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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026
한자 先史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선사/선사
집필자 강종원

[정의]

충청남도 천안 지역에서 역사적 사실을 문자로 기록하기 이전의 시대.

[개설]

선사 시대(先史時代)는 문자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기 이전의 시대로 역사 시대라는 용어와 대칭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가 선사 시대에 속하며, 초기 철기 시대는 원사 시대로, 그 이후부터는 역사 시대로 구분된다.

우리나라 선사 시대는 각 시대별로 시기를 세분하고 있는데, 구석기 시대는 전기·중기·후기로, 신석기 시대는 조기·전기·중기·후기로, 청동기 시대는 전기·후기로 구분되고 있다.

천안 지역은 사람들이 거주하기에 적당한 자연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선사 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생활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석기 시대 유적으로는 두정동 유적을 비롯하여 용곡동 유적, 청당동 유적, 신방동 유적 등이 확인되고 있다. 신석기 시대 유적은 봉룡동 유적에서 빗살무늬 토기가 확인된 이후 백석동 유적에서 방형 주거지 1기가 조사되었을 뿐이다.

반면 청동기 시대의 경우에는 대규모의 취락 유적이 다수 확인되고 있다. 특히 천안 지역 청동기 시대 유적은 전기에 해당하는 역삼동 유형(驛三洞類型)의 집 자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후기 단계에 해당하는 송국리 유형(松菊里類型)의 취락도 일부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천안 지역에서는 청동기 시대 전 시기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생활하였음이 확인되었다. 다만 초기 철기 시대 유적은 아직 확인되고 있지 않다.

[유적과 유물]

천안 지역은 한반도의 중서부에 위치하며, 사람들의 거주에 적당한 자연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선사 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생활하였음을 다수의 유적과 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 석기 시대

구석기 시대 유적으로는 두정동 유적을 비롯하여 용곡동 유적, 청당동 유적, 신방동 유적 등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들 유적은 대부분 후기 구석기에 속하지만 두정동 유적의 경우 중기 구석기까지 소급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두정동 유적은 천안 지역에서 조사된 최초의 유적이면서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한다. 유물의 특징을 보면, 암질이 대부분 석영질이며, 격지보다는 조각을 몸체로 활용하였다. 긁개의 날은 세로날이 가로날에 비해 많고, 하나의 몸체에 하나의 긁개날을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밀개는 모두 모서리 부분을 다듬어 날을 만든 특징이 있다.

신석기 시대 유적은 조사된 사례가 적다. 봉룡동 유적에서 빗살무늬 토기가 확인된 이후 백석동 유적에서 방형 주거지 1기가 조사되었다. 유적은 해발 60~100m의 구릉에 위치한다. 집 자리의 평면 형태는 방형이며, 규모는 길이 440㎝, 너비 430㎝, 깊이는 약 20㎝ 정도가 남아 있다. 내부에서는 불탄 자리가 확인되었으며, 빗살무늬 토기 조각과 갈판 등이 확인되었다. 또한 인근 아산 지역에서 풍기동 유적, 성내리 유적, 장재리 유적 등 신석기 시대 중기·후기에 해당하는 유적이 다수 확인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천안 지역에서도 관련 유적이 다수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2. 청동기 시대

천안 지역은 청동기 문화가 전개되면서 유적의 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특히 청동기 시대 전기 유형 가운데 하나인 역삼동 유형의 취락이 다수 조사되었으며, 후기 단계에 해당하는 송국리 유형의 취락도 확인되었다. 따라서 청동기 시대 전 시기에 걸쳐 사람들이 천안 지역에서 생활하였음이 유적과 유물을 통해 확인되었다.

