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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809
한자 李集
이칭/별칭 이원령(李元齡),성로(成老),묵암자(墨巖子),호연(浩然),둔촌(遁村)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조창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314년연표보기 - 이집 출생
활동 시기/일시 1371년 - 이집 판전교시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직하고 여주 천녕현으로 낙향
몰년 시기/일시 1387년연표보기 - 이집 사망
활동 시기/일시 1437년 - 이집 문과 급제
묘소|단소 이집 묘소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243-11
사당|배향지 구암 서원 -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
성격 문신|학자
성별
본관 광주(廣州)
대표 관직 판전교시사

[정의]

고려 후기 천안 군수를 지낸 문신·학자.

[개설]

이집(李集)[1314~1387]은 1347년(충목왕 3) 문과에 급제한 뒤, 정몽주(鄭夢周)·이색(李穡) 등과 교유하였다.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본명은 이원령(李元齡)이고, 자는 성로(成老), 호는 묵암자(墨巖子)·호연(浩然)·둔촌(遁村)이다. 고려수절신(高麗守節臣)의 한 사람이다. 아버지는 이당(李唐)이다.

[활동 사항]

문과에 급제한 뒤 합포 종사(合浦從事)를 지냈다. 1368년(공민왕 17) 신돈(辛旽)의 잘못을 공격하다 미움을 받자 영천(永川)으로 피신하여 최윤도(崔允道)의 집에서 은거하였다. 1371년 신돈이 죽은 뒤 개경으로 돌아와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에 임명되었으나, 바로 사직하고 여주(驪州) 천녕현(川寧縣)으로 낙향해 시(詩)와 학문에 전념하였다.

특히 시에 뛰어났는데, 직설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시풍으로 문명을 떨쳤다. 성격 역시 솔직하고 올곧아 불의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였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 의정부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다.

[학문과 저술]

저서에는 『둔촌 유고(遁村遺稿)』가 있다.

[묘소]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243-11에 위치하고 있다.

[상훈과 추모]

1667년(현종 8) 구암 서원(龜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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