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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707
한자 天興寺址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천흥리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박재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921년연표보기 - 천흥사 건립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4년 - 천흥사지 발굴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5년 - 천흥사지 발굴 조사 실시
소재지 천흥사지 - 충청남도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지도보기
성격 절터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절터.

[변천]

천흥사는 921년(고려 태조 4)에 창건된 후 1010년(현종 원년)에 대대적인 불사가 이루어졌으나, 조선 시대에 이르러 폐사되어 지금은 그 절터와 오층 석탑 1기와 당간 지주만 남아 있다.

현재 천흥사지(天興寺址)에는 석재 등 각종 건축물의 부재 이외에 기와 조각, 토기 조각, 자기 조각 등이 수습되고 있다. 이 가운데에는 ‘천흥(天興)’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 것이 발견되고 있어 천흥사 터가 이곳임을 확인해주고 있다.

특히 천흥사에서 사용하던 동종이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동종에는 ‘성거산 천흥사 종명 통화 28년 경술 2월 일(聖居山天興寺 鐘銘 統和二十八年庚戌二月 日)’이라는 명문이 있어, 동종이 제작된 1010년 즉, 고려 현종 대에 이미 천흥사가 건립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천흥사지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연혁은 알 수 없지만 조선 시대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참고할 만한 기록이 보인다.

“고을 동쪽 21리에 있다. 고려 태조가 일찍이 고을 서쪽 수혈원에 거동했다가 동쪽을 바라보니 산 위에 오색구름이 있는지라, 이는 신이 있는 것이라 하여 제사를 지내고 드디어 ‘성거산’이라 일컬었다. 우리 태조세종이 온천에 갈 적에 역시 여기에 제사지냈다.”[『신증동국여지승람』 제16권 직산현 조 산천 조 성거산]

성거산 아래에 있는데 지금은 없어졌고, 당나라 때 세운 구리로 만든 기둥만 남아 있다.”[『신증동국여지승람』 제16권 직산현 조 고적 조 천흥사]

위의 기록을 보면 고려 태조가 ‘성거산’이라 명명하게 된 배경과 천흥사성거산에 위치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천흥사가 고려 태조 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개태사와 창건 배경이 유사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태사는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신검을 쫒아 황산을 넘어 마성에 진을 친 뒤 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하늘의 도움을 받았다 하여 황산을 ‘천호산’으로 개명하고 절을 창건하여 ‘개태사’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천안의 성거산 역시 태조가 직접 산명을 짓고 천흥사를 세웠다고 한다면, 천흥사지를 포함한 천안의 성거산 일대는 고려 태조의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상당히 주요한 요지 역할을 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천흥사는 조선 시대에 폐사된 이후 소유지는 물론 주변 지역이 민가 및 과수원으로 개간되어 현재는 사지의 정확한 크기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다만 현장에 남아 있는 천안 천흥사지 오층 석탑천안 천흥사지 당간 지주의 거리와 위치를 통해 대략적인 절의 크기 및 건물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천안 천흥사지 오층 석탑은 전체적인 양식은 신라의 석탑을 계승하고 세부 양식에서 다양한 변화를 보이는 전형적인 고려 전기의 석탑이라고 볼 수 있다. 석탑에서 북쪽으로 약 300m 가량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민가 대문 앞에 당간 지주가 솟아 있다. 넓은 직사각형의 지대석 위에 꽃 모양의 장식을 새겨 놓았다. 탑과 당간 지주가 300m 이상 떨어져 있다는 것은 천흥사의 규모가 상당히 큰 것이었음을 말해 준다.

[위치]

천흥사지천안시 성거읍 천흥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150m 떨어진 곳에 있다. 성거읍사무소에서 천흥 저수지 쪽으로 약 1㎞ 가다 보면 천흥교가 나오는데 천흥교 및 탑골 주변으로 하여 천흥사지가 위치한다.

[현황]

현재 천안 천흥사지 오층 석탑[보물 354호] 1기와 천안 천흥사지 당간 지주[보물 제99호]가 남아 있고, 이곳에서 발견된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국보 제280호]은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고려 시대 초기 불교 사찰의 모습 및 신라 불교 사찰과의 관계 등을 엿볼 수 있는 유적이다. 동시에 고려 초기 천안 지역의 역사 및 불교문화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