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148 |
---|---|
한자 | 周南-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광주광역시 동구 주남길 10[월남동 185]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선화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8년 1월 12일 - 주남마을 인근 양민 학살지 5.18 사적지 제14호 지정 |
---|---|
소재지 | 주남마을 - 광주광역시 동구 주남길 10[월남동 185] |
성격 | 주둔지 |
문화재 지정 번호 | 5.18 사적지 제14호 |
[정의]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이 주남마을에 주둔하며 화순행 버스에 발포하여 시민을 살해하였던 곳.
[개설]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은 퇴각 명령을 받고 주남마을에 재집결하였다. 조선대학교 뒷산을 넘은 제11공수여단 61대대와 63대대는 5월 22일 새벽 2시 40분경 무등산 산등성이에서 머무르다 아침 8시 30분경 주남마을에 들어섰다. 그러나 제11공수여단 62대대는 증심사계곡에 갇혀 5월 22일 오후 4시쯤 주남마을에 도착하였다.
제11공수여단 중 차량부대는 남광주역을 지나는 과정에서 학동과 소태동 도로 주변에서 시민군들과 간헐적으로 사격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때 공수부대원 중 부상자가 발생하였고, 도로 주변에서 시민 여러 명이 희생당했다. 차량부대가 남광주역을 지나 숭의실업고등학교[지금의 숭의과학기술고등학교] 방향으로 전진할 때 무장시위대의 공격을 받아 차량 3대가 전복되었다. 이 사고로 사병 1명이 숨졌으며, 6명이 부상을 당했다. 무장한 시민군의 공격을 받자 제11공수여단 장갑차 1대가 학동과 지원동을 두 차례 왕복하면서 길 양쪽 주택가에 기관총과 M16 소총을 난사하여 시민군과 시민들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
제11공수여단은 주남마을 뒷산에 주둔하면서 5월 22일부터 본격적으로 광주~화순간 도로 통행을 통제하였다. 주남마을에서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은 두 건이었다.
첫 번째 사건은 5월 23일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 발생하였는데, 흰색 페인트로 '103번'이라 적혀 있는 시위대의 순찰 차량[승합차]이 지원동에서 화순 방향으로 향하였다. 이 승합차에는 세 명의 시위대와 일신방직 종업원 두 명 등 총 11명 정도가 타고 있었다고 한다. 화순 쪽으로 가는 벽돌블록 공장 앞에서 계엄군이 승합차를 세웠고, 승합차를 향해 발포하였다. 차에 탔던 사람들은 모두 몰살당했다.
두 번째 사건은 5월 23일 오후 2~3시경에 발생하였다. '주남마을 앞 도로 미니버스 총격사건'으로 알려졌는데, 차 안에는 여성 4명과 남성 14명 이상이 타고 있었다. 미니버스가 주남마을 쪽 650미터 전방까지 접근하자, 군인 한 명이 정지 신호를 보냈는 데도 미니버스는 더 속력을 내어 달렸다. 요란한 총소리가 들렸고, 이후 미니버스에 탔던 사람들은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사망하였다. 생존자는 여성 1명과 남성 2명이었는데, 공수부대원이 남성 2명을 데리고 주남마을 옆 산으로 올라가 사살하였다.
[위치]
광주도시철도1호선 녹동역에서 동쪽에 보이는 남문로를 따라 남하하다 주남길 방향으로 들어가는 곳에 있다.
[현황]
전라남도 광주와 화순을 잇는 주요 통로이자 너릿재터널로 가는 길목이어서, 광주로 들어오거나 나가려는 사람들이 많이 사살되었던 곳이다. 주남마을 인근 양민 학살지는 1998년 5.18 사적지 제14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계엄군이 시민을 보호하지 않고 오히려 학살하였다는 것이 광주 시민들의 제보와 증언을 통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