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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와 통한 위례성 우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2208
한자 扶餘-通-慰禮城-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운용리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김동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9년 6월 27일 - 상명 대학교 구비 문학 연구회에서 박규진에게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6년 10월 5일 - 『구비 문학 대관』에 수록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03년 2월 25일 - 충남 대학교 백제 문화 연구소에서 한영수, 김학성, 김갑순에게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3년 7월 - 『위례산성』 부록에 수록
관련 지명 위례산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납안리 지도보기
관련 지명 용샘[위례산성우물]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호당리 지도보기
관련 지명 위례성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운용리 지도보기
채록지 기로리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기로리 지도보기
채록지 호당리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호당리 지도보기
성격 전설|지명 유래담|변신담
주요 등장 인물 백제의 왕[의자왕]
모티프 유형 용으로 변신한 백제의 왕|낚시에 걸려 죽은 백제의 왕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에 전해 내려오는 위례산성 용샘에 대한 지명 유래담.

[개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운용리서북구 입장면 호당리 사이에 자리한 위례산(慰禮山) 정상에는 부여 백마강(白馬江) 또는 서해까지 뚫려 있다는 용샘이 있다. 지금은 흙으로 메워져 샘 바닥이 보이는 작은 샘이지만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 신비한 샘이다. 「부여와 통한 위례성 우물」은 백제의 왕이 용으로 변신하여 용샘을 통해 부여와 서해로 왕래하였다는 지명 유래담이자 변신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부여와 통한 위례성 우물」은 상명 대학교 구비 문학 연구회에서 1989년 6월 27일 박규진[45세, 남,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기로리]에게 채록하였다. 1996년 천안 문화원에서 발간한 『구비 문학 대관』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1996년 성환 문화원에서 발간한 『우리 고장의 민속』에도 수록되어 있고, 충남 대학교 백제 문화 연구소에서 2003년 2월 25일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호당리에서 한영수[69세, 남], 김학성[75세, 남], 김갑순[77세, 여]에게 채록하여 2003년 7월 서경 문화사에서 발간한 『위례산성』 부록에 수록하였다.

[내용]

옛날 백제의 한 왕[의자왕이라고도 전함]은 용이 되어 밤에는 위례산의 샘을 통해 위례산성에 와 있다가 낮이면 다시 샘을 통해 부여 백마강에 가서 놀았다. 일설에는 샘이 서해로 통해 백제의 왕이 중국 산둥 성까지 왕래하였다고도 한다. 백제의 왕이 용으로 변신하여 드나드는 샘을 사람들은 용샘이라고 하였다.

백제의 왕에게는 처남이 두 명 있었다. 두 사람이 몰래 살펴보니 백제의 왕이 구렁이가 되어서 밤에는 서해로 나가 헤엄을 치고 낮이면 투구를 쓰고 전쟁을 하는 것이었다. 여동생이 구렁이와 살게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한 처남들은 용샘에 낚싯대를 던져 백제의 왕을 잡아 죽였다.

[모티프 분석]

「부여와 통한 위례성 우물」의 기본 모티프는 용 또는 구렁이로 변신하는 백제의 왕이다. 백제의 왕은 용으로 변신하여 위례성부여 백마강 혹은 서해로 자유롭게 왕래한다. 그러나 변신술을 지닌 백제의 왕도 처남들이 쳐 놓은 낚싯줄에 걸려 죽게 된다. 남다른 능력을 지녔으나 예사 사람과 다름없이 유혹에 넘어가 왜소해진 모습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형태의 전설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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