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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유씨 4위 정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741
한자 高興柳氏四位旌閭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매당 3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강경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42년연표보기 - 고흥 유씨 4위 정려 건립
현 소재지 고흥 유씨 4위 정려 -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매당 3리 지도보기
성격 정려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고흥 유씨 종중
관리자 고흥 유씨 종중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매당 3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

[개설]

고흥 유씨 4위 정려(高興 柳氏 四位 旌閭)유청신, 유의신, 유연, 유흥우의 효심과 충심을 기리는 정려이다.

유청신(柳淸臣)은 고흥 사람으로 고려 말 부모를 따라 왜적을 피하여 가던 중 왜적들이 칼로 어머니를 해하려 하자 자신을 대신 죽이라고 하였고, 이에 적이 감동하여 물러갔다고 한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정문을 세우게 하였다.

유의신(柳義臣)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봉장이 되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서 크게 승리하였고, 이후에도 계속 승리를 이끌어 나갔다. 한산도 해전에 참전하여 혼신을 다하여 적을 베고 싸우다 불행히 적의 탄환에 맞아 순절하였다.

유연(柳淵)유의신의 아들로 함께 전투에 참전하였는데 아버지가 왜적의 탄환에 맞아 진중(陣中)에서 전사하자 아버지의 지휘권을 대신하여 적을 물리치고 아버지의 복수를 하였다. 그 뒤 아버지의 시신을 반장(返葬)하여, 3년을 여막을 짓고 시묘를 하였다. 유연은 아버지가 진중에서 왜적의 손에 전사한 것을 한탄하여 죽을 때까지 통곡하였다고 한다. 영조 때에 정문이 내려지고, 이언소(李彦熽)가 시장(諡狀)을 올렸는데 잘 되지 않았다.

유흥우(柳興雨)는 충신 유의신의 손자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어머니가 병환에 눕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넣어 드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병이 나아서 천수를 다했다고 한다. 1742년(영조 18)에 정문이 세워지고, 문간공 이희조(李喜朝)가 문헌을 찬하고, 이언소가 시장을 지었다.

[위치]

고흥 유씨 4위 정려는 천안시 광덕면 매당 3리에 있다. 광덕면사무소에서 신흥교를 건너면 매당리 하금곡 마을이 나오는데, 여기서 중금곡으로 들어가는 마을 입구에 있다.

[형태]

정면과 측면 각 1칸의 팔작지붕의 건물로 4면은 홍살을 시설하였으며 도리식 건물이다. 원형의 초석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으며, 하방 아래는 고맥이 시설을, 창방 위에는 소로를 4개 올렸다.

정려 내부에는 4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효자 고려 선충동덕 좌리익조공신 삼한삼중 대광 도참의 정승 판의부사 고흥부원군 증시 영밀공 유청신 지려 여조 정려(孝子高麗宜忠同德佐理翊祚功臣三韓三重大匡都參議政丞判宜府事高興府院君贈諡英密公柳淸臣之閭麗朝旌閭)

2. 충신 효자 유명 조선국 효충장 적의 협력 선무 원종공신 증통정대부 호조 참의 행어모장군 훈련원첨정 유의신 지려 영종 임술 3월 명정(忠臣孝子有明朝鮮國效忠仗迪毅協力宣武原從功臣贈通政大 戶曹參議行禦侮將軍訓練院僉正柳義臣之閭英宗壬戌三月命旌)

3. 효자 학생 유연 지려 영종 임술 3월 명정(孝子學生柳淵之閭英宗壬戌三月命旌)

4. 효자 수의부위 유흥우 지려 영종 임술 명정 당저 기미 3월 중수(孝子修義副尉柳興雨之閭英宗壬戌命旌當宁己未三月重修)

[현황]

정려는 남향을 바라보며 세워져 있는데 주변에 철책을 설치하였다. 철책 아래로는 벽돌을 쌓아 올렸으나 군데군데 부식의 흔적이 있다. 시멘트로 기단을 조성하여 정려를 세웠다. 또한 충남 역사 문화 연구원에서 주관하는 ‘문화재 상시 관리 활동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최근 정비를 하는 등 보호 관리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매당리고흥 유씨들의 사우(祠宇)와 정려가 잘 관리되고 있으며, 효자와 충신이 많아서 ‘충효산’이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고흥 유씨 4위 정려는 전통 시대부터 현재까지 고흥 유씨들의 활발한 사족 활동을 보여 주며, 그 위상을 대변해 주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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