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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철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555
한자 京南鉄道
분야 지리/인문 지리,역사/근현대
유형 지명/도로와 교량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내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준공 시기/일시 1929년연표보기 - 경남 철도 개통
전구간 경남 철도 - 충청남도 천안시~경기도 이천시 장호원
성격 철도

[정의]

일제 강점기에 충청남도 천안에서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까지 연결되었던 철도와 천안에서 장항까지 연결되었던 철도.

[개설]

1929년 일본인 아사노가 양질의 미곡 단지인 장호원과 그 주변 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을 수탈할 목적으로 경남 철도 주식회사(朝鮮京南鐵道株式會社)를 설립하여 천안에서 장항까지, 그리고 천안에서 이천시 장호원읍을 연결하는 사설 철도를 개통하였다.

현재는 사설 철도가 존재하지 않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수많은 사설 철도가 존재했다. 1940년를 기준으로 보면 조선 철도(朝鮮鉄道), 조선 경남 철도(朝鮮京南鉄道), 금강산 전기 철도(金剛山電気鉄道), 신흥 철도(新興鉄道), 조선 평안 철도(朝鮮平安鉄道), 서선 중앙 철도(西鮮中央鉄道), 경춘 철도(京春鉄道), 단풍 철도(端豊鉄道), 조선 석탄 공업 철도(朝鮮石炭工業鉄道), 평북 철도(平北鉄道), 다사도 철도(多獅島鉄道), 북선 척식 철도(北鮮拓殖鉄道), 삼척 철도(三陟鉄道), 부산 임항 철도(釜山臨港鉄道), 남만주 철도(南満州鉄道), 동만주 철도(東満州鉄道) 등의 사설 철도가 운영되었다.

[건립 경위]

한강의 지류인 청미천은 옛날에는 수량이 많고 주위에 비옥한 전답이 넓어서 곡식의 산출이 많았다. 서울 양반들의 경답(京畓)과 왕족들과 각 궁원의 소유지도 많았다. 이렇듯 지주들이 장호원에 모여들어, 매년 받아들이는 도조미(稻租米)를 주로 청미천을 통하여 배편으로 서울로 운송하였다. 뿐만 아니라 장호원에는 부근의 이천, 음성, 충주, 안성, 진천, 여주 등지에서 생산된 추수곡이 수만 석씩 집산되었다.

1904년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이 곡식들은 열차가 가까이 지나가는 평택으로 운송되었다. 장호원에서 평택까지 51㎞[130리]를 우마차를 통해서 운반을 했다. 빠르게 서두르면 새벽에 출발하여 밤늦게 돌아왔다.

당시 장호원 지역에 집산되는 양질의 경기미는 일본에서도 귀하게 여겨졌다. 이를 편리하게 일본으로 운송하기 위하여 일본인 아사노가 경남 철도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철도를 부설하였다. 천안을 기점으로 하여 장호원까지, 또 천안에서 온양, 예산, 홍성, 광천, 보령, 장항까지 통하는 철도를 개통하고 군산항을 정비하여 호남 북부의 물산은 물론 충청남도 북부의 여러 도시를 연계함은 물론, 예산 지방의 내포 평야에서 생산되는 미곡도 일본으로 운송할 수 있도록 하는 식민지 정책 차원의 사업이었다. 철도가 경남 철도로 하여 동쪽으로는 천안을 기점으로 안성, 죽산, 장호원까지 개통된 것은 1929년이었다.

열차는 1일 2회 운행을 하였는데, 5~6량 끝의 1량만이 객차였다. 한낮에는 객차 1량만이 여객을 실어 날랐다. 화물차 한 칸에는 현미 300가마를 실었다. 한창 물량이 많은 가을과 겨울에는 화물칸이 모자라 역전 광장에 곡물이 수천 석씩 쌓여 있는 장관도 보였다. 이렇게 실어가는 쌀은 천안을 거쳐 장항까지 보내졌고, 군산 외항에 대기하던 대형 기선에 작은 배로 옮겨 실어 일본 고베 항구까지 보내졌다.

[변천]

경남 철도는 1944년 장호원 지방을 휩쓸어 버린 대홍수로 많은 부분이 유실된 후 복구되지 못하였다. 그 후 경의선 철도를 복선화하는 공사에 자재로 쓰기 위하여 안성과 장호원 사이는 철거하고, 해방 후에는 천안~안성과 천안~장항으로 통하는 부분만 남아 운행하다가 천안~안성 간의 철도는 철거되고, 현재는 천안~장항을 지나 군산까지 철도가 연결되어 장항선이라는 명칭으로 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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