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37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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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五月- |
이칭/별칭 | 추모거리굿,추모거리음악제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행사/행사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유하 |
시작 시기/일시 | 1990년 5월 18일~5월 27일 - 오월거리굿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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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시기/일시 | 2002년 - 오월거리굿 폐지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4년 - 오월거리굿에서 추모거리굿으로 개칭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 추모거리굿에서 추모거리음악제로 개칭 |
행사 장소 | 광주가톨릭센터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1[금남로3가 3-5] |
행사 장소 | 5.18구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수곡동 산 29-2 |
주관 단체 |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45[금남로1가 1-1] |
행사 시기/일시 | 5월 중순 |
전화 | 062-352-0518 |
[정의]
1990년 5.18민주화운동의 중심인 광주가톨릭센터 로비와 대로변에서 시작된 거리 음악제.
[개설]
오월거리굿은 5.18민주화운동이 아직 '광주사태'로 불리던 1990년에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와 노래로 저항한 노래 운동이다.
1989년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들이 무더기로 해직되었고, 임수경·문규현·문익환·서경원은 방북의 이유로, 홍성담은 걸개그림을 평양의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보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어 구속되던 노태우 정권 시기였다. 5.18민주화운동 피해자 가족들의 진상 규명 요구가 끝없는 방해와 구속으로 모두가 지쳐가던 무렵, 박문옥·김원중·정세현 등 광주광역시에서 활동하던 다수의 대중음악인들이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희생자 가족들을 응원하는 한편, 광주광역시에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여 억울하게 구속된 사람들을 돕고자 1990년부터 오월거리음악제를 기획하면서 의미 있는 노래 운동이 시작되었다.
[연원 및 개최 경위]
1989년 광주광역시의 노래꾼들이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 거리음악제의 지원을 건의하였다. 아직은 자유롭게 5.18민주화운동을 이야기할 수 없는 시기였고, 문제가 이슈화한다면 곧바로 구속될 수도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노래꾼들을 보호해 줄 세력과 지원이 필요하였다. 1990년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거리음악제의 의미와 목적을 이해하고 지원을 결정하였다. 장소는 광주가톨릭센터 정문 앞 포치(Porch)[건물의 입구나 현관에 지붕을 갖추어 잠시 차를 대거나 사람들이 비바람을 피하도록 만든 곳]와 계단을 무대로 내주었다. 광주가톨릭센터 정문 앞 포치와 계단은 실내도 아니고 실외라고 하기도 애매한 곳으로 광주가톨릭센터의 보호가 느껴지는 장소였다. 김원중, 박문옥, 정세현 등은 '광주지역노래모임'을 만들어 행사를 기획하고 조직하는 일을 맡았고 노래도 불렀다. 처음에 사용된 '오월거리굿'이라는 명칭은 해원(解冤)[원통한 마음을 풂]의 의미 때문에 붙인 것으로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를 설득하여 명명하였다고 한다. 제1회 5.18민중항쟁추모 오월거리굿은 199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간의 항쟁을 기념하며 광주가톨릭센터 정문 앞에서 진행되었고. 2002년까지 제14회가 개최되었다.
[행사 내용]
오월거리굿의 행사 내용은 조금씩 변화되어 진행되었다. 제1회 5.18민중항쟁 추모 오월거리굿은 천주교 광주대교구 청년연합회 놀이패 '흙'의 길놀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해직 교사인 고재성이 사회를 맡았고 소리모아[박문옥, 박태홍, 최준호], 김원중, 홍승완, 우리소리연구회[정세현, 이세길, 홍세현, 정건호], 가톨릭 청년 노래패 '소리', 광주전남민족문학협의회의 회원들이 출연하였다. 제3회부터는 전국의 민중가수들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함께 해 주었다. 광주광역시의 노래꾼 외에도 노동자 노래패 꽃다지, 노래마을, 김영남, 김대완, 류금신 등이 출연하면서 오월거리굿은 광주광역시를 넘어 전국적인 행사가 되었다. 타지의 민중가수들이 참석하는 것은 광주광역시에서 일어난 일을 전국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제5회 추모거리굿[명칭이 바뀜]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필리핀 민중가수 산티아고(Jesus Manual Santiago)가 참여하면서 다른 나라에도 광주광역시의 소식을 나누고 함께하는 공연이 되었다. 1997년 제8회의 명칭은 5.18민주화운동이 국가기념일이 되면서 순화된 '추모거리음악제'가 되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점차 축제화되어 가는 중이었다. '오월의 노래'를 기치로 안치환, 노래마을, 꽃다지, 류금신, 김영남, 윤진철, 김현성, 윤민석, 혜화동 푸른섬 등의 외부 가수와 소리모아, 박종화, 노래패 소리, 빛고을 청년연대 등이 출연하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민중가수들이 광주광역시를 찾아와 5.18민주화운동을 함께 아파하고 응원해 주었다. 제11회 추모거리음악제는 '민중가요 100선'을 주제로 망월동 5.18구묘지 특설무대에서 진행되었다. 장사익, 안치환, 백창우, 꽃다지, 손병휘, 안도현, 김용택 등 다수의 외부 가수와 문인들이 참석하였다.
[현황]
오월거리굿은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의 지원과 광주 지역 노래 모임의 기획으로 시작되었으나, 1996년부터는 5.18민중항쟁 기념 행사위원회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광주시지회 노래분과에서 주최하고 주관하게 되었다. 해가 거듭될수록 외부 초청 가수들이 자원하여 거리음악제에 참가함으로써 5.18민주화운동의 전국화가 이루어졌지만, 1997년 5월에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 법정기념일이 되고, '광주사태'가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공식화되면서 5월 행사의 운동성은 약화되었다. 2002년 제14회 '오월의 노래'를 끝으로 오월거리굿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