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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까지 광주광역시의 역사. 대한제국이 일본에게 식민지 통치 지배를 받았던 일제강점기 당시 전라남도 광주 지역은 여러 차례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다양한 변천을 겪었으며,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3.1운동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다....
식민지 근대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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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부터 1949년까지 광주광역시의 행정구역 명칭. 일제강점기였던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광주군(光州郡)이 15개 면으로 개편될 때 광주읍성 안의 성내면과 광주읍성 밖의 공수방·기례방·부동방 등 1면 3방이 합해져 광주면(光州面)이 된다. 1931년 4월 1일 부령 제103호에 의해 광주면은 광주읍(光州邑)으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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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부터 1935년까지 있었던 전라남도 광주군의 읍. 1914년 광주는 광주군 관할의 15개 면 중 하나인 광주면이었다가, 1917년 보통면이었던 인근의 다른 면과는 달리 지정면(指定面)이 되었다. 이후 1931년 광주읍으로, 1935년 광주부로 승격되었는데, 광주부로 승격될 당시 광주군의 나머지 지역은 광주군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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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일본인 거주자가 많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이 지정면으로 설정된 역사. 일제는 1914년 4월 부제(府制)와 면제(面制)를 새로 도입하였다. 새로운 지방 행정제도에 따라 전국이 13도, 12부 220군, 2522면으로 재편되었다. 이때 광주는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이었다. 또한, 1917년에는 지정면(指定面) 제도를 도입해 인구가 많고 상공업이 어느 정도 발달해 도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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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 일대에 있던 인공 호수. 경양방죽의 건립 경위와 실체를 명확히 알 수 있는 기록은 없다. 1902년 6월 9일 자 『황성신문』은 경양방죽이 흉년을 방지할 목적으로 신라 진성여왕 때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광주 지역에 전해진다는 기사를 실었다. 1440년(세종 22) 세종의 농공정책의 일환으로 3년 만에 완공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 역시 확실하지 않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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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광주 지역에서 설립, 운영된 기생들의 조합. 일제강점기에 광주권번은 광주예기조합으로 시작된 기생들의 조합이다. 해방 이후 1951년에는 광주권번의 후신으로 광주국악원이 창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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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인 1924년에 광주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에 의해 설립 및 운영된 은행. 일제 강점기 이후에 조선에 들어온 일본인들 사이에서 성행했던 무진업을 양성하기 위해 전국에 무진회사를 설립하는 '조선무진령'이 공포되어 광주에서도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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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있던 일제강점기 신사. 광주신사(光州神社)는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1912년 광주군 광주면의 구강공원(龜岡公園)[지금의 광주공원]에 황대신궁(皇大神宮)의 요배소(遙拜所)를 건립한 것이 그 시작이다. 이후 1916년 정식 신사 창립을 출원하여 1917년 11월 3일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御神]를 제신으로 하는 광주신사로 건립되었다.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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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우편 사무를 담당한 기관. 처음 광주우체사(光州郵遞司)가 있던 곳은 서문통[지금의 광주우체국 앞길에서 동구 황금동으로 가는 길]이었고, 옛 한옥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위치에 대한 정보는 일본 우편국으로 강제 통합된 이후의 것일 수 있어 정확한 위치 비정은 어려운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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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광주의 우편 사무를 담당한 기관. 광주 지역에 도입된 최초의 근대적 통신 사무 담당 기관은 1897년 설치된 광주우체사였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인하여 대한제국의 통신기관을 일본이 장악하게 되면서 우편 사무도 일본인들의 관리를 받게 되어 광주우체사도 역할과 명칭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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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광주 지역에 설립된 전기회사. 광주전등주식회사의 발기인은 당시 대구에 거주하던 오구라 요시노[小倉吉野]를 비롯한 일본인들과 조선인 일부였다. 