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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복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1954
한자 儀禮服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규순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통과 의례에 착용한 복식 및 이와 관련한 생활 풍속.

[개설]

사람이 일생동안 거치는 크고 작은 통과 의례는 출산[탄생, 백일, 돌], 혼례, 상례, 제례로 나눌 수 있다. 천안 지역에서 이들 의례에 착용한 복식 및 이와 관련한 생활 풍속을 통과 의례의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정리한다. 대상 시기는 대략 1920년대 이후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의례와 비교해 절차에서 변형된 방식이 나타나고, 각 절차의 의미나 이해에서도 변용된 것이 많다. 천안에서 행해지는 각종 의례복으로는 아기 돌에 입는 돌복, 결혼 시 입는 혼례복, 부모 상례 때 입는 상례복,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 입는 제사복 등이 있다.

[신생아 옷]

기저귀감은 새로 구입하기보다 아이에게 좋다고 하여 시집올 때 함을 지고 온 천을 이용한다. 포대기는 소창으로 만든다. 친정이 부유하면 외할머니가 포대기를 사다주기도 한다.

해산 후 7일째인 첫이레에 아기를 쌌던 것을 벗기고 깃이 없는 배냇저고리를 입히며, 동여맸던 팔 하나를 풀어준다. 14일째인 두이레에 깃이 달린 옷과 두렁이를 입히고 나머지 한 팔을 풀어준다. 21일째인 세이레에 위아래 옷을 갖춰 입힌다.

태어난 아이에게 처음 입히는 옷인 배냇저고리는 일안저고리, 배안저고리라고도 하는데 흰색 소창, 광목, 융(絨) 등으로 만든다. 어머니나 할머니가 출산 이전이나 이후에 만든다. 배냇저고리는 옷깃이 없고, 옷고름 대신 실을 매달아 수명장수를 기원한다. 첫째가 입던 것을 동생들이 대물림을 한다. 그런데 여자가 입던 것을 남동생에게 입히지는 않는다. 첫아들의 배냇저고리는 남을 주거나 버리지 않고 잘 보관했다가 시험을 볼 때나 재판이 있을 때에 가져가면 효과가 있다고 여긴다.

[돌복]

아이에게 색동저고리와 색동두루마기를 입히고, 상모를 달고 수(繡)를 놓은 버선을 신긴다. 남자아이는 여기에 복건[幅巾]을 씌우고, 전복을 입힌 후 홍색 끈목으로 만든 허리띠[紅絲帶]를 두르게 한다. 여자아이는 조바위를 씌운다.

[혼례복]

신랑이 초행길에 오를 때는 성장(盛裝)을 하지 않고 평소 입던 바지저고리와 두루마기를 깨끗하게 빨아 입는다.

혼례식에서 신랑과 신부는 모두 성장을 한다. 신랑은 사모를 쓰고 관대를 띠고, 신부는 원삼을 입고 족두리를 쓴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마을에 혼례복이 마련되어 있어 그것을 빌려 입었다. 그러나 이를 갖추지 못할 경우 신랑은 갓을 쓰고 바지, 저고리에 두루마기를 입었고, 신부는 머리를 올려 쪽을 찌고 연두저고리나 노랑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고 손에 한삼을 걸었다.

1930년대부터는 양복을 입고 서구식 혼례를 치르기 시작하였다. 서구식 혼례복은 신랑은 연미복을 입고 신부는 웨딩드레스를 입어야 했으나, 신랑은 신사복을 입고 신부는 흰색 저고리와 치마에 베일을 쓰는 경우가 더 많았다.

