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3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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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林洞水城-堂山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지현 |
의례 장소 | 당산나무 -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 수성마을 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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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장소 | 공동 샘 -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 수성마을 안 |
성격 | 마을 신앙|동제 |
의례 시기/일시 | 정월대보름 |
신당/신체 | 당산나무|공동 샘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 수성마을에서 정월대보름 무렵에 지냈다고 전해지는 마을 제사.
[개설]
수성마을은 본래 고와수(高臥水), 과우, 광암(光岩) 등이라고 불리다가 일제강점기 때는 고암(古岩)이라고 불렸다. 수성마을은 400여 년 전에 죽산부사(竹山府使) 류희달(柳希達)이 들어와 정착하면서 성촌되었고, 이후 문화류씨(文化柳氏)가 대부분 거주하고 있는 마을이다. 덕림동 수성마을 당산제는 오래전에 사라져 그 유래는 알 수 없다.
[연원 및 변천]
1993년 광주직할시립민속박물관[지금의 광주역사민속박물관]의 광주 지역 당산제 조사 당시 마을에서 당산 두 곳에 제사를 모셨다는 제보만 전한다. 다만 당산나무와 관련한 영험담이 전해지고 있는데, 수성마을의 당산나무 잎이 한꺼번에 피면 풍년이 들고, 여러 번 나누어 피면 흉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마을 입구에 있는 당산나무와 마을 안의 공동 샘 두 곳에서 당산제를 지냈다.
[절차]
정월대보름에 제(祭)를 모시고 굿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현황]
덕림동 수성마을 당산제는 오래 전에 중단된 뒤로 오늘날에도 제를 지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