당시 일제는 조선 회사령을 통해 조선인들의 근대 산업에의 진출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인들은 광주전등주식회사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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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황금동에 있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 최초의 공연장 겸 극장. 1916년 무렵 일본인 후지가와 다다요시[藤川忠義]가 그 당시 총공사비 800원을 들여 설립하였다. 영화 상영을 위한 곳이라기보다는 연극과 연주회 등 공연장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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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광주 지역민의 금융지원을 목적으로 전국 최초로 설립된 금융조합. 광주지방금융조합 외에도 광주 지역에 설립된 또다른 금융조합은 1919년 3월 설립된 송정금융조합, 1923년 9월 설립된 도시조합인 금봉금융조합, 1930년 12월 설립된 동광주금융조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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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부동정에 개업한 카페. 남국카페(南國-)에는 조선인과 일본인을 가리지 않고 젊은이들이 모였으며, 대부분 지주와 고위 관리 등 유력인사들의 자제들이었다. 1942년 7월에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큰 충돌이 있었다. 발단은 남 아무개가 김용구에게 시비를 걸며, 폭력을 행사한 것이었다. 유도 3단에 6년간 권투를 익힌 김용구는 이에 물러서지 않고 큰 한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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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동명동에 있던 광복 이후 광주 최초의 호텔.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가장 큰 요릿집인 춘목암(春木庵)을 경영하던 조성순(趙成洵)이 1940년 전라남도 광주부 동정(東町)[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동명동]에 개인주택을 신축하였다. 가옥의 내부는 고급 장식과 가구, 화려한 정원을 갖춰 광주 지역에 지어진 개인주택 중 손에 꼽히는 호화로운 건물이었다. 동명호텔은 광복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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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11월 1일 조선총독부령 시장규칙에 의해 전라남도 광주부에 개설된 제2호 공설시장. 명치정(明治町) 시장(市場)은 전라남도 광주부 명치정 2정목[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2가 일대]에 있었으며, 광주 상설 시장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명치정 시장은 광주천을 거점으로 열렸던 두 개의 오일장[큰 장, 작은 장]을 병합한 사정(社町) 시장[사동시장(社洞市場)], 사정 시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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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인 1936년 광주 지역에 설립되어 운영된 양말 제조 회사. 설립자인 양태승(梁泰承)[1889~1955]은 화순 능주 출신으로 융희학교(隆熙學校)와 정리사(精理舍) 고등과를 마치고, 일본에 유학하여 고베신학교(神戸神学校)를 졸업한 인물이었다. 그는 1923년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설립하고, 1928년부터는 대구의 계성학교에서 교감으로 활동하는 등 민족 교육에 관심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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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에 있는 일제가 조성한 종교 시설. 송정신사(松汀神社)는 일제가 조선인의 정신 개조를 위해 내선일체를 강조하며 1941년에 조성한 건물이다. 제신(祭神)은 신명신사(神明神祠)와 마찬가지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御神]를 모셨으며, 예제(例祭)를 행하는 일자는 매년 10월 11일이었다. 현재 일부 건물을 개조해 대한불교조계종 금선사 사찰로 사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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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부동정에 개업한 요릿집. 신광원(新光園)은 전라남도 순천 지역 출신 이동채(李東彩)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부동정[옛 그랜드호텔 뒤편 주차장 자리]에 개업한 요릿집이다. 신광원은 광주 주요 인사들의 출입처이기도 하였다. 신광원에서 광주학생운동으로 체포된 학생들을 변호해주려 전국 각지에서 광주를 찾아온 변호사들을 위해 위로회를 열기도 하였으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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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8월 각 도에 자혜의원을 설치한다는 볍령에 따라 1910년 9월 26일 광주에 설립된 병원. 일제강점기 광주 지역의 주요 의료기관 중 하나로 1910년 관찰도 서기청 일부 건물에서 빈민 구제와 치료를 목적으로 설립한 의원이다. 전남대학교병원의 전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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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에 세워진 전남 지역 최초의 대규모 생사(生絲) 공장. -. 삶아서 익지 아니한 명주실, 생사를 생산하기 위해 설립한 공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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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양잠 산업 진흥을 위해 설치한 농업 기구. 전라남도의 양잠업 진흥과 관련 기술의 전수, 연구, 교육, 원잠종제조 등을 위해 전라남도가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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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북문통에 개관한 극장. 