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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촌 이기영의 「고향」을 통해 본 천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019
한자 民村李箕永-故鄕-通-天安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윤성희

[개설]

민촌 이기영의 장편 소설 「고향」이기영의 고향 천안을 배경으로 한 농촌 소설이다. 1930년대 천안의 파노라마식 풍경화를 떠올릴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근대 사회로 발걸음을 옮기던 과정에서 이데올로기적 충돌과 그에 따른 일상성에 대한 비판, 그리고 식민지라는 파행적 상황에서 기형적으로 실현되던 농촌 계몽의 양상 등 일반 민중의 생활에 초점을 맞춰 여러 각도에서 천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민촌은 1920년대 「서화」, 「민촌」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했지만, 1933년 「고향」을 발표함으로 우리 현대 문학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겼다.

[「고향」의 시대적 상황]

1930년대는 일제의 군국주의가 더욱 노골화되는 시기였다. 전향 문제 등으로 인한 카프 구성원들에 대한 검거와, 현실에서 한발 물러선 순수 문학과 본격적 현대 문학의 개화, 그리고 기교와 기법이 발달하면서 소설 속 시간과 공간의 확대가 이루어지면서 결국 도시와 농촌 소설, 역사 소설의 개념이 싹트기 시작했다.

바로 이러한 때 민촌 이기영「고향」이라는 장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특히 고향 천안을 소설 속 무대로 끌어들여 작품 안에 그 이미지를 뚜렷하게 인식시켰으며, 천안의 자연과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문학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1930년대 천안 사회]

「고향」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을 통해 착취, 비착취 계급의 두 부류에 대한 성격 창조와 개연성을 묘사하고 있다. 이 가운데 나타나는 천안 원터 마을의 이미지는 다양한 모습으로 승화되고 있다. 당시 천안의 현실적인 모습들이 소설의 이미지를 통해 잘 그려지면서 등장인물들은 신구 문화에 대한 거부와 수용의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각종 생활용품의 등장에 따른 이해의 정도, 서양 의약의 전래와 수용 자세, 여학생의 등교 모습 등 학문과 신앙의 모습이 작품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무엇보다 농촌 현실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경제생활의 변천과 반상 계급의 잔재와 소멸 등 급변하는 사회 변혁의 모습이 사실적인 묘사로 그려지고 있다.

당시 천안 지역에서는 목천과 광덕의 선비 중에 신문화 거부 세력을 흔히 볼 수 있었고 이들 가운데 일부는 더러는 산속으로 은둔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일부 약삭빠른 이들은 일본인과 접촉, 이(利)를 얻고자 하면서 일본인들의 생활양식을 적극 수용하게 되어 개화 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천안 농촌 사회의 모습]

이기영의 작품 속 천안의 모습 가운데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축은 역시 농촌 사회의 현실이다. 소설은 천안 지역의 어려운 현실 속을 그대로 내보이고 있다. 봄부터 시작하여, 도입부의 작은 소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춘궁’이라는 단어에서부터 빈곤함이 느껴진다. 이 시기는 봄철에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햇곡식은 아직 여물지 않아 농민이 몹시 살기 어려운 시기가 된다. 일명 보릿고개라고 한다.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사람들은 지갱이를 얻어다 먹기도 하지만 부잣집 사람들은 그러한 장면을 보고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대조적인 모습은 ‘있는 자’와 ‘없는 자’를 나타낸다. 여름과 가을에는 각각 두레와 품앗이를 사용하여 수확을 농민들이 일하는 모습과 수확을 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특히 두레는 비단 농사꾼들이 농번기에 협력하기 위하여 모임을 이루어 일하는 모습뿐 아니라, 인동이와 막동이, 백룡 어머니와 쇠득이 모친이 화해하는 장면들을 그려 정겨운 농촌 풍경을 연출한다. 소설은 이렇게 농촌 전반의 모습과 농촌의 사람 사는 모습들, 그리고 관습과 풍습을 아울러 표현한다.

[등장인물을 통한 다양한 천안의 모습]

원터 마을을 중심으로 한 등장인물들의 삶의 행태는 당시 식민 사회의 모습 속에서 함께 이해될 수 있다. 1911년부터 시작한 토지 조사 사업은 1920년까지 완료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토지가 일본인 소유로 돌아가고 대다수 농민들은 소작인으로 전락하여 매우 곤궁한 생활을 하였다. 당시에는 노동력이 있어도 노동할 곳이 없어서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

이때 천안은 직산 일대의 금광으로 특정 부류에 한해 여유로운 행태도 있었지만 원터 지역[원성동, 유량동 지역으로 추정]의 경우 전형적인 소작형의 농촌 지역이었기 때문에 소설 속 풍경은 그대로의 당시 천안 풍경이었다.

특히 소설 속 인물들의 갈등 구조 속에는 반상 계급의 잔재와 소멸이라는 두 축 사이에서 갈등 요소를 그리고 있다. 개화 이후 경술국치 후까지도 반상에 대한 계급 의식 때문에 많은 갈등을 야기한 것이 사실이다. 양반들은 지지 세력이었던 왕조가 무너진 상태에서 다소 지위가 흔들리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경제적 기반을 무기로 지식과 정보를 독점하고 있어 그 세력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또한 상인(常人)들도 시대의 변화에 대처하는 태도가 각인각색이었다. 일부는 나라가 망한 한(恨)보다 양반의 기가 꺾인 것이 더욱 신이 나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일본 사람이 들어오면 무슨 상관인가 그 지긋지긋한 양반제도가 없어졌으니 살 맛 난다.’고 생각하는 부류도 꽤 있었다. 이들 중에는 대 놓고 양반에게 대드는 사람도 있었으며 신교육을 신분 상승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사람도 있었다.

민촌의 작품 속 인물들의 구조를 살펴보면, 일제 강점기란 사실은 혁명 이상의 변혁이었지만 우리 사회는 쉽사리 변하지 않았다. 당시 상민 중 일부 노인 계층은 “인간 사회에 아래 위 층이 있어야 한다. 상놈이 대접받는 시대가 돌아오면 헤아리지 못할 흉측한 일이 생길 것이다.”라고 탄식하였다는 일화도 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신분 제도는 서서히 무너져 갔다. 민촌의 작품 속 민심의 변화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교육을 통해 계급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을 갖고 사회주의 운동가가 된 사람도 생겨나는가 하면, 상례 때 양반과 상민이 서로 연계한다는 뜻에서 조직된 연반계(聯班契)의 출현을 보더라도 사회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겠다. 천안 지역에서 연반계의 출현은 계급 의식이 사라진 마을임을 알리는 표상이었다.

[작품으로서 「고향」과 이기영의 고향으로서 천안]

이기영「고향」은 농촌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천안 지역 사회를 배경으로 근대화 과정의 과도기를 여과 없이 표출하였다. 또한 보수적 집단과 개화적 사고를 지닌 세력 간의 갈등 양상과 계절별로 나타나는 농촌 현황 및 각각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고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근대화 과정 속 천안의 외형적인 변화의 모습뿐만 아니라 풍속이나 관습들도 같이 변해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농촌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을 대치시키면서 그 장단점까지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일제 치하라는 정치적 문제 뿐 아니라 과도기적 상황으로 매우 혼란했던 1930년대의 혼란함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문학도 다양함과 혼란함을 보여 주고 있다. 당시 유행했던 경향 소설의 대표자 이기영은 1930년대 사회를 주목했다. 사회의 모든 문제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립이라 생각하고, 못 가진 자들의 각성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기영의 작품 「고향」을 통해 당시 천안 사회의 모습을 세세하게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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