청동기 전기에 해당하는 유적으로는 백석동 유적, 신방동 유적, 불당동 유적, 쌍용동 유적, 두정동 유적, 용곡동 눈돌·두터골 유적, 청당동 유적, 운전리 유적, 용원리 유적, 용정리 유적, 두남리 유적, 봉룡동 유적 등이 있다. 이들 유적은 대부분 집 자리 유적이며, 역삼동 유형에 속하는데, 역삼동·흔암리 유형이라고도 불린다. 집 자리의 형태는 세장방형 또는 장방형이며, 내부 시설로는 불땐 자리, 저장 시설, 기둥 자리 등이 확인된다. 이 유형은 가락동 유형과 함께 청동기 시대 전기를 대표하는 유형이며, 시기는 기원전 13~9세기 정도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백석동 유적의 경우 집 자리 207기가 확인되었는데, 단일 취락 유적으로는 최대 규모에 해당하며, 또한 다양한 기종의 토기류가 출토되어 취락 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불당동 유적에서는 주거지 내부 공간이 크게 거주 공간, 작업 공간, 저장 및 보관 공간 등으로 구분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당시 주거지의 공간 배치와 활용, 주거지별 가족 수와 세대 구성의 형태 등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용곡동 두터골 유적에서는 주거지에서 벼의 규산체가 대량으로 출토되어 청동기 전기에 이들 지역의 벼 재배 양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후기 단계에 속하는 송국리 유형의 취락도 다수 확인되는데 남관리 유적, 석곡리 유적, 대흥리 유적, 업성동 유적, 두정동 유적 등이 있다. 집 자리의 형태는 방형 또는 원형이며, 내부 시설로는 타원형 구덩이, 불 땐 자리, 기둥 자리 등이 확인된다. 연대는 기원전 8~5세기 정도로 추정된다.

이들 유적 가운데 백석동 유적, 신방동 유적, 불당동 유적, 쌍용동 유적, 용정리 유적 등은 전기부터 후기에 이르는 유적들이 확인되었는데, 전 시기에 걸쳐 취락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분 유적으로는 운전리 유적에서 도랑을 두른 돌널무덤[석관묘] 1기가 확인되었는데, 청동기 시대 전기 무덤의 한 형식으로 주목된다. 그리고 고인돌이 병천면 가전리수신면 발산리 등에서 확인되는데, 모두 남방식으로 추정된다.

철기 시대의 유적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두정동 유적에서 이 시기에 해당하는 칼자루 끝 장식이 1점 출토되어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리고 선사 유적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먼저, 구석기 시대 유적에서는 여러 종류의 타제 석기류와 격지 등이 확인되었으며,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는 빗살무늬 토기 조각, 갈판 등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청동기 시대 유적에서는 토기류, 석기류를 비롯해 각종 씨앗이 출토되었다. 토기류로는 공렬문(孔列文), 구순각목(口脣刻目), 단사선(短斜線) 등이 새겨진 민무늬 토기 호와 발, 적색 마연 토기 등이 있으며, 석기류로는 돌도끼, 돌칼, 돌 화살촉, 반월형 돌칼, 갈돌, 그리고 토제 가락바퀴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백석동 유적에서는 쌀, 보리, 조, 밀 등의 곡물과 각종 씨앗 등이 확인되었다.

[의의와 평가]

천안 지역 선사 문화 가운데 구석기와 신석기의 경우 조사된 사례가 많지 않아 그 성격을 분명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반면에 청동기 시대의 유적은 그 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하는데, 전기에서 후기까지 지속된 유적이 다수 확인되고 있다. 백석동 유적의 경우 최대 규모의 단일 취락에 해당하는 유적으로 청동기 시대의 편년과 취락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며, 토기 가마 1기는 청동기 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유일한 사례로 토기 굽기의 연구에 중요하다. 그리고 용곡동 두터골 유적에서 대량으로 출토된 벼의 규산체는 청동기 전기에 이들 지역의 벼 재배 양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천안 지역에서는 청동기 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역삼동 유형에서 후기의 송국리 유형에 이르기까지 전시기에 걸친 유적이 확인되고 있어 전기 취락의 변화상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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