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효자 유언겸을 지켜 준 호랑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2247
한자 孝子兪彦謙-
이칭/별칭 효자 유 정랑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남관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동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91년 1월 9일 - 상명 대학교 구비 문학 연구회에서 유진태에게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6년 10월 5일 - 『구비 문학 대관』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8년 6월 30일 - 『천안의 민담과 설화』에 수록
관련 지명 공사 마을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남관리 지도보기
채록지 풍세면 노인 회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풍서리 지도보기
성격 전설|인물담|효행담
주요 등장 인물 유언겸|호랑이|마을 사람들
모티프 유형 효자의 여막 앞에 솟은 샘|호랑이가 지켜 준 시묘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남관리 공수골에 전해 내려오는 유언겸의 효행담.

[개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남관리 공사 마을[공수골]에는 조선 중종(中宗)[1488~1544] 때의 효자인 유언겸(兪彦謙)[1496~1558]의 정려(旌閭)가 남아 있다. 특히 유언겸의 효행에는 호랑이가 관련이 깊어 정려에도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효자 유언겸을 지켜 준 호랑이」유언겸이 여막에서 3년간 시묘를 하는 동안 그 효성에 감동하여 샘이 솟기도 하고, 호랑이 한 쌍이 나타나 도둑과 돌림병 환자 등이 범접하지 못하게 막아 주기도 하였다는 효행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효자 유언겸을 지켜 준 호랑이」는 상명 대학교 구비 문학 연구회에서 1991년 1월 9일 유진태[73세, 남,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풍서리]에게 채록하여 1996년 천안 문화원에서 발간한 『구비 문학 대관』에 수록하였다. 또한 민병달·이원표 등이 조사하여 1998년 천안 문화원에서 발간한 『천안의 민담과 설화』에도 유사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

남관리 공수골의 효자 유언겸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여막을 짓고 3년간 시묘를 살았다. 여막에서 우물이 멀어 추운 날씨에 고생하며 물을 길어다 생활하던 어느 날, 여막 앞에서 샘물이 솟아 나와 그 뒤로는 시묘가 한결 수월해졌다.

산속의 여막 생활이 적적해질 무렵, 어느 날 저녁 호랑이 한 쌍이 나타나 눈에 불을 켜고 앉아 있었다. 유언겸은 처음에는 두려웠으나 도둑을 막고 돌림병 환자의 접근을 막는 등 자신을 보호하려고 나타난 호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염병을 퍼뜨리는 역귀는 기름 냄새를 맡고 온다는 속설이 있어서 돌림병이 도는 시기에는 제사 음식을 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효성이 지극한 유언겸은 그 때문에 제사를 폐할 수는 없다고 하여 꿋꿋이 제사를 지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항의하였다. 이때 호랑이가 여막 주위를 돌며 포효하자 동네 사람들이 놀라서 모두 물러갔고, 역병을 앓던 환자들도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고을 수령과 관찰사가 나라에 장계를 올려 유언겸의 효성을 알린 덕분에 유언겸은 용담, 인제, 신계, 문화 등 네 고을의 수령을 역임하고, 마침내 형조 정랑 벼슬에 이르렀다. 나라에서는 뒷날 공수골에 효자 정려를 세워 유언겸의 효행을 널리 알렸다.

[모티프 분석]

「효자 유언겸을 지켜 준 호랑이」에서처럼 효자가 여막을 짓고 시묘를 하는데 여막 앞에 샘이 솟아났다는 이야기나 시묘를 하는 동안 호랑이가 보호해 주었다는 이야기는 조선 성종(成宗)[1457~1494] 때 전라북도 고창의 효자 오준(吳浚)[1444~1494]의 「효감천(孝感泉)」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효감천(孝感泉)」에는 효성을 다하기 위하여 애쓰면 하늘도 감동하여 불가능한 일도 가능해진다는 내용이 중심이 되어 효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과 절대성이 강조되어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