제국관(帝國館)은 1927년에 개관한 광남관(光南館)의 후신으로, 관주(館主)는 일본인 구로세 도요조[黑瀨豊藏]였다. 일본 도호[東寶]영화사의 전속 극장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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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신식산은행령에 의해 설립·운영된 조선식산은행의 광주 지점. 조선식산은행은 일제의 산미증식계획에 자금을 공급 및 조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1920년대 일제가 설립한 중요 산업기관의 대부분에 산업자금을 대출해주고, 중일전쟁 이후에는 채권 발행과 강제 저축을 통해 조선의 자금을 흡수하여 일본 정부와 전쟁 수행을 위한 군수산업 부문에 자금을 공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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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당시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개통된 철도에 관한 역사.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는 1910년대 철도가 개통되었다. 오늘날 광주광역시의 주요 역으로는 광주송정역, 광주역, 남광주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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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황금동에 있던 일제강점기의 한식집. 춘목암(春木庵)의 최초 경영자인 이춘실(李春實)은 1917년 마산에서 광주로 옮겨 와 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황금동의 콜박스 사거리 근처에서 우동집을 운영하였다. 이춘실은 황금동 80번지 일대에 부지를 마련해 춘목암을 개업하였다. 그러나 1929년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이춘실의 여동생 이진(李珍)과 이춘실의 남편 조성순(趙成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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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830번지 일원에 일제강점기 당시 광주천 정비를 위해 만들어진 방사형 거리. 학동팔거리(鶴洞八距離) 지역은 1930년대 생활이 어려운 자들의 자립을 조선총독부가 경제적·사회적 수단을 동원해 돕는 명목으로 물리적 생활공간[갱생지구]을 마련해 준 곳이나, 실질적으로는 부랑자들을 관리 감독하기 쉬운 주거공간 체계로 흡수하기 위해 조성하였다. 공동우물을 중심으로 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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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당시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많이 발생한 질병. 한센병은 나균(癩菌)이 피부나 말초신경에 침투해 일으키는 만성전염성 면역 질환으로, 흔히 나병(癩病) 또는 문둥병이라고 불렸다. 한센병은 전염력이 비교적 낮으며 유전도 되지 않고 장기간 밀접 접촉에 의해 전파되므로 일반인의 전염 위험성은 매우 낮다. 한센병이라는 이름은 이 병을 일으키는 균을 발견한 노르웨이의 의학자 한센(...
노동·농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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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노동자들에 의해 조직되고 운영되었던 노동 단체 및 노동 운동.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는 1920년에 설립된 조선노동공제회 광주지회를 시작으로 다양한 직업별 조합들이 조직되었다. 광주 지역의 경우 일제의 행정 및 경찰 업무가 집중된 관계로 인쇄업이나 운수업 등이 약간 활성화되어 있었고, 1930년대 중반 대규모의 방적공장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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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농민들에 의해 조직되고 운영되었던 단체 및 운동. 1922년 조선소작인상조회 전남지회 조직을 시작으로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는 농민들에 의해 다양한 농민 단체가 조직되었고, 생활 향상을 위한 농민 투쟁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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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2월 28일 결성된 광주 지역의 노동조합 연맹체. 1920년대 후반기 조선은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노동자계급이 급격하게 성장하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이나 생활 조건은 악화일로에 있었다. 그 결과 노동운동은 단순히 경제투쟁의 노동쟁의가 아니라 반일 민족해방투쟁의 하나로 결부되어 노동운동과 민족해방독립운동과 결합되는 특징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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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광주 지역의 광주면에서 조직된 농민운동 단체. 1920년대 전반기 광주 지역 노동공제회의 선전활동으로 소작인회가 결성되었다. 1923년 3월 14일부터 4월까지 전라남도 광주군에 소재한 15개 면에서 각각 면 소작인회가 조직되었다. 각 면 소작인회는 회장, 부회장을 두고 여기에 대체적으로 총무부, 서무부, 재무부, 업무부, 조사부, 교무부, 구호부와 같은 7개 부서를 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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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인 1926년 2월 8일 광주 지역 이발 노동자를 중심으로 결성된 노동조합. 1920년대 노동자계급의 사회 경제적인 해방을 위한 노동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1925년부터 1926년 사이 광주 지역에서는 각 직업별 조합 결성이 전개되었다. 