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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041
한자 敎育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선명

[정의]

고대부터 현대까지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교육.

[근대 이전]

천안 지역에 고려 시대 이전에 존재하였던 교육 기관은 현재 문헌상으로 확인할 수 없다. 천안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교육 기관이 설립되어 학생들을 교육시킨 기록은 조선 시대부터 남아 있다. 조선 시대의 대표적 교육 기관으로는 향교, 서원, 서당이 있다.

성균관의 규모를 모방하여 설치한 향교가 지방 교육의 대표적 역할을 하였다. 1군현 1향교의 원칙에 따라 오늘날 천안 지역에 설립된 대표적 관학 기관인 향교로는 천안 향교[유량동], 직산 향교[직산읍 군서리], 목천 향교[목천읍 교촌리]가 있다.

서원은 조선 시대에 학문 연구와 선현에 대한 제사를 위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천안 지역에 기록으로 남아 있는 서원으로는 도동 서원[병천면 서원말], 양현사[풍세면 삼태리], 육현사[풍세면 풍서리] 등이 있었다.

또 다른 사학 기관인 서당으로는 서원말의 죽림 강사(竹林講舍), 울바위의 검계 서당(儉溪 書堂), 만마루의 만화당(萬花堂), 새터말의 청류 강사(淸流講舍), 매봉 아래의 영회당(英會堂), 한저루의 흥교암(興敎庵), 잣밭의 도정 강사(桃汀講舍), 화산의 사교당(四敎堂), 은석산의 은산 시사(銀山詩社), 흑성산의 승천 시사(昇天詩社)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서당은 나라 안의 영재들이 모여 학문을 연마한 영회당과 전국 선비들이 모여 시문을 경쟁한 승천 시사, 국내 문장 대가들이 모여 시문을 불러 주고받아 큰 획을 그은 서당은 은석 시사였다.

『대한 매일 신문』은 1909년 11월 13일 기사에서 충청남도에 서당이 686개가 존재하고 있고, 천안 지역에 60~70여 개의 서당이 학동을 교육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 보도를 하고 있다. 이로 보아 이 시기까지 서당이 근대 교육 기관과 더불어 중요한 교육 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중 동면 절골의 서당은 1980년대 초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였다.

[근대]

1. 개화기의 천안 교육[1894~1910년]

갑오개혁으로 봉건적 신분 제도가 철폐되고 관리 임용 제도가 개혁되어 교육의 기회 균등이 법적으로 보장되고 광범위한 학교 교육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천안 지역의 근대 학교 설립은 충청남도의 다른 지역보다 빠른 편이었다. 직산 지역의 유지였던 민철훈이 외국의 개화된 신문명을 보고 국력을 기르기 위해 1897년 직산현사립 경위 학교를 개교하였다. 이 학교는 직산 초등학교의 전신으로 충청남도 천안 최초의 근대 학교이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국권 침해가 시작되자 교육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려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천안 지역은 기독교 교회 중심으로 사립 학교 설립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899년에 스웨덴의 선교사가 목천 지역에서 활발한 선교 활동을 하였고 이 무렵 목천 지역에는 보명 학교, 수신 학교, 녹동 학교, 진명 학교, 장명 학교, 병진 학교, 명진 학교 등이 설립되었다. 그중 병진 학교는 홍진 학교가 되었다. 홍진학교는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이 국권 회복을 위해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몇몇 동지와 힘을 합쳐 설립한 학교이다.

1906년 성환에는 흥흠 학교가 설립되었으며, 1907년에는 군수 안기선에 의해 천안 초등학교의 전신인 천안 사립 영진 학교가 설립되었다. 1908년 12월 『황성 신문』에 직산 지역 사립 학교의 야학 개설 인원이 300여 명에 달한다고 보도된 적이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교회를 중심으로 한 학교 외에도 야학이 개설되어 교육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1909년 신명 학교, 1910년 사립 북일 학교가 설립되었는데 3·1 운동 당시 이 학교의 출신 학생들이 만세 운동의 주역으로 활동하였다.

일본인 자녀들을 위해 1909년에 천안 공립 심상 고등 소학교와 성환 공립 심상 고등 소학교가 설립되었다.

2. 대일 항쟁기의 천안 교육[1910~1945년]

일제는 학교 관계법[1906년], 사립 학교령[1908년], 조선 교육령[1911년], 서당 규칙[1918년]을 제정 공포하여 민족의식이 강한 사립 학교와 야학, 서당 등을 탄압하고 민족의식을 말살하려 하였다.

서당 규칙이 공포된 이후에도 서당의 민족 교육은 지속되었다. 국권 피탈 이후 1920년대까지 60~70여 개의 서당이 존재하고 있었다.

1911년 조선 교육령 공포 이후 공립 학교가 많이 설립되었다. 개정된 사립 학교 규정 탓에 더 이상 사립으로 학교가 유지되지 못하고 공립으로 전환된 결과이다.

일제 강점기 천안 지역에 공립 보통학교인 목천 초등학교, 성환 초등학교, 천동 초등학교, 광덕 초등학교, 성남 초등학교, 입장 초등학교, 병천 초등학교 등이 설립되는 등, 면 지역을 중심으로 학교가 급증하여 양적인 면에서 많은 성장을 보였다. 중등학교로는 유일하게 1930년에 천안 농업 고등학교의 전신인 천안 공립 농잠 보습 학교가 개교되었다.

