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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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수피아여학교의 본관 건물.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수피아 홀은 1911년 수피아여학교의 본관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공사비는 미국 스턴스(M.L.Sterns)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난 여동생 제니 수피아(Jannie Speer)를 추모하기 위해 기부한 5,000달러로 충당하였다. 1927년 윈스브로우 홀이 건립되면서 특별교실로 사용하다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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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수피아여학교의 본관 건물.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윈스브로우 홀은 1927년 수피아여학교의 본관으로 지은 건물로서 미국 남장로교 소속 선교사인 스와인하트(Martin. Luther Swinehart)[서로득(徐路得)]가 설계하였다. 수피아여학교의 지정학교 설립에 크게 기여한 윈스브로우(Winsborough) 여사를 기념하기 위해 윈스브로우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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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예배당.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커티스 메모리얼 홀은 전라남도 및 광주 지역에서 기독교 선교를 개척한 유진 벨(Eugene Bell)[배유지(裵裕祉)] 선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건축물이다. 2005년 4월 15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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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학교 건물. 광주 서석초등학교 본관·별관·체육관은 일제강점기에 지은 광주서석초등학교의 본관, 별관, 체육관[강당]이다. 광주서석초등학교는 을미개혁의 일환으로 공포된 소학교령에 따라 설립된 광주 지역 최초의 근대식 공립학교이다. 1896년(고종 33) 전라남도 관찰부 공립소학교란 명칭으로 광주향교(光州鄕校) 옆 사마재(司馬齎)에서 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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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북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학교 건물. 광주 수창초등학교 본관은 1931년 광주제2보통학교[지금의 광주수창초등학교] 본관으로 건립된 2층 벽돌조 교사(校舍)로서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2004년 9월 4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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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전남대학교 용봉캠퍼스 안에 있는 학교 건물. 광주 전남대학교 인문대학 1호관은 전남대학교 용봉캠퍼스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서 6.25전쟁 뒤 물자와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건립되었다. 광주 출신 건축가 정옥진(丁玉鎭)이 설계를 하고, 공사에 필요한 벽돌은 자체적으로 벽돌공장을 세워 조달하였다고 한다. 인문대학에서 강의실 등으로 사용하던 건물로서 2004년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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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 조선대학교 내에 있는 학교 건물. 광주 조선대학교 본관은 한국 최초의 민립 대학인 조선대학교의 본관으로 전라남도지사 및 광주시장이 주축이 되어 1947년부터 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진행되었다. 이때 전라남도지사로부터 박철웅이 일본 유학파이자 문교부 관계의 업무를 한 경험을 들어 업무를 전담하게 하였다. 광주 시민과 전라남도 도민의 성원 하에 7만 200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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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에 있는 조선대학교 설립 초창기의 중학교 건물. 광복 후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는 인재 양성을 위한 기관을 세우기 위해 7만 2,000여 명의 회원들이 염원을 모았다. 6.25전쟁 등 어려운 시기가 있었지만 민·관·군이 협력하여 한국 최초의 민립 대학인 조선대학교를 설립하였다. 1946년 7월 조선대학원부속중학원이 설립되었고, 1948년 7월 조선대학교부속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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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 조선대학교 내에 있는 근대 건축물. 광주 조선대학교 의학대학 본관은 1957년에 지어져 대학 건물의 특성과 당시의 기술력을 알 수 있는 건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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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광주교육대학교에 있는 일제강점기 건축물. 광주교육대학교 본관은 1939년 광주사범학교 강의실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벽돌조 2층 건물로서 2021년 기준으로 본관으로 계속 사용하고 있다. 광주교육대학교의 전신은 전라남도 공립사범학교이다. 1923년 3년제로 설립되어 처음에는 옛 광주농업학교 교사(校舍) 등을 빌려 사용하였다. 