수신면(修身面)·성남면(城南面) 계열와 동면(東面)조인원(趙仁元)·유관순(柳寬順) 계열, 2개의 계열로 나누어 계획되었다. 조인원조병호의 아버지이다.

[활동 사항]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은 4월 1일 아우내 장날을 이용하여 거사하였다. 3월 31일 밤 자정에 아우내 장터를 중심으로 천안 길목[목천넘어 고개]과 수신면 산마루, 진천 고갯마루에 거사를 알리는 횃불을 놓았다. 이튿날 아침부터 아우내 장터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오후 1시경 조인원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군중 앞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조병호를 비롯한 군중들은 이에 호응하여 소리 높여 만세를 불렀다. 이후 군중들은 나누어준 태극기를 들고 열을 지어 시장을 누비면서 만세를 불렀다. 이때 헌병들이 총기를 난사하고 총검을 휘둘러 사망자 19명, 부상자 30명 이상이 발생했다.

이 날 오후 4시경 약 40명이 주재소에 몰려가 헌병들에게 야단을 치며, 주전자를 집어 던지고, 유치장 벽에 발길질을 하는 등 적극적인 항의를 하였다. 이에 헌병들과 군중들은 격투를 벌이게 되었으며, 일제의 무차별적인 발포가 뒤따라 김구응 모자 등이 사망하였다.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으로 조병호는 구속되어 공주 지방 법원에서 6월 9일에 징역 4년을 받았으나 상소하여 경성 복심 법원에서 6월 30일에 징역 2년 6개월형을 언도받고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9월 11일에 기각되어 2년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1973년 3월 2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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