1920년대 천안 지역의 교회에서는 야학 교육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으며, 성환 공립 보통학교, 동면 보통학교, 입장 사립 보통학교, 천북 학당 학술 강습소, 입장 사립 강습소도 허가되었다.

1923년에는 광덕 보통학교가 개교하였고, 입장 사립 강습소는 1925년에 입장 사립학교로 승격되었다. 1925년에는 성남 보통학교가 개교하였고 1926년에는 입장 초등학교의 전신인 입장 사립 보통학교가 설립 인가받았다.

특히 1922년 천안에 처음으로 소설가 이기영이 발기인이 되어 천안읍 교회에서 유치원을 개원했다.

[현대]

광복 이후 교육 정책은 미군정청 산하의 학무국 중심으로 시행되었다. 한국인으로 구성된 ‘조선 교육 심의 위원회’가 발족되면서부터 새로운 교육 제도에 관한 심의를 진행하여 여기에서 결정된 사항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교육법 제정의 기본 골격이 되었다.

학무국에서는 학제를 6-3-3-4의 단선형 학제로 하였고, 5년제 중학교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각각 3년으로 분리시켰으며, 학기도 2학기제로 바꾸었다. 광복 이후 중등 교육에 대한 요구가 급증함에 따라 165개교에서 광복 이후 380개교로 확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부제 수업을 실시하는 등 교육 환경이 열악해졌다. 광복 이후 대학과 전문학교로 이원화되었던 것을 4년제 대학으로 개편했으며, 의과 대학만 6년제로 하였다.

이 시기의 천안에서는 1946년 천안 공립 보통학교천안 제일 국민학교로 개명되었으며, 행정 국민학교 등 많은 초등학교가 개교하였다

중등 교육에 있어서는 1946년 천안 공립 잠업 보습 학교가 6년제 천안 농업 중학교로 출발하였다. 1946년에 천안 농업 중학교의 부설 여자 학급으로 출발한 천안 여자 초급 중학교가 1949년에 개교하면서 천안 지역 여성 중등 교육의 단초가 되었다. 이 시기에 영성 중학교, 병천 중학교, 천안 공업 중학교 등도 개교하였다.

6·25 전쟁으로 인하여 학교 시설이 파괴되고 교육 재정이 빈약한 가운데서도 이 시기 천안 지방에는 많은 간이 학교와 분교장 등이 초등학교로 승격되었으며, 사립 및 여자 중·고등학교가 개교하였다. 1955년에 초등학교 및 중·고등학교 교육 과정이 문교부령으로 공포되면서 교과 중심 교육 과정이 이루어졌는데 이를 제1차 교육 과정이라고 한다.

1960년대에는 의무 교육의 정상적인 추진과 중학 무시험 진학 제도의 실시 등으로 초등학교 수가 급증하였다. 학급 증설에 따른 교실 부족으로 인해 과밀 학생의 수용을 위해 2부제 수업이 불가피하였다. 1963년 천안시로 승격과 함께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4개교, 고등학교 3개교가 개교하였다.

1970년대 도시화 산업화와 함께 천안 지역은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고 학교 또한 크게 증가하였다. 1972년 천안시 교육청에 초등학교 11개교, 중학교 7개교, 천안군 교육청에 초등학교 35개교, 중학교 8개교 등이 개교하였다. 1973년에는 천안시 교육청에 천안군 교육청이 흡수, 통합되었으며, 고등학교 4개교가 개교하였다.

1980년대에는 인구의 증가와 국민 소득 향상, 학부모의 교육열 등 대학 교육의 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천안에는 나사렛 대학교, 상명 대학교, 선문 대학교, 호서 대학교 등 많은 대학이 설립되었다.

천안 지역은 교통, 문화, 유통의 중심지로 충청남도의 중심 도시이며, 중부권 핵심도시이다. 1990년대 천안은 많은 인구의 유입으로 아파트촌의 건설과 더불어 많은 학교가 신설되었다. 학생 수의 증가와 더불어 천안시의 학교 수가 크게 증가[유치원 74개교, 초등학교 44개교, 중학교 17개교]하였다. 반면 농촌 지역은 인구의 격감으로 인해 1991년 덕전 분교, 1992년 장송 분교, 1993년 덕성 분교, 송정 분교, 2000년 천북 분교, 2007년 봉성 분교, 2005년 아우내 중학교가 폐교되었다.

1980년대까지는 천안시 지역의 중심지는 천안 동부였으나 최근 몇 년 사이 서부 지역이 급속도로 확대 발전하면서 학교와 학생들이 서부로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시 지역과 읍면 지역 간의 격차도 크게 나타나고 있다. 도시 지역의 학생 수는 나날이 증가 추세에 있지만 읍면 지역은 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정책적인 차원의 대책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2012년 현재 천안 지역의 교육 기관 현황을 보면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을 포함한 공립 유치원 52개교, 특수 학교 2개교, 초등학교 70개교, 중학교 30개교, 대안학교를 포함한 고등학교 21개교, 대학교 14개교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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