1938년 교육령 이후 교명을 광주사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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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의 소강당. 1928년 수피아여학교가 지정 학교로 인가받기 위해 지은 체육관이다. 지금은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에서 소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2011년 7월 22일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7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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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에 있는 1957년에 건축된 전남대학교 구 본관 건물. 전남대학교 용봉동 캠퍼스의 본관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1957년 건축되어 현재까지 원형이 잘 유지되어 있다. 학교 캠퍼스의 진입로 정면에 위치하여 상징성이 매우 높은 건물이다. 용봉관은 캠퍼스 형성 초기의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신축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어 근대건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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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전남대학교 학동캠퍼스 내에 있는 건축물.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구 본관은 1951년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본관으로 완공된 붉은 벽돌조 3층 건물이다....
근대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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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방림동에 있는 파평윤씨 사우인 서강사의 강당. 경모재는 광주광역시 남구 방림동에 있는 서강사(瑞岡祠)의 강당(講堂)이다. 서강사는 파평윤씨 문중의 사우로 시조인 윤신달(尹莘達), 후손인 윤관(尹瓘), 윤언이(尹彦頤), 윤위(尹威), 윤돈(尹敦), 윤보(尹珤)의 6명을 모시고 있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파평윤씨 문중에서 광주광역시에 파평윤씨의 사우가 없음을 알고 건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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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강학 공간. 경의재는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으며, 1930년 소해정(蘇海亭)이란 이름으로 소해(蘇海) 노종룡(盧種龍)[1856~1940]이 건립하였다. 노종룡은 최익현(崔益鉉)[1833~1907], 송병선(宋秉璿)[1836~1905] 등으로부터 학문을 배웠고, 구한말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여러 차례 상소를 올리면서 을사오적(乙巳五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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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현대적 건축으로 건립한 전통 활터. 관덕(觀德)이란 '활과 화살을 잡음에 그 견고함을 살핀 뒤에야 적중시켰다 말할 수 있고 이로써 덕행을 볼 수 있다'고 기록한 『예기(禮記)』 제46편 '사의(射義)' 에서 연유한다. 광주 관덕정(光州觀德亭)은 사정(射亭)으로 이전의 역사를 살펴보면 국가 기관으로서 1451년(문종 1)부터 1896년(고종 33)초까지 기록을 통해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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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무등산에 있는 현대 건축물. 1959년 여름 교통부의 관광호텔 건립 계획에 따라 광주시 북구 금곡동 원효사 인근에 지은 산장호텔이다. 공식 명칭은 ‘무등산 산장호텔’이나 광주사람들은 줄여서 ‘무등산장’, ‘산장’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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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장덕동에 있는 근대 건축물. 광주 장덕동 근대 한옥은 1920년대에 건립되었으며,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손자인 율원군(栗元君)의 후손들이 거주한 주택으로 근대기에 지어진 개량 한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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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광산동에 있는 옛 전라남도청의 본관. 광주 전라남도청 구 본관은 1930년에 완공된 건물로서 일제강점기 관공서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설계와 감리는 한국인 김순하(金舜河)가 소속된 전라남도 회계과 영선계에서 담당하였고, 시공은 오쿠라[大倉] 토목주식회사가 맡았으며, 공사비는 3만 3,000원이었다. 2002년 5월 31일 국가등록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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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궁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건립된 학교 건물. 광주중앙초등학교는 1907년 일본인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설립된 광주공립심상고등소학교에서 비롯되었다. 