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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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楓巖洞新岩-堂山祭 |
이칭/별칭 | 풍암동 신암마을 동제,풍암동 신암마을 도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부유진 |
의례 장소 | 큰 당산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신암마을|안 공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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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마을 공동 제사 |
의례 시기/일시 | 정월대보름 날 |
신당/신체 | 큰 당산[은행나무]|작은 당산[버드나무]|금당산[입석] |
[정의]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신암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대보름 날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개설]
풍암동 신암마을 당산제는 정월대보름 날 밤에 신암마을의 큰 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신암마을 제의 명칭은 원래 '도제'라고 불렸는데, 언제부터인가 제의 이름이 당산제라는 이름으로 보편화되어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연원 및 변천]
신암마을은 15세기에 김녕김씨(金寧金氏)의 이주와 정착으로 형성되었다. 당산제는 조선 중기 이후부터 지냈던 것으로 보이며, 1980년대 이후 절차를 간소화하여 운영하였다. 1990년대 이후에는 도시개발의 여파로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하였다가, 2005년부터 풍암골 신암마을 당산제 추진위원회가 결성되면서 매년 신암 당산제로 전승되어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신암마을의 당산은 예전에는 12당산이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큰 당산[지신(地神)], 작은 당산[용신(龍神)], 금당산[천룡(天龍)]의 세 곳에 제를 지내며, 실제의 제사는 큰 당산에서만 이루어진다. 큰 당산의 신체는 마을 가운데 공터에 있는 은행나무로, 원래는 큰 느티나무였으나 고사(枯死)하여 마을 입구의 버드나무에 제를 모시다가 1976년에 느티나무가 있던 자리에 은행나무를 심어 지금까지 모셔오고 있다고 한다. 1996년 풍암택지개발지구 내 문화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 결과에 따라 작은 당산인 버드나무와 금당산인 입석 3주를 현재의 풍암 제7호 어린이공원으로 이전 복원하였다.
[절차]
풍암동 신암마을 당산제는 정월 4~5일경 마을회의를 열어 화주 1명을 선정하고 제비(祭費)를 결정한다. 화주는 상이 들거나 산고 등의 궂은 일이 없어야 한다. 여성을 화주로 선정하기도 하는데 젊은 여성은 제외된다. 화주를 돕는 사람도 1명 정도 뽑는다. 제비는 당해 물가 사정을 고려하여 각 호마다 거출한다. 제물(祭物)은 정월 열나흗날 양동시장에서 돼지머리, 떡시루, 대추, 밤, 사과, 곶감, 유과 등을 구입하는데, 값을 흥정해서는 안 된다. 제기(祭器)와 돗자리도 매년 새로 구입하며, 제가 끝난 후 화주가 소유한다. 제수를 준비하기 전 당산과 샘을 청소하고, 화주집, 샘, 당산 주변 등에 금줄을 쳐서 부정의 출입을 막는다. 제사 음식은 간을 봐서는 안 되고, 특히 고춧가루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당산제는 큰 당산[지신(地神)], 작은 당산[용신(龍神)], 금당산[천룡(天龍)]의 세 곳에 지내며, 실제의 제사는 큰 당산에서만 이루어진다. 제사는 정월대보름 날 자정을 전후하여 지낸다. 제사가 시작되기 1~2시간 전에 큰 당산의 광장에 장작불을 피우고 굿을 치며, 제사 시간이 다가오면 굿을 치면서 화주집으로 간다. 이들은 화주집의 안방 윗목에 놓인 제물을 미리 와 있던 제관(祭官)들과 함께 나누어 들고 큰 당산으로 간다. 이때 화주도 함께 간다. 큰 당산에 돗자리를 깔고 제상(祭床)을 놓아 음식을 진설한다. 제사를 지내는 동안에는 굿을 멈추며 제차(祭次)는 '분향→강신→초헌→독축→아헌→종헌→사신→소지' 순으로 진행한다. 이 과정을 큰 당산에서 같은 제상을 놓고 방향만 바꾸어, 지신(地神), 천룡(天龍), 용신(龍神)의 순으로 세 번 반복한다. 단 정화수는 갈아 놓는다. 소지는 모두 참여하며, 헌식을 세 곳에 한 후 황토로 덮는다.
[축문]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의 축문을 축관이 읊었다고 하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
[부대 행사]
당산제가 끝나면 '산물'을 한다. 제상에 올리는 메[제사 때 신위(神位) 앞에 놓는 밥]와는 달리 보리, 조 등을 섞은 잡곡밥으로 따로 준비한 잡밥을 한 양푼 정도 넉넉히 해 두었다가, 미역국과 진설하였던 음식을 조금씩 넣어 섞은 후 마을 입구로 가져간다. 굿 치는 사람들이 뒤로 가면서 한 사람은 땅바닥에 짚을 깔고, 다른 사람은 양푼에서 잡밥을 떠 그 위에 뿌린다. 이를 산물이라고 하며, 잡귀에게 밥을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산물이 끝나면 당산나무와 입석 주위를 돌며 당산굿을 친다. 그리고 샘굿을 치고, 화주집에 가서 매구[정월에 풍물패가 풍물을 치면서 마을을 돈 다음 집집마다 들어가 악귀를 쫓고 복을 비는 민속행사의 하나]를 치기도 한다.
[현황]
풍암동 신암마을 당산제는 1980년대 이후 절차를 간소화하여 운영하였으며, 1990년대 이후에는 도시 개발의 여파로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하였다가, 2005년부터 풍암골 신암마을 당산제 추진위원회가 결성되면서 매년 풍암동 신암마을 당산제로 전승되어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