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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380
한자 貞村里
이칭/별칭 정자말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종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천안군 성거면 정촌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63년 1월 1일 - 천안군 성거면 정촌리에서 천원군 성거면 정촌리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1985년 - 천원군 성거면 정촌리에서 천원군 성거읍 정촌리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1991년 1월 1일 - 천원군 성거읍 정촌리에서 천안군 성거읍 정촌리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1995년 5월 10일 - 천안군 성거읍 정촌리에서 천안시 성거읍 정촌리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2008년 6월 23일 - 천안시 성거읍 정촌리에서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정촌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1.2㎢
가구수 83가구
인구[남,여] 217명[남자 124명, 여자 93명]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성거읍사무소 북서쪽 약 2㎞ 지점에 위치한다. 경부 고속 도로가 중심부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북쪽 인접한 곳에 북 천안 인터체인지가 있다. 동쪽으로 성거산을 마주보고, 한천(漢川)[한내[大川]]이 흐르는데, 일제 강점기 때 사금(沙金)을 채취하던 곳이다. 정자말이라고도 부른다.

[명칭 유래]

조선 시대에 직산현(稷山縣) 이동면(二東面) 정촌리(貞村里, 亭村里) 지역으로 북쪽에 느티나무, 팽나무 정자가 있어서 정촌리 또는 정자말이라고 했다. 1970년대 경부 고속 도로 건설로 없어졌다고 한다. 동구의 산맥이 길어야 하는데 짧아서 마을에 불길한 기운이 있다 하여 소나무, 팽나무, 느티나무를 심고 정자를 만들어 능선을 길게 보이게 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 직산현 이동면 정촌리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을 통폐합 때 정촌리와 성산면의 남산리 일부를 통폐합하여 충청남도 천안군 성거면 정촌리가 되었다. 1963년 1월 1일 천안읍과 환성면이 통합하여 천안시로 승격됨에 따라 천원군 성거면 정촌리가 되었고, 1985년 성거면의 성거읍 승격에 따라 천원군 성거읍 정촌리가 되었다. 1991년 1월 1일 천원군천안군으로 명칭을 변경함에 따라 천안군 성거읍 정촌리가 되었으며, 1995년 5월 10일 천안시와 천안군의 통합에 의하여 천안시 성거읍 정촌리가 되었다. 2008년 6월 23일 행정구를 설치함에 따라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정촌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백두 대간(白頭大幹) 금북 정맥(錦北正脈) 위례산성(慰禮山城)~성거산(聖居山)~만일령~문수봉(文殊峯)[문암산]~영인 지맥 접티[接峙]~문성(文城)~도토성(都土城) 능선의 동쪽에 정촌리가 있다. 동쪽으로 경부 고속 도로한천, 금북 정맥 성거산 능선을 바라보며 완만한 구릉 지대를 형성한다. 한천의 평야 지대는 사금을 많이 채취했던 곳이다.

[현황]

2011년 12월 31일 현재 면적은 1.2㎢이며, 총 83가구에 217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단일 행정리로 되어 있다.

사당골은 사당리라고도 하며, 정자말 옆에 있는 마을이다. 전에 이곳에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고절은 옛날에 절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도 기와 조각이 나온다. 가무갯골은 정자말 위에 있는 골짜기이다.

동쪽으로 성거읍 오색당리·저리, 서쪽으로 직산읍 남산리, 남쪽으로 성거읍 문덕리·송남리, 북쪽으로 성거읍 삼곡리가 있다.

특산물은 성거 거봉 포도와 신고 배이며 논농사도 많이 한다.

경부 고속 도로가 가로지르고 북 천안 인터체인지가 인접해 있어, 교통과 광고 홍보 효과가 좋아 대형 물류 창고와 크고 작은 공장들이 많이 입주하여 공업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코리아나 화장품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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