광복 후 광주중앙공립국민학교로 개칭하였으며, 1952년 광주중앙국민학교로, 1996년 광주중앙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건립 시기와 관련하여 광주중앙초등학교 홈페이지에는 1933년 건축하였다고 기록한 반면, 일본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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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풍향동 광주교육대학교 내에 있는 건축물. 1957년 광주교육대학교의 전신인 광주사범대학 본관으로 지은 건축물로 전라남도와 광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김한섭이 설계하였다. 2014년 10월 30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21년 기준으로 광주교육대학교 교육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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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최초의 연립형 관영 아파트. 광주시가 전라남도의 중심지로 자리 잡으면서 인구의 도시 집중 현상이 심화되었다. 이에 따라 전라남도 광주시 서부출장소[지금의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에 도시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라남도 및 광주 지역 최초의 관영(官營) 아파트를 건설하였다. 설계자는 당시 광주시청 영선계에 재직하던 채규당(蔡奎鐺)이다. 광천동 시민아파트는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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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강당. 빙월당은 월봉서원의 강당(講堂)이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이후 월봉서원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 전까지 불리던 이름이다. 월봉서원은 조선시대 대표 성리학자인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을 모셨다. 기대승은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과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4개의 마음[사단(四端), 곧 측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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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에 있는 문화류씨 류절이 강학하였던 장소. 문화류씨(文化柳氏) 일당(逸堂) 류절(柳節)[1517~1580]은 경기도 양주에서 류순장의 아들로 태어나 1542년(중종 37) 삼사에 딸린 정4품의 벼슬인 자의(諮議)에 제수되었다. 그 후 지평(持平)을 거쳐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역임하였으나, 을사사화로 류임 등이 화를 입은 것을 보고 벼슬을 포기하고 양주로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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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정사. 용진정사는 후석(後石) 오준선(吳駿善)[1851~1931]이 193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후학을 가르치며 민족정신을 함양시킨 곳이다. 오준선은 현재의 광산구 도덕동 도림마을에서 오하규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백부 오향규에게 입양되었다. 8세 때부터 이웃에 사는 친척 오태규로부터 사서와 근사록을 배웠고, 18세 때에는 노사 기정진에게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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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강당.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인 이택당은 1927년 탐진최씨가 세운 건물로 무양서원의 강당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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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광산동에 있는 옛 전라남도청의 회의실. 옛 전라남도청에서 평의원 회의실로 사용하기 위해 1932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벽돌조 건물로 모더니즘 양식을 지니고 있다. 설계와 감리는 한국인 김순하(金舜河)[1901~1966]가 소속된 전라남도 회계과 영선계에서 담당하였고, 공사 청부인은 노모토[野本榮太郞], 실내장식은 다카시마야[高島屋]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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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광산동에 있는 근대 건축물. 전남지방경찰청 민원실은 1944년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벽돌 조적조 벽체와 목조 트러스 구조로 설계되었다. 책을 펼쳐서 엎어높은 모양의 박공지붕으로 구성된 절충주의 양식 건물이다....
생가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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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호남의병을 이끌었던 오성술이 살았던 집터. 오성술(吳成述)[1884~1910] 생가 터는 오성술이 활동하던 당시에는 전라남도 나주군 삼가면 죽산리에 속하였으나, 지금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으로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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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호남의병을 이끌었던 이기손이 살았던 집터. 이기손(李起巽)[1877~1937]이 거주하던 때에는 전라남도 나주군 적량면에 속하였으나, 1910년 이후 광주군에 편입되었다. 이후 1935년 광산군 목량면 북산리로 편입되었으며, 현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북산동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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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호남의병을 이끌었던 조경환이 살았던 집터. 조경환(曺京煥)[1876~1909] 생가 터는 조경환이 활동하던 시점에는 전라남도 광주군 서방면 신안리였지만, 현재는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에 속한다....