1934년에 충청남도에서는 의례를 간소화하기 위해 의례 규범 자문 위원회를 거쳐 관혼상제에 관한 규범을 정하여 공포했다. 신랑은 혼행 당일 성장으로 조선복을 입을 경우 간이(簡易) 도포나 간이 단령을 입고, 일본 옷[和服]을 입을 경우는 몬쯔끼(紋附)를 입고, 양복을 입을 경우는 모닝코트를 입으라고 하였다. 신부는 당일 성장으로 조선복을 입을 경우 족두리나 화관을 쓰고 남색 치마에 원삼이나 당의(唐衣)를 입고, 일본 옷을 입을 경우 스소모요 몬쯔끼(裾紋樣紋附)를 입고, 양복을 입을 경우 웨딩드레스를 입으라고 하였다. 여기서 간이 도포는 소매를 좁게 한 것이고, 간이 단령은 소매를 좁게 하고 겨드랑이 아래의 무를 없애고 옆을 막은 것이다. 그러나 이 규범의 실제 시행 여부는 알 수 없고, 천안에서 시행되었는지에 관해서도 확인할 수 없다.

혼례 후 신행(新行)때 신부는 빨간 치마에 노랑 저고리를 입고 시집으로 간다. 혼수 옷은 치마와 저고리 등이 흩어지지 않도록 중간을 열십자 모양으로 실로 떠서 장에 넣어 간다.

[상복]

염습을 하기 전까지 상주는 상주임을 표시하기 위해 두루마기 한쪽 팔을 빼서 입는다. 부친상에는 오른쪽 팔을 빼서 입고, 모친상에는 왼쪽 팔을 빼서 입는다.

수의는 시신에 입히는 옷으로, 미리 만들어 두기도 하고 초상이 난 이후 짓기도 한다. 집안 어른이 환갑이 지나면 자손들이 수의를 지어 드리는 경우가 있고, 본인이 직접 장만하기도 한다. 윤색[윤월(閏月)]이 드는 해에 만들면 좋다고 하여 만들어 두기도 한다. 수의는 삼베로 만드는데, 안감을 인조로 하기도 한다. 삼베는 통풍이 잘 되기 때문에 벌레나 균이 생기는 것을 방지한다. 최근에는 질이 좋지 않은 중국산 삼베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이장을 할 때 시신이 잘 썩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수의는 장롱 안에 보관하거나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 방 안에 보관하고, 1년에 한 차례 통풍을 시킨다.

염이 끝나면 상주들은 상복(喪服)을 입는다. 염을 해야 완전히 돌아가신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망인의 아들은 굴건제복을 입는다. 전통적인 상복은 남자는 굴건, 최의(衰衣), 상(裳), 요질, 행전, 죽장이나 오동장, 짚신을 갖추어 성복일부터 졸곡 때까지 입었다. 여자는 수질을 하고[족두리를 쓰는 경우도 있음], 깃광목 저고리와 치마에 대수장군을 입고 삼띠를 매고, 짚신을 신는다. 그런데 형편이 어려운 경우에는 삼베로 거칠게나마 두루마기를 지어 입고, 이마저도 형편이 되지 않으면 상복을 입지 않는다. 혼인을 하지 않은 젊은 사람이 상주가 될 경우에는 건의 윗부분을 막지 않는다. 여자들은 소복(素服)을 입고, 머리에는 삼베 조각을 덮어 쓴다. 성복을 하고 나면 영좌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성복제’라고 한다.

아이가 태어난 후 그 아이의 명(命)이 짧다면 다른 사람에게 명을 파는데, 명을 산 사람을 시영어매나 시영아배[수양부모]라고 부른다. 수양부모와 수양아들로 인연이 맺어지면 아들은 생일이나 인사 때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고, 부모가 사망하면 친부모와 마찬가지로 상복을 입는다.

[제례복]

남자는 흑색 갓이나 유건(儒巾)을 쓰고, 흰색 저고리와 바지에 도포를 입고, 술띠를 매었는데, 갓을 쓰고 저고리와 바지에 두루마기를 입는 경우가 더 많았다. 1940년대에는 양복 위에 두루마기만 입는 경우도 있었다. 여자는 흰색 저고리와 치마를 입었고, 기제사 때는 옥색 옷을 주로 입었다. 간혹 흰색 족두리를 쓰는 경우도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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