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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1956
한자 -場
이칭/별칭 병천장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지명/시설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성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시장|정기 시장|오일장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병천리에 있는 정기 시장.

[개설]

‘아우내’란 백천천과 광기천이 합수되는 지점에 위치하기 때문에 유래된 명칭이다. 예로부터 사통발달의 길목에 위치한 아우내는 조선 후기 이래 오일장이 개설되어 물류의 집산지 역할을 하였다. 그런가 하면 병천 순대, 아우내 장터 줄다리기, 병천 단오축제로 대표되듯이 천안 지역 민속 문화를 꽃피우는 중요한 토대를 제공하였다. 1919년 3월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병천 사람들이 일제의 압제에 항거하여 태극기를 들고 들불처럼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의 역사적인 무대이기도 하다.

[건립 경위]

아우내장은 풍수지리설의 비보책(裨補策)에 따라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병천의 진산(鎭山)인 작성산의 남쪽에 있는 은석산의 중턱에는 은석사가 있고, 절의 위쪽에는 어사 박문수의 묘가 자리한다. 풍수설에 따르면 박문수의 묘지는 장군 대좌형(將軍大座形)이라고 한다. 이러한 형국에 맞추어 박문수가 문관임에도 불구하고 묘역에는 장엄한 장군석상에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장군 대좌형의 지기를 발휘하게 하려면 주위 환경이 이에 합당해야 훌륭한 묘지가 된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묘역에서 동남방으로 넓게 열려진 분지, 곧 아우내에 군영을 상징하는 비보책으로 향시를 개설했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하는 모습과 성시(盛市)를 이루는 형세, 그리고 장꾼들이 왕래하는 모습을 군졸의 군사 행동에 비견한 것이다.

천안 지역 최초의 읍지인 『목천읍지(木川邑誌)』[1779]와 안정복이 저술한 『대록지(大麓誌)』[1812] 허시(墟市)[향시(鄕市)] 조에는 병천장이 1일과 6일에 개장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19세기 초에 편찬된 『만기요람(滿機要覽)』[1808] 향시 조에는 인근의 직산 덕평장(德坪場)은 기록되어 있으나 병천장은 보이지 않는다.

[변천]

초기의 아우내장은 백천천과 광기천이 합류하기 전 400~500m 지점에 개설되었다고 한다. 현재 행정 구역상 병천 1리에 해당하는 곳으로 이를 ‘구 장터’라고 부른다. 이후 시장이 번창하고 도로가 변화됨에 따라 20세기 초에 북쪽으로 장소를 옮겨 장을 개설하게 되었다. 당시 시장의 남쪽 출입구에는 솟대를 세우고 풍농과 시장의 발전을 기원하였다고 한다.

1950년대까지도 아우내장은 전형적인 향시로서 향토적인 특색을 지닌 채 번창을 거듭하여 왔다. 1960년대 후반에는 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모듬 순대와 순대국밥을 팔던 할머니가 처음으로 청화집이란 간판을 걸었다. 이를 계기로 충남집, 돼지네 등 순대 전문 음식점이 하나둘 생겨나 지금의 순대 거리가 형성되었다.

[구성 및 현황]

아우내장은 크게 장터, 상설 시장, 식당가로 구성된다. 예나 지금이나 1일과 6일마다 장날이 도래하면 천안 지역 각종 토산물과 일용잡화가 아우내장에서 거래된다.

장터 주변에는 아우내장의 명물인 병천 순대와 순대국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이곳에는 청화집 등 30여 개의 업소가 저마다 색다른 조리법을 자랑한다. 본래 병천 순대와 순대국밥은 지난날 아우내장을 보러 구름처럼 몰려들던 장꾼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애환 어린 음식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병천 순대가 별미로 입소문을 타면서 주말이면 이를 맛보기 위해 병천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로 장사진을 친다. 이에 해당 지자체에서는 음식점이 밀집된 곳을 ‘병천 순대 거리’로 지정하고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병천장아우내 단오 축제, 아우내 장터 줄다리기가 전승되는 민속의 터전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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