종교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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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광주북동천주교회 본당. 광주북동천주교회의 전교는 1929년 박재수 신부가 현재 광주북동천주교회가 자리한 1,000평[3,306㎡]의 부지를 매입하고 작은 강당과 공소를 건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광주공소는 1933년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이듬해 매(梅) 제라드(Gerard Marinan) 신부가 보좌 신부로 부임하면서 1,300평[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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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북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천주교회 사제관 광주 지역 최초의 천주교회인 광주북동천주교회의 사제관으로 1935년[혹은 1937년 이라고도 함] 건립되었다. 2층 규모의 서양식 벽돌조 건축물로서 안정적인 외관을 지니고 있으며, 성당과 함께 근대기 종교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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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호남신학대학교 내에 있는 일제강점기 건축물. 선교사 사택[1920년대]은 1920년대에 붉은 벽돌과 슬라브로 건축한 선교사택이다. 1980년대 미국남장로 선교부가 철수하면서 대한예수교 장로회 노회에 매각되어 호남신학대학생 기숙사로 사용되었다. 땅콩의 형태로 되어 땅콩집이라 불리는 듀플렉스 주택으로 정면 입구에 좌우로 나란히 주출입 현관문이 있는 2층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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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호남신학대학교 내에 있는 현대 건축물. 장로회 호남신학교 기숙사는 1950년대 후반에 지어진 한국식과 서양식 건축 요소가 복합적으로 배합된 건물로 지하실을 포함한 2층으로 구성되었다. 동향이고, 붉은 벽돌로 건축되었으며, 건물 측면인 부엌 쪽에 출입문이 있다. 벽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두 가구로 배치된 구조로 1층에는 앞뒤로 거실이 있는데, 부엌 쪽 거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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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호남신학대학교 안에 있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묘역.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지역에서 1909년부터 1967년까지 활동하다 사망한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와 가족 22명이 묻혀 있는 집단 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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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건축물. 오웬기념각은 광주 지역 최초의 기독교 선교사인 오웬(Clement C. Owen)[1867~1909]과 오웬의 할아버지 윌리엄(William L. Owen)을 기리기 위하여 1914년에 지은 건물이다. 오웬 선교사는 1904년 12월 유진 벨(Eugene Bell)[1868~1925] 목사와 함께 전라도 목포에서 전라도 광주로 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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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양림동에 있는 1910년대 우일선이 지은 선교사 사택. 광주광역시 우일선선교사사택은 우일선(Wilson, Robert M.)이 1909년에 진료가 중단된 야소교병원[재중병원, 현 광주기독교병원]을 재개원하고 2대 병원장으로 취임하면서 1910년경 건축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중국인 기술자들이 회색 벽돌을 구워 네덜란드식으로 쌓아 건축하였다. 미국남장로교 호남본부이면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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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 부지 내에 있는 근대 건축물. 천주교 광주대교구청 본관은 근대 석조 건축물로서 본래 가톨릭 사제 양성을 위한 신학교 본관으로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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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 천주교 광주대교구 부지 내에 있는 근대 건축물. 천주교 광주대교구청 브레디관은 건물 건축을 위해 기부금을 모금한 미국의 브레디(Brady) 주교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고자 브레디의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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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 천주교 광주대교구 부지 내에 있는 근대 건축물. 천주교 광주대교구청 식당동은 건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식당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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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 천주교 광주대교구 부지 내에 있는 근대 건축물. 