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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원루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4011
한자 濟源樓記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군서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임명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420년연표보기 - 「제원루기」 저자 서거정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488년연표보기 - 「제원루기」 저자 서거정 사망
배경 지역 제원루 - 충청남도 천안시 직산읍 군서리
성격 기문
작가 서거정

[정의]

서거정이 천안 직산을 지나면서 백제의 첫 도읍지가 직산이라고 한 기록.

[개설]

백제의 시조 온조가 부아악(負兒岳)에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살핀 곳이 직산이라 한 것에 대해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지세가 편협하고 웅장한 기상이 없어 도읍을 세울만한 곳이 못 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를 편찬하면서 여러 자료를 검토해본 결과, 직산이 백제의 첫 도읍지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다. 그 후 이 자료가 다른 책에 인용되면서 직산이 백제의 첫 도읍지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구성]

서거정이 직산을 지나면서 제원루라는 정자에 올라, 시를 짓기 전에 제원루에 대한 연역을 밝히고 그 연역에 대한 감흥으로 시를 짓어 기록하고 있다.

[내용]

『신증동국여지승람』 직산편에서 서거정은 시의 서문에 이러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서거정이 사신으로 영남(嶺南)에 갈 때 직산을 지나게 되었었다. 직산 객관 동북쪽의 한 누각에 올라가 그 누각의 이름을 물었으나 ‘제원’이라고만 할뿐 사람들이 그 뜻을 알지는 못했다. 이에 서거정은, ‘이 고을은 백제의 옛 도읍이니, 이 누각을 ‘제원(濟源)’이라 한 것은 백제의 근원이 여기에서 시작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라고 했다. 백제의 시조 온조는 본래 고구려 동명왕 주몽의 아들로 난을 피하여 남쪽으로 도망했는데 역사서에 ‘온조가 부아악(負兒岳)에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살피다가 하남(河南) 위례성(慰禮城)에 도읍을 했으니, 이곳을 세상에서 직산이라 한다.’ 하였다. 그러나 부아악이란 여기서 2백 리나 떨어진 곳이므로 살 만한 곳이 아니라고 여겼다. 또 하남(河南)의 ‘하(河)’는 어느 물을 말하는 것인가도 궁금했다. 서거정은 여러 번 이 곳을 지난 적이 있으나 지세가 편협하고 웅장한 기상이 없어 도읍을 세울 곳이 못된다고 여겼다.

그러다가 『삼국사절요』를 편찬하면서 여러 가지 책을 상고해 보니 직산이 백제의 첫 도읍이었던 것은 의심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온조왕의 뒤에 직산으로부터 남한산성으로 도읍을 옮겼는데 이는 곧 지금의 광주(廣州)이고, 또 북한산성으로 옮긴 곳은 지금의 한도(漢都)라고 생각했다. 뒤에 금강(錦江)으로 옮긴 곳은 지금의 공주요, 또 사비하(泗沘河)로 옮긴 곳은 지금의 부여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시(詩)를 남겼다.

백제 옛 터에 풀이 절로 우거졌는데

내 여기 오니 감개하여 마음이 상하네.

다섯 용(龍) 천안부(天安府)에서 싸워 끝나고

한 쌍 봉황(鳳凰) 위례성(慰禮城)에서 울었네.

시조(始祖)의 사당이 깊은데 단풍나무 가리웠고

성거산(聖居山)이 옹위했는데 푸른 구름 비꼈어라.

누(樓)에 올라 가을 바람에 나는 생각

어느 곳에서 철적(鐵笛) 소리 들려오는가.

[의의와 평가]

일연이 『삼국유사』에서 백제의 첫 도읍지를 직산이라고 기록한 후에, 서거정이 직산의 제원루에서 제원루에 대한 연혁을 설명하며 직산이 백제의 첫 도읍지라는 것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서거정은 백제의 첫 도읍지가 직산임을 밝히기 위해 「제원루기」를 『동국여지승람』 직산편에 실리게 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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