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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골과 일본놈」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5286
한자 -日本-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광주광역시 동구 용산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18년 - 「용추골과 일본놈」 광주광역시 동구 용산동에 거주하는 박진규의 이야기를 채록
관련 지명 제2수원지 - 광주광역시 동구 용연동 634-19 지도보기
채록지 화산마을 - 광주광역시 동구 용산동 지도보기
성격 설화|지명전설|경험담
주요 등장 인물 일본인
모티프 유형 일제강점기 마을 주변의 지형과 지물이 사라진 이유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용산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용추골에 관한 이야기.

[개설]

용추골광주광역시 동구 제2수원지 위쪽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서 사라졌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2018년 광주광역시 동구 용산동에 거주하는 주민 박진규의 이야기를 채록하였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주관하는 한국구비문학대계(https://gubi.aks.ac.kr)에 수록되었다.

[내용]

일본인들은 일제강점기 한국을 식민화하기 위해서 전국의 지형을 조사하였다. 일본인들은 한국 사람들이 신성하고 영험하게 생각하는 곳을 파괴하고, 주요 산에는 말뚝을 박았다. 일제강점기에 무등산에는 용추골이 있었다. 용추골은 수심이 깊어서 명주실을 넣으면 세 타래나 풀려 들어갔다. 용추골은 한여름에도 시원해서 많은 사람들이 피서지로 이용하였다. 용추골 아래에는 광주 시민들의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제2수원지가 자리잡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많은 사람들이 용추골에 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용추골을 파괴하였다.

[모티프 분석]

「용추골과 일본놈」은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서 파괴된 지형에 관한 이야기이다. 용추골은 용소(龍沼)라 할 수 있다. 용의 명칭이 들어간 못은 대체로 지역 사람들에게 신성하고 영험한 곳으로 인식된다. 용소는 가뭄이 들 때도 물이 있어서, 사람들은 그곳에 용이 산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용소는 기우제 등을 지내는 민간신앙의 장소로 이용된다. 광주 제2수원지는 1939년 일제강점기에 축조되었다. 수원지는 도시에 물을 공급하는 곳이기에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데, 수원지 위쪽에 위치한 용추골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물이 오염될 여지가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용추골을 파괴한 이유는 광주에 공급하는 수원(水原)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이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이야기로 전승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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