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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청년단 광덕면 결사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558
한자 大韓靑年團廣德面決死隊
이칭/별칭 광덕면 의거 결사대,광덕면 반공 의거 결사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성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50년 9월 15일연표보기 - 대한 청년단 광덕면 결사대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53년 7월 27일연표보기 - 대한 청년단 광덕면 결사대 해체
최초 설립지 대한 청년단 광덕면 결사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성격 청년 단체

[정의]

6·25 전쟁 당시 충청남도 천안 지역에 있었던 청년 단체.

[개설]

대한 청년단 광덕면 결사대이승만에 의해 설립된 전국적 우익 청년 단체인 대한청년단 소속의 단체이다. 1950년 9월 15일경 광덕면 결사대를 조직하여 북한 인민군과 광덕면에서 교전하여 전공을 세웠다.

[설립 목적]

전쟁이 개시되면서 파죽지세로 남하한 인민군은 1950년 7월 9일 천안 경찰서 광덕 지서 사무실에 인민군 치안 대분소를 개설하고 우익 인사 체포공작을 하여 광덕면 애국 청년 인사들 50여 명을 광덕 초등학교에 감금 수용하였다. 이처럼 북한군 치안 대원들이 천안 지역 우익 인사들을 집단 학살 시키려 하자 대한 청년단 소속 청년들은 광덕면 지역을 스스로 지키고, 적에게 교란 전술을 펼쳐 우익 인사를 보호하며, 북한군 패잔병들을 검거하는 작전을 전개하기 위하여 대한 청년단 광덕면 결사대를 설립하게 되었다.

[변천]

대한 청년단 광덕면 결사대는 1950년 9월 15일경 설립되었다. 대한 청년단 광덕면 선전부장 이규환의 주도로 부대장 오수돌, 부장 배석조, 조사 담당 양규석으로 구성되고, 결사 대원으로는 최창성, 이종화, 유병훈, 이영재, 전림, 김경제, 서경자 등이었다. 대한 청년단 광덕면 결사대는 6·25 전쟁 중 활약하다가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과 더불어 해체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50년 9월 17일에 광덕면 결사대 제1차 작전은 광덕면 내 일원을 돌아다니며 공포를 쏘아 인민군 치안 대원들에게 공포를 조장하며 사기를 꺾는 것이었다. 이에 성공하여 대원들이 50여 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9월 22일 결사대 본부 사무실을 보산원 초등학교로 정하고 무장 경비를 세웠다. 제2차 작전으로 검거 생포한 인민군 패잔병 50여 명을 보산원 초등학교 교실에 수용시켰다. 압수한 무기와 실탄으로 다시 재무장하고 인민군 복장으로 위장하기도 했다.

9월 25일 유엔군 탱크 부대가 천안 시내를 탈환하였고, 9월 26일에 광덕면 결사대원 35명이 인민군 패잔병 야간 검거 작전을 펼쳤다. 북한 인민군 후속 부대원 250여 명이 무장을 하고 보산원 결사대 본부를 포위하여 교전하였다. 정동영 결사 대원의 총격으로 북한군 수십 명이 사상되었고, 풍세면 유영모 대원이 인민군이 쏜 권총에 맞아 전사했다. 결사대 본부를 지키고 있던 이규환 대장, 장헌태 일행은 인민군들 창검에 찔려 부상당했다.

9월 27일 광덕면 결사대의 사망자는 8명으로 풍서리 유용모, 지장리 이규산, 보산원리 박명옥, 박종구, 김교성, 오복현, 광덕리 이운홍, 성명 미상 육군 중위이며, 부상자는 양규석, 장헌태, 이규환 3명이다. 결사 대원들은 전사한 대원들을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북한 인민군에게 첩보를 제공한 풍세 남관리 거주 인민 치안 대원 유진해와 예심 대장 오세환, 장인 한문성과 가족들 전원을 보산원 공동묘지에서 총살하여 결사 대원들의 원한을 갚아 주었다.

[의의 및 평가]

광덕면 결사대는 국난 위기에 내 고장을 스스로 지키려는 애국충정으로 충절의 고장 천안이란 전통을 계승하였고, 남침한 북한 인민군에게 타격을 가하여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는 데 일조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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