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5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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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保化村-名稱由來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막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염승연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9년 2월 22일 - 「보화촌 마을 명칭 유래」 광주광역시 광산구 보화촌 마을에 거주하는 박익수의 이야기를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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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0년 - 「보화촌 마을 명칭 유래」 『광주의 전설』에 수록 |
채록지 | 보화촌마을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막동 208번지 |
성격 | 설화|지명전설 |
모티프 유형 | 지명유래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보화촌 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마을 명칭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
[개설]
「보화촌 마을 명칭 유래」는 보화촌(寶貨村) 마을의 김씨가 밭을 갈던 중에 보화 덩이를 발견했지만,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해서 대장간 주인에게 빼았겼다는 명칭 유래와 관련된 지명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보화촌 마을 명칭 유래」는 1989년 광주광역시 광산구 보화촌 마을에서 박익수[남, 57세]의 이야기를 채록하였으며, 1990년 광주직할시에서 간행한 『광주의 전설』에 수록하였다.
[내용]
보화촌마을은 김씨라는 인물이 제일 먼저 거주하였다. 김씨는 마을을 수시로 개간하여 생계를 유지하였다. 어느 날, 김씨는 밭에서 쟁기질을 하던 중에 보화(寶貨) 덩이를 발견하였다. 그러나 보화덩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화씨벽(和氏璧)처럼 보화가 아닌 쇳덩이 같았다. 김씨는 신봉정(申鳳亭) 근처에 있는 성냥간[대장간]에 보화덩이를 가지고 가서 낫과 도끼를 만들어 달라고 하였다. 성냥간 주인은 김씨의 부탁대로 물건을 만들다가 그 쇳덩이가 보화덩이인 것을 알아차렸다. 성냥간 주인은 김씨가 준 보화덩이를 빼돌리고, 다른 쇳덩이로 김씨에게 낫과 도끼를 만들어 주었다. 이후, 그 사실을 알게 된 김씨가 성냥간을 다시 찾아갔지만, 성냥간 주인은 밤에 짐을 싸서 도망치고 없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토대로 사람들은 김씨가 살았던 마을을 보화촌이라 불렀다.
[모티프 분석]
「보화촌 마을 명칭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물건에 의한 지명유래'이다. 김씨라는 사람이 마을을 개간하였는데, 쟁기로 밭을 갈던 중 보화덩이를 발견하였다. 마을에서 보화덩이가 발견되었다는 의미에서 마을 이름을 한자를 사용하여 '보화촌'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야기에서 보화덩이는 화씨벽처럼 겉모양이 못났고, 김씨도 그 보화의 가치를 몰랐다는 내용이 언급된다. 이는 중국 고서 『한비자(韓非子)』중에 화씨편(和氏篇)에 등장하는 화씨벽 이야기와 연계되고 있다. 초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강가에서 둥그런 비취 원석을 발견하여 역대 왕들에게 진상하였으나, 왕들은 그 원석의 가치를 알지 못하였고, 오히려 변화의 두 다리를 잘라 버렸다.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변화는 그 원석을 다시 바쳤는데, 원석을 둘로 갈라 보니 진귀한 옥이 나왔다. 문왕은 그것으로 도장을 만들어 천자(天子)를 계승할 때 썼다는 이야기이다. 김씨도 보화덩이의 가치를 몰랐고, 대장간 주인에게 빼앗겼다. 이 이야기를 토대로 마을 이름의 유래를 유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