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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630
한자 龍院里百濟遺蹟
이칭/별칭 용원리 유적,용원리 고분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물 산포지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용원리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이창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7년 12월~1998년 9월 - 용원리 백제 유적 발굴 조사 시작/종료
소재지 용원리 백제 유적 - 충청남도 천안시 성남면 용원리 산직 마을 지도보기
성격 유적|유물 산포지
면적 약 72,600㎡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용원리 일대에 있는 백제 시기의 유적.

[개설]

용원리 유적, 용원리 고분군으로도 불리는 용원리 백제 유적(龍院里 百濟 遺蹟)은 공주 대학교 박물관과 서울 대학교 인문학 연구소, 충청 매장 문화재 연구원에 의해 1997년 12월부터 1998년 9월까지 조사되었다. 이 결과 청동기 시대 주거지, 원삼국 시대의 주거지, 수혈 유구, 가마, 굴립주(掘立柱) 건물지, 백제 시기 움무덤[토광묘], 돌덧널무덤[석곽묘], 독무덤[옹관묘],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 등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당시 지방 재지 세력의 존재와 백제의 중앙과 지방의 상호 관계를 고찰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위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용원리 일대에 위치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용원리 유적은 천안 온천 개발 부지에서 조사된 유적으로 조사 면적은 약 7만 2600㎡이다.

공주 대학교 박물관과 서울 대학교 조사 지역[B·C 지구]은 해발 243m의 백운산에서 서쪽으로 길게 흘러내린 구릉 지역으로 남향면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데 반해, 북향면은 경사가 급하면서 좁게 남아 있다. 유적은 80퍼센트 이상이 북향면에 조성되어 있다. 조사 결과 움무덤 137기, 돌덧널무덤 13기, 독무덤 2기, 굴식 돌방무덤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용원리 고분군의 조성 시기는 4세기 중·후반대로 백제가 고대 국가로 성장하던 시기 지방 세력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충청 문화재 연구원 조사 지역[A 지구]은 발굴 조사 대상 지역의 동편 구릉으로 해발 150~210m에 해당하는데 청동기 시대 주거지 5기, 원삼국 시대 주거지 121기, 수혈 유구 2기, 가마 3기, 굴립주 건물지 2기 등이 확인되었다.

[형태]

고분은 분포 범위가 넓고 조밀하게 배치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복된 것이 없고, 매우 규칙적인 형태로 배열되어 있는 특징을 보인다. 움무덤은 대체로 장방형이며, 등고선 방향과 일치하게 조성되어 있다. 규모는 대체로 길이 3m 정도, 너비 1m 내외의 것이 많다. 내부 시설은 목관 움무덤으로 구분되며, 결구 방식은 ‘ㅁ’자, ‘ㅍ’자, ‘ㅂ’자 형태이다. 유물 부장은 정형성이 확인되는데, 움무덤 서쪽에는 바리 모양 토기[발형 토기] 1점과 항아리 1점이 기본적인 세트를 이루며, 동쪽에는 목관 밖에 여타의 토기가 부장된다. 이외 목관 내부에는 피장자의 착장품인 큰 칼이나 장식품이 남아 있다. 착장품을 통해서 확인된 피장자의 머리 방향은 모두 서향이다. 돌덧널무덤은 구덩식 돌덧널무덤[수혈식 석곽묘(竪穴式石槨墓)]으로 무덤구덩이[묘광(墓壙)]의 구축 방식은 움무덤과 동일하다. 1호와 9호 돌덧널무덤에서는 위신재가 출토되어 피장자(被葬者)의 신분을 보여 준다.

청동기 시대 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대부분 세장방형이며, 내부 시설로 주초석(柱礎石)[2호], 숯가마, 벽체 보강 시설 등이 확인된다. 원삼국 시대 주거지는 대부분 해발 150~210m 범위에 분포한다. 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4주식(四柱式), 무주식(無柱式), 철자형(凸字形)으로 구분된다. 내부 시설로는 부뚜막, 숯가마, 기둥자리, 구(溝) 등이 확인된다. 조성 시기는 4세기를 전후한 시점으로 비정된다. 가마는 토기 가마 1기, 숯가마 2기가 확인되었는데, 모두 생토면을 굴착하고 조성한 반지하식이다.

[출토 유물]

움무덤과 돌덧널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은 크게 토기류, 철기류, 식품류로 구분된다. 모든 분묘에 토기는 기본적으로 부장되었는데 바리 모양 토기[발형 토기], 어깨 항아리[유견호(有肩壺)], 입 큰 목 긴 항아리[광구장경호(廣口長頸壺)], 짧은 목 항아리[단경호], 곧은 목 항아리[직구호], 계란 모양 항아리[난형호(卵形壺)] 등 백제 4세기 때 토기의 기종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이외에 위신재인 검은 간 토기[흑색 마연 토기]와 계수호(鶏首壺)가 일부 고분에서 출토되었다. 그러나 백제의 전형적인 토기라고 할 수 있는 세발 토기[삼족 토기], 뚜껑접시[개배] 등 기대류는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철기류는 고리 자루 큰 칼[환두대도]를 비롯하여 쇠칼, 쇠 화살촉, 쇠 창 등의 무기류와 쇠도끼, 쇠 낫, 쇠 끌 등의 농공구류로 구분된다. 이외에 일부 고분에서만 발걸이, 말 꾸미개, 재갈 등의 마구류가 출토되었다. 철기류는 가락바퀴[방추차]와 철저하게 구분되어 매납(埋納)되는 특징을 보인다. 특히 1호와 9호 돌덧널무덤에서는 금동 용봉문(龍鳳文) 고리 자루 큰 칼, 은상감 용봉문 고리 자루 큰 칼, 화살통 장식, 닭머리 모양 주전자[흑유계수호(黑釉鷄首壺)] 등의 위신재가 출토되었다. 한편 장식품류로는 귀걸이, 옥 등이 소량 확인되었다.

[의의와 평가]

백제 초기의 움무덤과 돌덧널무덤, 그리고 주거지가 군집된 대규모의 유적으로, 당시 지방 재지 세력의 존재와 백제의 중앙과 지방의 상호 관계를 고찰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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