천주교 광주대교구청 헨리관은 광주가톨릭대학교의 전신인 대건신학교 설립에 힘쓴 천주교 광주대교구 제5대 교구장 헨리(Henry W. Harold) 주교의 이름을 붙여 명명하였다. 2018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독립운동 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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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양방죽으로 흘러들어가는 작은 물줄기를 건너기 위해 만든 흙으로 쌓은 다리가 있던 옛터. 광주 토교(土橋)는 무등산에서 발원하여 경양방죽(景陽防―)과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던 동계천(東溪川)의 물줄기를 가로지르기 위해 설치한 교량이었다. 토교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흙을 쌓아 만든 교량 시설로 물줄기는 관로를 통해 흘렀던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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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내를 통과하여 흐르는 국가 하천인 광주천 천변에 형성된 모래톱에서 열리던 장시. 광주작은장은 음력 2일과 7일에 열리는 큰장에 대비되어 음력 4일과 9일의 작은 장날에 열리는 장이라는 의미에서 불려진 것이다. 광주작은장은 지금의 서석교와 광주교 사이 광주천에 형성된 큰 모래톱에서 열렸다. 모래톱의 모습은 1917년에 제작된 「광주군 지형도」를 보면 규모와 형태를 잘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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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구동에 있는 조선시대 교육기관. 향교(鄕校)는 조선 전기 지역 교육의 강화와 성리학적 질서의 보급을 위해 설치한 관학 기구이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각 도의 안찰사(按察使) 들에게 향교의 흥폐를 통해 지방관의 고과를 삼을 것이며, 교학(敎學) 의 쇄신을 주문하였다. 이에 따라 부, 목, 군, 현의 각 고을에 하나씩의 향교를 세웠고, 그에 따라 광주에도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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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김기권이 운영하던 문방구점이 있던 옛터. 김기권(金基權)은 1926년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항일 학생운동 조직인 성진회(醒進會)를 조직하여 활동하던 인물로 1928년 광주고등보통학교에서 동맹휴학을 주도하다 퇴학당했다. 김기권은 성진회가 해산된 이후 전라남도 광주 지역 내에 독립운동의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1929년 학생소비조합 형태의 문방구점을 지금의 금남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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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서봉동에 있는 어등산을 중심으로 한 대한제국기 호남의병 활동의 중심지. 어등산은 평야가 펼쳐진 전라남도 서부 지역에서 높은 곳이어서 주변 지역의 관측이 용이하고, 일본 군경의 추적을 파악하고 조치하는 데 좋은 장소였다. 또한 광주, 나주, 함평, 장성, 영광 등으로 다른 곳으로 쉽게 이동이 가능한 곳이다. 그래서 한말 호남의병과 일본 군경 간의 크고 작은 전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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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건립되어 운영되었던 기차역의 옛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최초의 철도가 놓인 것은 1913년 10월 1일 목포~대전 간 호남선 철도 송정리역이 영업을 개시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송정리역과 당시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까지의 거리는 대략 30리[약 12㎞]였으며, 그 때문에 철도 연결에 대한 주민들의 열망이 높았다. 그리하여 송정리역과 광주를 잇는 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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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설치된 지방법원이 있던 자리. 대한제국은 1907년 통감부(統監府)의 강요에 의해 근대적 재판제도의 운영을 위한 재판소 설치와 관련된 법률을 개정하였다. 이에 따라 1907년 12월 23일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를 관할하는 광주지방재판소가 설치되었으며, 1908년부터 운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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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각종 범죄자들을 수감하던 광주형무소가 있던 자리. 광주형무소(光州刑務所)는 1907년 일제의 통감부(統監府)가 대한제국의 사법제도를 개편하면서 설치한 범죄자 수감시설인 광주감옥을 전신으로 한다. 1908년 7월 운영을 시작한 광주감옥은 본래 대한제국의 광주감옥을 인계하여 광주읍성 내의 충장로 일대에 있었으나, 1908년 대대적인 신축공사를 벌여 수인(囚人) 공장 등 목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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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시기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유진 벨이 주도하여 설립된 숭일학교가 있던 자리. 숭일학교는 1907년 3월 5일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인 유진 벨(Eugene Bell)[배유지(裵裕祉)]이 주도하여 설립된 근대적 교육기관이다. 설립 초기에는 비인가 학교였으나, 1908년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4년제 소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았고, 초대 교장으로 프레스턴(John F. Pre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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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원 양성을 위해 1923년 전라남도가 설립한 공립사범학교가 있던 옛터. 전라남도공립사범학교[전남사범학교]가 폐지된 1929년은 광주학생운동[광주학생독립운동]이 발발한 해이기도 하다. 전라남도공립사범학교 재학생들도 광주고등보통학교 및 광주공립농업학교 학생들과 함께 당시 항일 학생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한 바 있었다....
