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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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Seon Jongcheol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진우 |
출생 시기/일시 | 1936년 7월 9일 - 선종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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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80년 5월 23일 - 선종철 주남마을 통장으로 마을을 돌며 주민들에게 위험 경고 |
몰년 시기/일시 | 1980년 5월 23일 - 선종철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0년 5월 30일 - 5.18구묘지 안장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5월 - 5.18구묘지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 |
거주|이주지 | 주남마을 -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 |
활동지 | 주남마을 -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 |
묘소 |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563] |
성격 |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주남마을 통장 |
[정의]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개설]
선종철[1936~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주남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 통장으로 마을을 돌아다니며 위험을 알리는 과정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1980년 5월 23일 주남마을 통장 선종철은 요란한 총소리를 들었다. 시위 중 사망자를 수습할 관을 구하기 위해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향하던 시민군의 버스에 퍼부은 계엄군의 총격이었다. 마을 통장으로서 위험을 감지한 선종철은 총소리를 듣고 집 밖으로 나온 마을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있었다. 이때 선종철은 계엄군의 총격으로 날아온 총탄을 턱에 맞고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선종철의 시신을 수습하여 가족에게 전하였다.
5월 24일 사망자 시신을 전라남도청으로 옮겨야 한다는 방송을 듣고 가족들은 선종철의 시신을 광주남국민학교[지금의 광주남초등학교]로 옮겼다. 학교에 대기하고 있던 트럭에 의해 상무관으로 다시 옮겨진 선종철의 시신에 매겨진 번호는 32번이었다. 상무관으로 들어온 32번째 시신이었던 것이다.
5월 30일 선종철은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서 사망자들의 공동 장례를 치른 뒤 안장되었으며, 묘지 번호도 32번이었다. 1997년 5월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다.
[묘소]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묘지번호는 2-05이다.
[상훈과 추모]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다.