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3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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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飛鴉洞場-堂山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비아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지현 |
중단 시기/일시 | 1945년 8월 - 비아동 장터마을 당산제 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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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장소 | 당산나무 - 광주광역시 광산구 비아동 옛 장터마을 내 |
성격 | 마을 신앙|동제 |
의례 시기/일시 | 정월대보름 |
신당/신체 | 당산나무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비아동에 있었던 장터마을에서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지냈다고 전해지는 마을 제사.
[개설]
비아동 장터마을 당산제는 장터마을에서 모신 것으로 전해지는 당산제이다. 장터마을은 이곳에 5일장이 열리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장터마을은 100여 년 전에 마을에 김해김씨(金海金氏), 광산김씨(光山金氏), 탐진최씨(耽津崔氏) 등이 들어와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비아면사무소[지금의 비아동 행정복지센터] 소재지이기도 하였다. 마을 이름처럼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상업에 종사하였다.
[연원 및 변천]
장터마을이 까마귀 형국을 띠고 있어 당산제를 모셔야 마을이 편안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 마을 당산제를 모셨다고 전해진다. 1993년 광주직할시립민속박물관[지금의 광주역사민속박물관]의 광주 지역 당산제 조사 당시, 당산제를 지냈었다는 사실과 8.15광복 직후 마을의 당산나무가 고사하면서 당산제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는 구술만 전해졌다. 당산나무와 관련된 영험담으로 일제강점기 때 당산나무를 벌목했던 사람이 불구가 되어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마을 안에 있는 당산나무를 신체(神體)로 모셨다고 전해진다.
[현황]
비아동 장터마을 당산제는 오래전에 중단된 뒤 오늘날에도 제를 올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