광주 지역에서는 인쇄직공조합, 철공조합, 완차부조합, 정미노동조합과 같은 직업별 조합이 결성되자 광주이발직공조합도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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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11월에 결성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인쇄직공들의 노동단체. 1921년 4월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누문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누문동]의 목산인쇄소(木山印刷所)의 직공 6명은 동료 노동자의 부당한 대우에 대항하여 동맹휴업을 단행하였다. 이 사건 이후에도 일요일 근무에 대한 임금 지불 문제 등 직공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지 않자 다시 동맹휴업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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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11월 광주 지역의 철공노동자를 중심으로 결성된 노동 조합. 1920년대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경제적 해방을 목표로 하는 노동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광주 지역에서는 1925년에서 1926년에 걸쳐 직업별 조합 결성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광주철공조합 역시 이러한 분위기에서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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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송정리 운수노동조합원들이 노동권을 확보하고 지키는 과정에서 있었던 노동 쟁의. 1926년 전라남도 광주군 송정면 송정리[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운수노동조합 노조원들이 정당한 노동권을 확보하고 생존권을 수호하기 위해 벌였던 파업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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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4월 광주 지역에서 결성된 사회주의 주도의 노동운동 단체. 1920년대 광주의 노동운동은 광주청년회와 노동공제회의 갈등이 있었으나 직업별 조합의 결성 움직임은 활발해졌다. 광주청년회의 주도로 광주인쇄직공조합, 광주철공조합, 완차부조합, 정미노동조합 등이 출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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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12월 광주에서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주도로 조직된 사회주의 단체.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는 노동조합과 농민조합 결성을 목표로 노동자와 농민 속으로 들어가 대중적인 활동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노동·농민운동을 강화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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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3월 4일 광주에서 출범한 광주노동공제회 계열의 노동 단체. 1920년대 중반 청년운동의 방향은 노동자와 농민 속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방침이 일반화되었다. 농민과 노동자 단체가 분리되지 못하고 노동단체로 출범하는 와중에 전라노농연맹이 설립되었다....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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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의병에서부터 3.1운동, 광주학생운동, 농민운동으로 이어지는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독립운동. 전라남도와 광주 지역은 한말 최대 의병 항쟁지였으며, 3.1운동과 광주학생운동[광주학생독립운동], 농민운동의 중심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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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초부터 4월 초까지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격렬하게 전개된 만세운동. 1919년 일본 도쿄에서 2.8 독립선언을 준비하던 정광호가 「2.8 독립선언서」을 가지고 귀국하여 최한영, 박팔준, 강석봉 등 '신문잡지종람소[이후 삼합양조회로 개칭]' 청년들을 만나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만세운동 준비에 착수하였다. 1919년 2월 말 김필수 목사가 3.1운동 거사준비위원회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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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이후 광주 지역에서 계획했던 대규모 만세운동이 어려워지자 광주와 전남 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이 모여 상해임시정부에 협조할 목적으로 조직한 항일 단체. 3·1운동 이후 광주 지역에서는 대규모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감시와 사전 발각으로 대규모 시위운동이 불가능해졌다. 당시 광주에서 숭일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던 유한선은 평양의 장공섭으로부터 국민회 취지서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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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설립된 민족운동 단체인 신간회의 광주 지회. 1927년 2월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연합하여 반일사회단체인 신간회를 조직하여 합법적인 투쟁을 전개하였다. 전국적으로 149개의 지회가 조직되었는데, 그 중 광주에 설립된 지회이다....
