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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조선 혈 절단 중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615
한자 日本人-朝鮮穴切斷中止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비아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00년 8월 24일 - 「일본인의 조선 혈 절단 중지」 광주광역시 광산구 비아동에 거주하는 조정숙의 이야기를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0년 - 「일본인의 조선 혈 절단 중지」 광주민속박물관에서 간행한 『광주의 설화』에 수록
관련 지명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지도보기
채록지 반촌 - 광주광역시 광산구 비아동 지도보기
성격 설화|풍수담
주요 등장 인물 일본 순사|아주머니
모티프 유형 명당 깨트리기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비아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일제강점기 무등산의 혈맥에 관한 이야기.

[개설]

일제강점기에 전라도 광주와 인근 지역의 산에 있는 혈맥을 자르려는 일본 순사가 작업을 중단하게 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2000년 8월 24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비아동에 거주하는 주민 조정숙의 이야기를 채록하였으며, 2000년에 광주민속박물관에서 간행한 『광주의 설화』에 수록되었다.

[내용]

옛날부터 조선은 큰사람이 많이 나오기로 유명한 나라였다. 그런데 일제강점기가 되자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인재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명산의 큰 혈자리를 찾아 말뚝을 박기 시작하였다. 일본인들은 전국의 명산을 찾아 혈 주위에 불을 지르고 땅을 파서 말뚝을 박았다. 무등산에도 혈맥을 자르기 위해 일본 순사가 파견되었다. 인부들과 작업을 하던 일본 순사는 담배를 피우고 싶었는데 담뱃불이 없었다. 그래서 산 중턱의 민가를 찾아왔다. 집에는 안주인이 옷감을 짜고 있었다. 일본 순사는 아주머니에게 담뱃불 좀 붙이겠다고 하며 마루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조선 땅에 명당이 많아 그 명당을 없애려고 말뚝을 박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였다.

아주머니가 일본 순사를 보니 생김새나 행동하는 것이 조선 사람 같았다. 그 순간 아주머니는 자신의 저고리를 풀어 젖을 한 움큼 짜더니 일본 순사의 입에 잔뜩 발랐다. 아주머니의 젖맛을 본 일본 순사는 어렸을 때 자신의 어머니가 주던 젖맛을 떠올렸다. 입가에 묻은 젖맛을 보던 일본 순사는 순간 자신에게도 조선 사람의 피가 흐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간 일본 순사는 일본의 본가(本家)에 자신의 뿌리를 알려 달라는 편지를 썼다. 한 달 후, 일본 순사는 자신의 시조할아버지가 조선에서 건너가 일본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 순사는 조상의 나라에 해악만 끼치고 있었다며 탄식을 하였다. 그날 이후 일본 순사는 말뚝을 박는 작업을 할 수 없었고, 결국은 순사 일을 그만두었다. 그래서 무등산 등 남부 지방의 대부분의 산들이 혈맥을 끊기는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모티프 분석]

「일본인의 조선 혈 절단 중지」의 주요 모티프는 ‘명당 깨트리기’이다. 명당 깨트리기는 대체로 명당을 얻는 것에 주안점을 둔 풍수담과 달리 명당을 파손하는 것에 주안점을 둔 이야기이다. 명당을 파손하는 이유는 악행에 대한 응징으로 악인이 속아서 자신의 명당을 파손하거나, 명당 파손이 금기로 제시된 경우가 있다. 「일본인의 조선 혈 절단 중지」에서 명당 파손은 일본이 조선의 인재 탄생을 막겠다는 의도로 수행된다. 전국의 명산들이 혈맥이 잘리고 쇠말뚝이 박혔지만, 이 설화 속 사건으로 인해 광주광역시와 남부 지방의 산은 명당이 훼손되지 않았다. 전국의 명산이 혈맥이 끊기는 피해를 입었지만, 광주와 남부 지방의 산은 그러한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지역의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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