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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능수버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2267
한자 天安-
이칭/별칭 능소버들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삼룡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동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7년 7월 15일 - 『천안시지』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6년 10월 21일 - 『우리 고장의 민속』에 수록
관련 지명 천안 삼거리 공원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삼룡동 306 지도보기
성격 전설
주요 등장 인물 김갑동|김을동|전라 감사의 아들|이 진사의 딸
모티프 유형 천안 삼거리 능수버들 유래담|기이한 인연을 기념하여 심은 능수버들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삼룡동에 전해 내려오는 천안 삼거리 능수버들 전설.

[개설]

천안 삼거리에서는 서울에서 내려오는 큰 길이 두 길로 나누어진다. 한 길은 병천을 지나 청주·문경새재·대구·동래에 이르는 길이고, 또 하나의 길은 공주를 거쳐 논산·강경·전주·순천에 이르는 길이다. 천안 삼거리는 지금의 국도 1호선21호선이 교차하는 사거리의 바로 위쪽이며, 이곳에 천안 삼거리 표석이 있다. 천안 삼거리는 예전에 길손을 재워 주는 원(院)과 주막이 즐비하고 사방에서 사람이 모여들다 보니 여러 가지 전설이 생겨났는데, 「천안 능수버들」천안 삼거리에 능수버들을 심은 유래를 전하는 전설 가운데 하나이다.

[채록/수집 상황]

「천안 능수버들」은 1987년 천안시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간한 『천안시지』성환 문화원에서 1996년 10월 21일 발간한 『우리 고장의 민속』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조선 전기 경상도 안동 땅에 안동 김씨 형제 일가가 살았다. 형제는 각기 성년을 앞둔 아들을 한 명씩 두고 있었다. 형의 아들은 갑동이고, 동생의 아들은 을동이었다. 장가갈 나이가 되었으나 갑동은 글 읽기만을 좋아하고 혼인에는 관심이 없었다. 반면에 갑동보다 한두 살 아래인 을동에게는 여기저기서 청혼이 들어왔다.

을동의 아버지는 아들의 혼처를 살피다가 천안의 이 진사 딸에게 장가를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과거 보러 떠나는 갑동과 아들 을동을 데리고 올라와 천안 삼거리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뜬 갑동은 을동이 편지 한 장만을 남겨 둔 채 사라진 것을 알았다. 이 진사 딸에게 형인 갑동이 장가를 들라는 것이었다. 을동 자신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떠난다고 하였다.

편지를 본 을동의 아버지는 화가 나서 안동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갑동은 을동의 말대로 자신이 가서 장가를 들기로 하였다. 마침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간다는 전라 감사의 아들을 만난 갑동은 자신의 처지를 말하고 장가드는 데 후행(後行)을 서 달라고 부탁하였다. 전라 감사의 아들은 흔쾌히 갑동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이 진사 집에서 을동인 체하며 혼례를 올린 갑동은 전라 감사의 아들을 인사불성이 되도록 취하게 한 뒤 신방으로 밀어 넣고 주막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눈을 뜬 전라 감사의 아들은 깜짝 놀랐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진사의 딸과는 혼약을 한 사람 따로, 혼례를 치른 사람 따로, 첫날밤을 보낸 사람이 각각 따로였다.

뒤늦게 아들이 뜻밖의 장가를 간 사실을 안 전라 감사는 천생연분이라며 좋아하였고, 오히려 갑동을 자신의 사위로 맞아들였다. 과거를 보러 간 을동은 장원 급제를 하고 시험관이던 어느 대감의 사위가 되었다. 그 뒤 갑동과 전라 감사의 아들도 과거에 급제하여 모두 벼슬길에 올랐다. 기이한 인연이라며 서로 연락을 끊지 않았던 세 사람은 날을 정해 모두 천안 삼거리에서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또 세 사람의 인연을 기념으로 천안 삼거리에 버드나무를 한 그루씩 심기로 뜻을 모았다. 갑동은 경상도로 가는 길에 심었고, 전라 감사의 아들은 전라도로 가는 길목에, 을동은 한양으로 가는 길옆에 버드나무를 심었다. 그 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 천안 삼거리의 상징인 능수버들이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전설은 광범위하게 한 지방의 자연과 문화, 인물 등에 관련되어 있다. 또한 그 지방의 자랑이나 특색으로 내세울 만한 점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전설은 각 지방의 인문적 특색을 지닌 향토 지리지의 성격을 띤다. 또 고을의 내력, 자연 환경의 특색 등에 관해 말하는 만큼 각 지방 사람들의 자존심과 애향심이 엉기게 되고, 나아가 정신적 또는 정서적인 구심점을 이루게 된다. 「천안 능수버들」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는 능수버들이 천안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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