여성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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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여성들에 의해 조직되고 운영되었던 여성 단체와 여성 운동.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는 1922년 11월 광주YWCA 설립된 이래 여성 개화 운동과 체육 활동이 이루어졌다. 1928년에는 소녀회(少女會), 1929년에는 근우회(勤友會) 광주지회, 1930년에는 백청단(白靑團)이 조직되어 여성 운동과 함께 항일 운동을 활발히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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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에 조직된 전라도 광주 지역 여성들의 사회 운동 단체. 1921년 7월 30일 전라남도 광주군 흥학관(興學館)에서 광주건괵계제유지(光州巾幗界諸有志)[광주 지역 유지]의 발기로 조직되었다. 조직은 고문, 회장, 부회장, 평회원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광주 지역 여성들의 사회운동 단체이다. 광주부인회는 강연 대회를 열어 여성교육의 필요성과 여성의 자각을 촉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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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1월 광주 지역의 신여성들이 조직한 여성단체. 광주여자청년회는 여성의 신교육과 차별 철폐 등을 목표로 조직된 여성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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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에 평양의 숭의여학교의 교사 및 재학생 등이 결성한 여성독립운동 단체. 단체의 명칭인 송죽회는 절개의 상징인 소나무와 대나무를 의미하는데, 식민지 조선의 운명을 개탄하여 민족의 정신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송죽회는 각 지역에 지회를 두었는데, 특히 목포 지방 책임자는 목포 정명여학교 출신의 최자혜였다. 최자혜는 3.1운동의 주역으로 이후 근우회 활동 등을 통해서 사회운동...
청년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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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쳥년들에 의해 조직되고 운영되었던 단체 및 사회 운동.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는 1920년에 설립된 광주청년회를 시작으로 다양한 청년 단체들이 조직되었다. 초기 청년 단체의 활동은 교육, 강연회 및 토론회 개최, 체육 및 문화 활동, 조선물산장려운동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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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7월 광주에서 창립한 기독교계 청년단체. 1920년대 전국적으로 청년단체가 급속하게 확산되자 광주 지역에서도 중앙교회, 금정교회, 양림교회, 향사리교회의 교인을 기반으로 광주기독교청년회가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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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2월 17일 상점에서 노동하는 광주 청년들이 조직한 사회단체. 일제강점기인 1926년 상점에서 노동하는 청년 130여 명이 결성한 단체이다. 회원들의 사회과학적 소양을 높이고 작업환경을 개선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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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11월 26일 광주 지역에서 결성된 청년운동 통일을 위한 단체. 1927년 제 3차 조선공산당의 성립과 함께 사회주의 인식은 더욱 팽창되었고, 시대를 변혁하는 주체로서 상정된 대상은 특정 노동자 계급만이 아니라 대중으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인식 하에 청년운동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으며 1927년에 청년단체의 연합조직인 광주청년동맹이 창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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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6월에 창립한 일제강점기 광주 지역의 청년 단체. 1920년대는 3.1운동의 결과로 전환된 일제의 ‘문화정치’ 아래 집회·결사의 자유가 부분적으로 허용된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대한 역사적 사건을 경험한 청년들은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20년대 초에 활동했던 사회단체의 절반 정도가 청년단체였다는 사실은 청년들의 사회참여를 보여주는 증표이...