기타 근대 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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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파견된 일본군 헌병대가 주둔하였던 병영 옛터. 1910년 조선총독부의 헌병 경찰(憲兵警察)을 주축으로 한 무단통치에 의해 일본군 헌병대가 전라남도 경무부와 함께 전라남도 광주군 성내면 남내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1가 일대]의 옛 전라남도 관찰부(觀察府) 광주 관아(官衙) 안에 광주헌병대본부를 설치하였다. 총부지 847평[약 2800㎡], 건평 218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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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 지역 경찰행정 사무를 담당하던 광주경찰서가 있던 자리. 광주경찰서(光州警察署)는 1896년(고종 33) 5월 광주읍성 내 훈련청(訓練廳) 자리에 세운 전라남도경무서(全羅南道警務署)에서 출발하였다. 1905년에는 일본인 경무고문(警務顧問)이 배치되고, 통감부(統監府)가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1907년에는 관련 법규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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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파견된 일본군이 1907년부터 1923년까지 주둔하였던 병영 옛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근대적인 병영이 처음 들어선 것은 1897년(고종 34) 6월이다. 대한제국 전주진위대(全州鎭衛隊) 휘하의 광주지방대(光州地方隊)가 편성되어 참령(參領) 우기정(禹冀鼎) 이 지휘하는 1개 중대 규모의 군대가 광주에 주둔하였다. 당시 이들이 주둔했던 곳은 옛 전남도청 맞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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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 청년 문화의 산실이었던 흥학관이 있었던 자리. 흥학관(興學館)은 1921년 광주의 부호 최명구(崔命龜)가 희사한 돈으로 최명구의 동생인 최종윤이 지역 청년들의 문화, 체육 활동 진흥을 위해 세운 건물이다. 흥학관 설립을 맡은 최종윤은 1920년 광주청년회 설립을 주도하였고, 1921년부터는 『동아일보』 광주지국의 총무와 기자로 활동한 인물이었다....
방공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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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에 있는 사월산 주변에 일제가 폭탄을 저장하기 위해 건설한 3개의 콘크리트 동굴.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가 상무지구에 광주비행장을 건설하고, 폭탄 저장 탄약고 용도로 사월산 주변에 3개의 동굴을 건설하였다. 동굴 건설 시기는 1940년대 초반에서 1945년 8월 이전으로 추정된다. 사월산 지역에 오래 거주한 최규대[2019년 기준 91세]의 증언에 따르면, 부산에서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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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사동과 양림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4곳의 방공호 지하 시설. 일제는 방공호를 파면서 원래 가운데 광장을 만들어 네 곳에 입구를 둘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반이 단단한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어 공사의 속도가 느리게 진행되어 완공하지 못한 채 전쟁이 종료되었다. 광장은 건설되지 못했지만 네 개의 입구는 각각 동굴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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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군사시설. 2014년 일본군 위안부를 기리는 '빛고을 평화의 소녀상' 건립 터를 물색하던 중 광주광역시 서구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뒤편 중앙공원 산책로에서 발견되었다....
5.18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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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고등학교 인근에서 계엄군이 모는 장갑차와 시민들이 충돌하자 계엄군이 최초로 발포한 장소. 1980년 5월 19일 사직공원 부근에 공수부대원의 시체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조선대학교에 주둔하던 계엄군의 일부가 출동하였다. 계엄군은 장갑차를 몰고 동구 계림동 일대를 돌면서 위협 시위를 벌였다. 시민들은 광주고등학교와 계림파출소 사이의 도로에서 장갑차에 돌을 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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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진압에 희생된 이들을 안장하였던 곳.