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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계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346
한자 花溪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동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재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천안군 동면 화계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63년 3월 1일 - 천안군 동면 화계리에서 천원군 동면 화계리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1991년 - 천원군 동면 화계리에서 천안군 동면 화계리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1995년 5월 10일 - 천안군 동면 화계리에서 천안시 동면 화계리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2008년 6월 23일 - 천안시 동면 화계리에서 천안시 동남구 동면 화계리로 개칭
공공 기관 동면사무소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동면 화계리 181-1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2.36㎢
가구수 127가구
인구[남,여] 268명[남자 141명, 여자 127명]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반계리, 화산리, 능암리의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화산리의 ‘화’ 자와 반계리의 ‘계’ 자를 따서 화계리(花溪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 목천군 일원동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화계리를 개설하여 충청남도 천안군 동면에 편입하였다. 1963년 1월 1일 천안읍과 환성면이 병합하여 천안시로 승격됨에 따라 천원군 동면 화계리가 하였다가, 1991년 1월 1일 법률 제4274호로 천원군천안군으로 환원함에 따라 다시 천안군 동면 화계리가 되었다. 1995년 5월 10일 천안시와 천안군이 통합되면서 천안시 동면 화계리가 되었고, 2008년 6월 23일 행정구를 설치함에 따라 천안시 동남구 동면 화계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서북으로는 동성산[297m] 줄기가 맥을 이루며 병천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산자락에서 흘러내리는 소하천은 작은 소류지를 만들고 화계리 중심을 관통하는 소하천인 화계천과 소하천인 부처천이 비옥한 농토를 만든다. 이는 녹동천에 합류했다가 병천천에 합류되고 다시 미호천에 합류한다.

[현황]

동면사무소가 소재한 마을로 동면의 서부에 위치한다. 2011년 12월 현재 면적은 2.36㎢로 총 127가구에 268명(남자 141명, 여자 12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화계 1·2리의 두 개 행정리와 일곱 개 반이 설치되어 있으며, 면사무소가 소재한 동덕 마을과 반계, 감절, 화산 등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반계는 화계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우암 송시열이 반계(磻溪) 이윤(伊尹)의 호를 따서 반계로 하였다 한다. 예전에 능암이라고 불렸던 감절은 같은 이름의 큰 절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0.80㎢의 경지 면적에 벼농사와 과수, 잡곡류를 재배하고 있다.

천안, 병천, 진천을 잇는 국도 21호선이 지나 원활한 교통 여건을 갖고 있다.

동성산 정상에는 농성, 구리성이라고도 불리는 백제 때 쌓은 산성이 있다. 약 500m의 규모로 토석 혼축으로 쌓았는데, 백제의 승석문, 격자문 토기가 발견되었다.

반계 마을 입구에는 목천 16의사 충의비(木川十六義士忠義碑)가 있다. 1778년(영조 4) 이인좌의 난 당시 반란군들이 전국을 장악해 나갈 때 윤이관(尹以寬)을 비롯한 16의사가 궐기하여 목천 고을을 수호하고 사직을 보전케 한 충의를 기리기 위하여 1987년에 당시 천원군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목천 16의사 충의비 건립 위원회에서 이 비를 세우고 매년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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