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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1966
한자 延燔契
이칭/별칭 상여계,위친계,상포계,친목계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성복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부모 혹은 직계 가족의 초상이 났을 때를 대비하여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조직한 계.

[개설]

천안 지역의 연반계는 주로 부모의 장례를 효율적으로 치르려고 결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을에 따라서는 상여계(喪輿契)·위친계(爲親契)·상포계(喪布契)·친목계(親睦契)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연반계는 한 마을 또는 왕래가 빈번한 인접 마을의 구성원들이 계를 만드는데, 대체로 나이가 비슷한 또래 집단이나 부모의 연령대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장남들이 조직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연반계의 임원은 계장·부계장·총무 등이다. 유사시에 연반계에서 맡는 일은 부고 돌리기, 상여 메기, 봉분 조성 등 장례와 관련하여 핵심적인 사항들이다. 이를 위하여 연반계는 조직의 특성상 여느 계보다 엄격한 규칙이 마련되어 있는데, 초상을 당한 계원에게 쌀·술·부의금·상포(喪布) 등을 별도로 지급하기도 한다.

기존의 연반계는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해체되거나 새로운 형태의 위친계가 조직되어 그 위치를 대신하고 있다. 왜냐하면 연반계는 당대에 한정되기 때문에 모든 계원이 상사(喪事)를 마치면 자연스레 해체의 수순을 밟는 까닭이다.

[연반계의 유형]

천안 지역의 연반계는 조직의 범위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마을의 구성원이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계를 조직하여 상사에 대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이가 비슷하거나 친분이 있는 구성원들 15명 내외가 친목을 도모하고 부모의 상사를 위해 계를 조직하는 것이다. 이럴 때의 연반계는 한 마을에서도 여러 개가 조직되는 것이 보통이다.

[차암동 수레터의 연반계]

서북구 차암동 수레터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연반계를 조직하여 유사시에 초상을 치른다. 마을에서 계를 조직한 것은 1945년 광복 직후인데, 호당 1원씩 나누어 내어 기금으로 삼았다. 이후에 마을 내로 분가한 세대나 외지에서 이사를 온 주민은 의무적으로 연반계에 가입하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다. 임원은 계장·부계장·총무가 있었는데, 현재 연반계의 임원제는 폐지되고 통장이 주관한다.

마을에서 상을 당하면 주민 전체가 자발적으로 나서 상가를 돕는다. 이때 주민들은 호당 쌀 한 되와 술 한 되를 상가에 가져다주었다. 이는 사흘간 먹을 밥과 술은 스스로 해결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아무리 형편이 어려운 가정일지라도 장례를 치르는 데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업성동 감나무골 위친계]

서북구 업성동 감나무골에서는 약 1980년대 후반까지 세 개의 위친계가 조직되어 있었다. 삼칠계·사일계·삼일계가 그것이다. 계를 조직할 때는 계원당 쌀 한 말[약 18ℓ]을 나누어 내어 자산으로 삼았다. 계의 임원은 계장·부계장·유사를 두고 운영하였다. 계원에 대한 공식적인 부조는 부모 2인만 한정되었다. 계원이 상을 당하면 나이가 어린 순으로 상여를 매되 전 계원이 사흘간 모든 일을 멈추고 초상집을 도왔다. 계에서 지급하는 부의금은 계원당 술 한 말 또는 쌀 한 말이었다. 감나무골 위친계는 모두 해체되고 현재는 청년회와 향우회에서 장례를 주관하고 있다.

[직산읍 모시리 연반계]

서북구 직산읍 모시리에서는 아랫말과 웃말이 광복 직후에 호당 쌀 넉 되[약 7ℓ]를 나누어 내어 연반계를 조직했다. 부모의 초상에 대비하려는 계이므로 마을 주민 대부분이 가입되어 있었다. 이장이 계장을 겸하여 연반계를 운영하였으며, 계원이 상을 당하면 집집이 쌀 한 되를 나누어 내어 가져다주었고 사흘간 상가를 도왔다. 그러다가 약 1970~1980년 무렵에 연반계는 해체되고 지금은 객지에 나가 있는 젊은이들이 새로운 위친계를 조직하여 장례를 치른다.

[봉황리 봉암 마을 연반계]

동남구 병천면 봉항리 봉암 마을에서는 과거 여섯 개의 연반계가 조직되어 계원이 상을 당하면 부고 돌리기, 상여 메기, 산소일 등을 담당했다. 이 중에서 한 연반계에서 상여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연반계는 초상이 났을 때 쌀 몇 말을 내고 이 상여를 대여하여 장례를 치렀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 젊은이들이 급속히 줄어들고 농촌 공동화 현상이 본격화되면서 이 연반계들은 모두 해체되었다. 그 대신에 기존의 동계를 새롭게 재편한 대동계에서 연반계의 기능을 흡수하여 장례를 치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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