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역사문화대전 > 광주향토문화백과 > 삶의 주체(성씨·인물) > 근현대 인물 > 교육가 외
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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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광주·전라남도 등지에서 활동한 화순 출신의 종교인이자 교육자. 이현필(李鉉弼)은 1913년 1월 28일 전라남도 화순군 도장면 원천리[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원천리] 권동마을에서 아버지 이승노(李承老)와 어머니 김오산(金烏山) 사이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의 이름은 싹뿌리이고, 호는 방림(芳林)이며, 호적 이름은 이현정(李鉉鼎)이다. 1923년 천태보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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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 김필례(金弼禮)[1891~1983]는 1891년(고종 28) 11월 19일 황해도 장연군 대교면 송천리에서 아버지 김성섬(金聖蟾)과 어머니 안성은(安聖恩) 사이에서 5남 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1892년(고종 29) 김필례가 태어난 지 1년 만에 아버지 김성섬은 사망하였다....
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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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기업에 자본을 제공하고 경영하는 사람. 기업인은 사업체를 설립, 조직, 관리하고 내포된 위험을 감수하는 주로 제1세대 경영자를 칭하며, 일반적으로 영리를 목적으로 기업에 자본을 제공하고 경영하는 사람으로서 사업가로 통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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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과업계에서 활동한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기업인. 박병규(朴炳圭)[1925~1977]는 전라남도 광주군 극락면 유촌리[지금의 광주광역시 서구]에서 아버지 박기룡과 어머니 김병례 사이의 6남 1녀 중 4남으로 출생하였다. 전라남도 광주 출신 기업가로, 해태제과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제과·음료·빙과 등을 생산하여 제과업계 선진화에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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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나주 출신으로 광주 지역에서 운수업·교통업·항공업 분야에서 활동한 기업인. 박인천(朴仁天)[1901~1984]은 전라남도 나주군 다시면 신석리 동산마을에서 출생하였다. 1910년 안곡서당(安谷書堂) 정성호(鄭聖浩)에서 한문을 수학하였으며, 나주군 다시면 영동리 팔현서당(八賢書堂)에서 열린 강경시(講經試)에서 장원하였다. 1946년 4월 7일 전라남도 광주 황금정(黃金町)에...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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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출신으로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자, 공무원, 사회운동가. 1952년 목포일보에서 언론인으로 근무하였고, 1956년 민주당 입당으로 정계에 발을 내딛어 1971년~1988년까지 제8대·제9대·제10대·제12대 4선 국회의원 당선 및 제12대 국회부의장직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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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3.1운동에 참여하였고, 광주YMCA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이자 광복 이후 여천군수와 국회의원을 역임한 의사 겸 정치인. 김철주(金鐵柱)는 1901년 전라남도 여수군에서 태어나 숭일학교에 진학하였다. 일제강점기 완도중학교 교사와 광주농업실습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광복 이후 전라남도 의사 시험 합격 후 여수 애양원 원장에 취임하고, 여천군 백야에 병원을 개업하였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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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출신으로, 해방 이후 6선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자,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 1950년 광주상고 교장으로 재직하고, 1954년 제3대 때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제4대·제5대·제6대·제7대·제8대 6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1970년 6월부터 1971년 6월까지 국회 부의장직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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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이후까지 전라남도 광주 지역 교육계에 종사한 사회운동가이자 정치인. 주형옥(朱亨玉)은 1899년(고종 36)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에서 태어났으며, 3.1운동에 참가하여 징역 6월형을 선고받았다. 숭일학교, 중동학교,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숭일학교 교사, 목포 영흥학교 교사, 광주 숭명학교 교사를 역임하였으며, 광복 이후 광주숭일중학교장, 호남신학교장으로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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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의료 활동을 전개하고, 미군정기 전라남도지사와 호남신문 사장을 역임한 의사 겸 정치인. 최영욱(崔泳旭)은 1891년(고종 28) 전라남도 나주부 광주군[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수기동]에서 아버지 최학신(崔學新)과 어머니 공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복형은 최흥종(崔興琮) 목사이다. 세브란스연합의학교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다. 전라남도 광주에서 의료...
체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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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에서 활동한 체육인. 김복실(金卜實)[1905~1952]은 전라남도 광주군 누항촌[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에서 5형제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얼굴색이 검어서 '먹통'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1922년 정동예배당 앞에서 일본 학생 30명과 격돌하여 '배재박치기'라고 불렸다.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에서 축구·야구·정구 부분에서 심판·코치·감독·선수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