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전라남도청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시민 희생자가 나타났으며, 상무관에 안치된 희생자 129구의 시신은 5월 29일 청소차에 실려 북구 망월동 광주시립공원묘지 제3묘역[망월동 묘지]에 안장되었다. 광주시립공원묘지 제3묘역이 바로 5.18구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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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시민과 학생들의 시위와 집회가 열리고, 이후 민주수호 범시민궐기대회가 개최되었던 곳. 1980년 5월 14일부터 전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 학생들이 첫 가두 진출을 하였다. 오후 2시 50분 전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 등 대학생들과 몇몇 고등학교 학생들 및 시민 1만여 명이 전라남도청 앞 광장[지금의 5.18민주광장]에서 '민족민주화 성회'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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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진압 작전을 편 계엄군의 실질적인 지휘본부 역할을 했던 곳이자 시민군·민주 인사· 학생 지도부가 고문당했던 부대. 1977년 10월 육군 보안사령부, 해군 보안부대, 공군 보안부대가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로 통합· 창설되었다. 국군보안사령부 예하 부대로 전라남도 광주시에 505보안부대가 창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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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민주 인사들이 모여 수습대책회의 등을 했던 홍남순 변호사의 집. 홍남순은 1960년대부터 사회·민주운동을 펼쳤던 인권운동가였다. 홍남순은 인권운동의 대부이자 유신시대 긴급조치로 끌려간 이들을 앞장서서 변호하였다. 홍남순의 집은 동구 궁동에 있었는데, 민주 인사들의 아지트이자 항상 양심수의 가족들로 붐볐다. 당시 경찰과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1980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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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24일 계엄군이 오인 사격하면서 계엄군 간에 전투가 벌어졌으며, 계엄군이 민간 주민에게 무차별적 보복을 해 무고한 시민들이 다수 희생된 곳. 1980년 5월 24일 새벽 1시 30분 주남마을에 주둔해 있던 제7공수여단과 제11공수여단은 주둔지를 제20사단 61연대에 인계하고 광주비행장으로 이동하여 기동타격대 임무를 수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제20사단 61연대는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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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궁동에 있었던 광주문화방송 사옥. 1980년 5월 20일 「계엄일지」에는 금남로에 시민 7만여 명이 모였다고 기록될 만큼 많은 시민들이 모여 계엄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5월 18일 무자비한 계엄군의 시위대 진압은 5월 20일까지 계속되었고, 성난 광주 시민들도 이에 적극적으로 항의하였다. 시민들은 "광주에서 물러가라"고 외쳤고, 손에 각자 삽· 낫· 곡괭이· 각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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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 이후 무장한 시민들의 집합소 및 훈련소.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집단 발포 이후 광주 시민들은 무장을 시작하였다. 1980년 5월 21일 오후 3시 30분 경 나주군과 담양군에서 유입된 무기는 시위대가 유동삼거리, 충금지하상가, 한일은행, 광주공원 부근에서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이후 시위대의 무기 지급은 광주공원에서 주로 이루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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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20일 밤 시위대와 계엄군과의 치열한 공방전으로 집단 발포가 있었던 곳.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고속도로가 마비되자 광주역은 서울로부터의 병력과 보급품 수송을 위한 철도 운송의 요충지로 기능하였다. 1980년 5월 20일 밤 벌어진 시위는 전라남도청과 광주역 두 군데로 집중되었다. 계엄군이 두 곳만 집중 방어하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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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부상당한 광주 시민과 시민군을 치료하고 돌본 곳으로, 피가 부족하자 광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헌혈을 하였던 병원. 5.18민주화운동 당시 부상당한 시민과 시민군을 헌신적으로 돌본 곳이다.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발포 이후에는 광주적십자병원의 헌혈차가 시내를 돌며 헌혈을 호소하였고, 시민들은 이 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헌혈을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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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기간 연행되어 고문을 당한 시민과 학생들을 치료하고 조사하였던 곳. 1980년 5.18민주화운동 기간 중 부상당한 시민들 일부가 국군광주병원에 옮겨져 수술을 받은 후 치료를 받기도 하였다. 5월 18일 계엄군에게 맞고 부상당한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민오의 수술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또한, 5.18민주화운동 최초의 사망자 김경철이 사망 판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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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주인사와 청년·학생들이 모여 격문과 현수막을 제작하고 시민 궐기대회를 준비하였던 장소. 