학생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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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되었던 항일 학생운동. 광주학생운동은 3·.1운동이 일어난 지 10년이 지난 1929년 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민족 차별 교육 및 식민지 노예 교육에 반대한 학생들의 시위를 계기로 전국적인 독립운동으로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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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광주학생운동을 시작한 곳과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한 학생들이 다녔던 학교. 1929년 광주학생운동[광주학생독립운동]은 광주고등보통학교,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광주공립농업학교, 도립전남사범학교에 다녔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해서 전개되었다. 광주고등보통학교는 지금의 광주제일고등학교,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는 지금의 전남여자고등학교, 광주공립농업학교는 지금의 광주자연과학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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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11월에 결성된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의 항일결사 조직. 일제 강점기에 광주 지역의 학생들은 일제의 민족차별적인 교육 정책에 저항하였다. 일본의 차별교육에 대해 광주 학생들은 1924년 6월부터 동맹휴학의 방식으로 항일정신을 표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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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광주 지역 학생들의 항일운동단체로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추진했던 여러 단체 중 하나. 1920년대 일제는 치안유지법을 선포하였다. 이를 계기로 학생단체에 대한 탄압이 심해졌고 학생들은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독서회는 각 학교 단위로 결성된 일종의 학생비밀결사 조직으로 일제의 감시를 피해 사회주의 서적을 읽고 토론하면서 일제에 대한 저항과 독립의식을 고취해 나갔다. 특히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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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광주서중학교의 항일 학생운동 단체였던 무등회를 중심으로 벌어진 동맹 휴학 사건. 무등회사건(無等會事件)은 광주서중학교의 항일 학생운동 단체였던 무등회가 친일 행위를 한 학생을 구타한 것이 밀고되어 주동 학생들이 구속된 것을 계기로 학생들 사이에 동맹 휴학이 단행된 사건이다. 광주서중학교의 전신은 1920년 전라남도 광주군청 객사인 광산관(光山館)에서 설립된 사립 광주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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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인 1929년 11월 하순 광주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항일 여성 단체. '백청단(白靑團)'은 '백의민족 청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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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인 1926년 광주 지역의 농림고등학교,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주도하여 만든 항일 비밀 결사 조직. 조선의 독립, 사학과학의 연구, 식민지 교육체제의 철폐를 목표로 조직한 광주 지역의 반일학생운동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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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전라남도 광주군에 있는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이 조직한 비밀결사 백청단의 활동이 일제에 발각되어 관련자가 체포된 사건.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었던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은 1929년 백청단이라는 이름의 독립운동 비밀결사 조직을 만들었다. 일제는 독서회(讀書會) 관련 수사 중 단원의 일기장이 발각되어 다수의 학생이 검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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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에 있었던 수피아여학교를 중심으로 벌어진 신사참배 반대 운동. 일제는 1910년대 관공립학교, 1920년대 초반부터는 사립학교까지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그러나 1925년 조선신궁(朝鮮神宮) 진좌제(鎭座祭) 의식 이후 언론과 기독교계 사립학교가 반발하자 사립학교 학생들의 신사참배 정책은 일단 보류하였다. 그러다 1930년대 들어 일제는 대륙 침략을 재개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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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일본인 학생과 조선인 학생들 간에 시비가 붙은 사건. 1926년 6월 광주~송정리 간 통학 열차 안에서 일본인 학생 곤도[近藤]가 조선인은 개고기를 먹는 야만인이라고 비난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지금의 광주제일고등학교] 학생 김기수가 이에 대해 항변하였고, 며칠 후 곤도는 사과하였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나주경찰서장이 통학 열...
형평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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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부터 1935년까지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 일어난 형평사 운동. 형평운동(衡平運動)은 백정(白丁)들의 인권 존중과 신분 해방을 주창한 운동이며, 1923년 4월 25일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경장 이후 불평등한 신분 질서는 폐지되었으나, 관례에 의한 신분 질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형평운동은 3.1운동 이후 국민 계몽과 인권 운동에 앞장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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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2월 18일 광주의 백정(白丁)들이 결성한 청년 단체. 천민 신분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법적인 해방이 되었다. 하지만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은 여전히 존재했고 일반 사람들과는 달리 별도로 호적관리를 하였다. 이에 광주형평청년회는 발기인 유혁(柳赫) 등을 중심으로 형평의식이 공고한 청년들의 계급적 단결과 대중본위의 신사회 건설을 촉구하며 창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