녹두서점은 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징역 12년을 선고 받았던 전남대학교 학생 김상윤이 만든 서점이다. 서점 이름은 시인 문병란이 지었다. 김상윤은 1975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된 이후 대학생들의 의식화 작업을 하였다. 유신 통치 아래에서 사회적 모순을 인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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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시내로 재진입하려 하자 광주 시민과 수습대책위원들이 '죽음의 행진'을 시작한 장소. 1980년 5월 21일 저녁 전라남도 광주 지역 도심에서 철수한 계엄군은 농성광장에 통제선을 설치하였다. 농성광장을 중심에 두고 도심 쪽은 시민군 방어선이, 광주·전라남도 지역의 향토 사단인 제31사단 쪽은 계엄군이 있었다. 시민군과 대치하던 계엄군은 인근 주택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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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7월부터 노동자들에게 야학을 하였던 터이자,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에게 광주의 상황을 알리고 시민들의 분노와 투쟁을 담을 수 있는 소식지 『투사회보』가 제작되었던 장소. 1970년대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 광천동은 공장지대였고, 그 공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살던 곳이었다. 광천동의 노동자들에게 배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대학생들이 만든 들불야학은 천주교 광주대교구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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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의 잔혹한 시위 진압에 분노한 운전기사들이 대규모 차량 시위를 시작한 출발지. 1980년 5월 18일부터 자행된 공수부대의 폭력 진압은 5월 20일까지 계속되었다. 5월 20일 오후 2시 경, 광주역 부근에 10여 대의 택시가 모여들었다. 이들은 "손님을 실어주었을 뿐인데, 공수부대원들이 운전기사들을 때려 패고 죽이는 상황"에 몹시 흥분하였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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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의 주검을 임시 안치하였던 장소. 1980년 5월 22일 오후 5.18민주화운동 기간 동안 계엄군에게 맞아 죽었거나, 집단 발포로 사망한 시신을 상무관에 임시 안치하였다. 관 사이로 피묻은 시신들의 모습은 처참하였다. 얼굴이 깨져 완전히 뭉개진 시신, 내장이 터져 나온 시신, 손과 발이 잘리어진 시신 등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도 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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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사령부 전남북 계엄분소가 설치되었던 곳이자, 광주 시민이 붙잡혀와 무자비한 고문과 구타를 당한 곳.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에 의해 전라남도청 진압 작전이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체포된 광주 시민들은 극심한 고통을 받았다. 계엄군들은 연행자들을 군홧발로 짓이기며 걸어다녔고, 계단을 포복으로 기어내려가게 하였다. 이렇게 끌려간 곳이 상무대 영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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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9일 5.18민주화운동 중 계엄군의 과잉 진압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나온 곳. 1980년 5월 19일 제11공수여단 62대대는 시외버스공영터미널과 가까운 소방서 부근에 장갑차를 몰고 출현하였다. 1000여 명의 군중이 집결하자 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자기 친구가 공수부대원에 맞아 죽었다면서 원수를 갚아야 한다고 외쳤다. 청년이 직접 공중전화 박스와 가드레일을 부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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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전남도청 바로 앞에 있는 건물로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기총소사 흔적이 발견된 곳. 1980년 5월 21일 집단 발포 전에는 계엄군의 저지선이 전일빌딩과 건너편 광주관광호텔을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5월 21일 집단 발포 당시에는 전일빌딩 옥상에 배치된 계엄군의 조준 사격이 있었다. 5.18민주화운동 마지막 날인 5월 27일 새벽에 시민군은 옛 전남도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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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이 주남마을에 주둔하며 화순행 버스에 발포하여 시민을 살해하였던 곳.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은 퇴각 명령을 받고 주남마을에 재집결하였다. 조선대학교 뒷산을 넘은 제11공수여단 61대대와 63대대는 5월 22일 새벽 2시 40분경 무등산 산등성이에서 머무르다 아침 8시 30분경 주남마을에 들어섰다. 그러나 제11공수여단 62대대는 증심사계곡에 갇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